퇴고 수필 - 꽃구경 / 김영교 2-20-2017

2017.02.20 12:20

kimyoungkyo 조회 수:293

꽃구경 / 김영교 2-20-2017

 

서거정이 남산 꽃구경을 좋아해서

‘장안 만호엔 집집마다 꽃밭이니 

누대 비치어 붉은  오는 듯하다.

청춘이 얼마 남았는가마음껏 구경하세’ 라는 시를 읊었던 서울을 다녀왔다.  받은 큰 오라버니 선물가방에는 이외수의 책, 구상 시전 집과 건강식품 그리고 장사익의 CD ‘꽃구경’이 들어 있었다.

 

김용택 시인이 쓴 시 ‘이게 아닌데’를 불러 시의 묘미를 극대화시킨 소리꾼, 장사익을 가깝게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빠져들고 말았다. 그의 대표작 ‘찔레꽃’은 국민가요처럼 모두가 즐겨듣고 흥에 취해 함께 흥얼거리지 않는가. 애잔함이 흐르는 노래들, 친숙해져있는 곡과 노래 말, 부담 없이 다가와 행복한 한 마당을 펼쳐준 기억이 생생하다. 음악치료 나고나 할까?

 

새로 가담한 장사익 시리즈에 오라버니 선물은 CD 꽃구경, 한곡한곡 듣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노래 ‘꽃구경’에 가서 내 아린 가슴이 후벼 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따뜻한 봄 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60년도 중반 미국에 유학 온 나는 영주권이 없어 어머니 임종을 못 봐드린 불효여식이 되었다. 가슴에 남아있는 회한이 남다르다. 남도 산사 순례 동창모임이 있었던 지난 4월 섬진강에 흐드러지게 꽃비 내리던 벚꽃을 떠올리며 눈가가 하염없이 젖어들었다. 어머니는 가고 없고 어느 듯 어머니 자리에 와 있는 나를 발견하고 목이 매 이던 꽃구경이었다.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듯이 장사익은 호소력이 대단했다. 인생의 후반전을 아름답게 꽃 활짝 피우는 그의 창법, 독보적인 뛰어난 독창력으로 흥을 발산하는 대단한 소리꾼이다. 듣는 사람은 공명하며 함께 범벅이 되기에 누구나 그를 몀창이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 뉴욕, LA, 가는 곳마다 전석매진을 기록한 장사익 소리판 기록만 봐도 증명이 된다. ‘꽃구경’이 꽃피는 봄 날 미주로 날아와 펼친 뉴욕공연은 이민의 서러움을 달래는 위로차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가슴 흐뭇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꽃구경’ CD에는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보지 않는 장사익의 관조적 태도가 깔려있다. 시공을 휘여 잡은 듯 교감과 대화로 이어가면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경지로 몰고 간다. 장사익의 에너지는 청중의 심혼을 매료시키는 소리를 내어 청중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삶, 죽음, 이별, 사랑을 온 몸으로 절절하게 토해내는 그의 열창은 언어와 목소리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삶에 외로움이나 서러움을 같이 흐느끼며 달래며 용감하게 일어서야 한다고 다그치는 힘, 그 자체였다.

 

가슴을 흔드는 공감대가 있다. 이국땅에 쓰러져 흐느끼는 들풀과 들풀의 손을 잡고 또 그 옆의 들풀이 서로를 일으켜 세운다. 이렇듯 장사익의 노래는 우리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상생인 것이다. ‘돌아가는 삼각지’, ‘동백아가씨’, ‘장돌뱅이’, ‘봄날은 간다’ 등등 장사익의 특유의 감성으로 재해석,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통해 위안을 받기 때문에 공연도 그의 CD도 인기 높다 믿어졌다.

 

누구보다도 많이 아파본 사람 장사익, 마흔다섯에 데뷔한 늦깎이 가수의 신산한 삶이 녹아있는 그의 노래에서 우리들 삶의 희로애락을 발견한다. 우리 자신의 얼굴과 닮은꼴을 찾을 수 있는 폭 넓은 공감대가 바로 그 해답이다. 그 뿐인가, 장사익은 태풍이 지나간 자리, 허허망망 바다에서도 겨자씨 한 톨 같은 희망을 건저 올려 ‘하늘가는 길’에서 조차 낙관주의를 지향해줘 여간 고맙지가 않다.

 

특혜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소리가 새벽에 길어 올린 샘물처럼 청신하고 강한 생명력으로,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바로 나의 아픈 체험이 그의 노래에서 걸러져 우주를 관통하는 차원 높은 정화과정에 절절히 공감, 그리하여 치유의 시 발아가 가능, 나는 회복되고 있었다. 외롭고 답답한 삶을 사는 아픈 나에게 ‘힘 내’ 뜨거운 응원가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6권의 나의 시집 표지를 그려준 초개 김영태* 화백이 72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장사익은 강화도 전등사 수목장에 조가 ‘찔래꽃’을 헌화했다. 상상해본다. 초록 숲속에서 흰 두루마기의 장사익은 한 마리 학이 되어 초개를 하늘나라로 배웅해 드렸을 것이다. 전설 같은 실제 그림 한 폭이었다.

 

오늘 병원을 다녀왔다. 내 머리를 짚어주는 어머니 손길이 그립다. 어머니 대신 장사익의 ‘꽃구경’이 다가왔다. 나를 글썽이게 하는 그 시간 안으로 깊이 침잠한다. 가끔 이런 나를 나는 사랑한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따뜻한 봄 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서거정(1420∼148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음 문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이바지. 

*김영태화백은 큰 오라버니의 친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30 쪽지글 - 비범한 괴짜, 김점선의 그림과 친구들 / 김영교 [6] kimyoungkyo 2017.02.26 235
529 신작시 - 안으로 나를 밀어 넣고 - 김영교 [10] kimyoungkyo 2017.02.24 174
» 퇴고 수필 - 꽃구경 / 김영교 2-20-2017 [6] kimyoungkyo 2017.02.20 293
527 퇴고시 - 꿈꾸는 빈 통 / 김영교 2-2-2017 [4] kimyoungkyo 2017.02.20 416
526 퇴고 시 - 오늘도 나는 기차를 그린다 / 김영교 [4] kimyoungkyo 2017.02.20 126
525 퇴고수필 - 줄 두 개 뿐인데 / 김영교 [6] kimyoungkyo 2017.02.16 230
524 퇴고수필 - 웃음이 이긴다 / 김영교 [11] kimyoungkyo 2017.02.13 227
523 퇴고수필 - 짦음의 미학 / 김영교 [12] kimyoungkyo 2017.02.11 641
522 시 - 틈 외 신작수필 - 화요일은 그녀와 함께 - 김영교 [13] 김영교 2017.02.05 392
521 퇴고수필 - 과외공부 / 김영교 [2] 김영교 2017.02.05 143
520 신작수필 - 학처럼 날아서 / 김영교 [2] kimyoungkyo 2017.02.04 302
519 신작시 - 작은 가슴이고 싶다 / 김영교 [3] kimyoungkyo 2017.02.04 228
518 신작수필 - 가족 / 김영교 [9] 김영교 2017.02.02 255
517 퇴고수필 - 또 하나의 작은 소요(小搖) [4] 김영교 2017.01.30 157
516 신작시 - 양말, 맨 아래에서 / 김영교 [5] 김영교 2017.01.29 162
515 신작시 - 리돈도 비치에서 - 김영교 [4] 김영교 2017.01.29 237
514 신작시 - 바탕화면 / 김영교 [2] 김영교 2017.01.27 94
513 퇴고수필 - 보이지 않는 손 - 김영교 김영교 2017.01.25 71
512 퇴고 시 - 부부 밥솥 / 김영교 [3] 김영교 2017.01.25 70
511 퇴고수필 - 파격의 멋 / 김영교 [4] 김영교 2017.01.21 388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63
어제:
254
전체:
673,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