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 공양과 마녀 사냥 - 멕시코 과달루페 여행기

2004.12.11 00:46

Gus 조회 수:1301 추천:98

".....1523년, 아즈텍 문명이 스페인 개척자들에게 정복된 2년 후, 멕시코에는 로마 가톨릭의 선교사들이 처음 도착하고 영적인 정복이 시작됐습니다. 초창기의 개종자들 중에 후안 디에고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1531년 12월 9일 쌀쌀했던 아침에, 후안 디에고는 아침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황량한 테페약 언덕을 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눈부신 빛과 천상의 음악 소리가 들려 그는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앞에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는데, 검은 피부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고, 그를 ''내 아들아''라고 부르며, 당신을 동정녀 마리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 여인이 후안 디에고에게 말씀하시기를, 테페약 언덕에 성당을 세우기를 원하며, 그것을 ''후안 데 주마라가'' 주교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보잘 것 없는 한 인디언이 고위 성직자에게 말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후안 디에고는 결국 부탁을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지 않았던 주교님은 그에게 쉽게 구할 수 없는 어떤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혼란스럽고 두려워진 후안 디에고는 그 뒤 며칠 동안 테페약 언덕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12월 12일, 그의 삼촌의 병이 몹시 위중해서 그는 사제를 찾으러 테페약 언덕의 지름길을 가로질러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복되신 동정녀께서 다시 후안 디에고에게 나타나셨고, 그는 주교님이 요청한 것을 성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황폐하고 황량한 언덕에서 수많은 장미를 주시며 그것을 꺾어서 주마라가 주교님에게 표징으로 가져가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후안 디에고는 그의 외투에 기적의 꽃들을 가득 담아서 주교님에게 달려갔습니다. 다시 주교님 앞에 선 그는 그 앞에 꽃들을 쏟아 놓았습니다.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놀란 것은, 후안 디에고의 외투에 ''과달루페의 동정녀''의 완전한 그림이 새겨져 있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안 디에고가 장미를 쌌던 틸마를 펼치니 성모님의 그림이. 주교는 무릎을 꿇고.


 


새로 지은 대성당에 조심스럽게 보관되어 있는 후안 디에고의 이 외투는, 그 후 수년에 걸쳐 면밀하게 조사, 분석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외투가 16세기의 직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그림에 쓰여진 안료(색소)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식민 시대 멕시코에서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섬세하고 정교한 그림이 그려졌다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현재의 멕시코에서도 가능할 지 의문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것은, 47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기적의 외투에 그려진 과달루페의 동정녀 그림은 어떤 가시적인 손상이 전혀 없이 깨끗하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주교님의 명령에 의해서, 복되신 동정녀께서 가리키신 장소에 얼마 안있어 작은 성당이 지어졌습니다. 1709년에는 원래 세워진 작은 성당 대신에 더 큰 성당이 지어졌고, 1745년에 바티칸에 의해서 과달루페의 기적은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1904년에는 두번째 성전이 ''대성당''으로 선포되었으며, 현대적 디자인과 굉장히 큰 규모의 새 대성전은 1976년 10월에 봉헌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멕시코시티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성당과 온 나라 안의 ''과달루페의 동정녀''께 봉헌된 성당에서는 12월 12일이 되면 수많은 신자들이 모여서 행진을 하고 기도와 찬양과 춤, 불꽃 놀이 등으로 ''멕시코의 여왕''을 기리는 축제를 합니다.


 


과달루페라는 호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언제나 논쟁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어쨌든 이 이름은 후안 디에고의 병들었던 삼촌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시는 동안 사용하셨던 단어를 나후아틀(인디언 언어)에서 스페인어로 번역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아즈텍 나후아틀 언어로 ''콰틀라수페''라고 말씀하셨다고 여겨지며, 그것은 스페인어의 Guadalupe'' 와 발음이 거의 똑같습니다. ''콰''는 큰 뱀이나 독사를 뜻하고, ''틀라''는 명사의 끝을 이루는데 ''the''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수페''는 눌러 부수다, 박멸하다, 밟아 깨뜨리다 등의 뜻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을 ''독사를 짓밟아버리는'' 이로 드러 내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뱀신이었던 ''퀴차콰틀''을 말입니다. 실제로 성모님께서는 뱀을 짓밟으셨고 몇년 지나지 않아 수백만 명의 원주민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으며, 사람을 제물로 삼는 의식은 끝이 났습니다.


 


과달루페의 기적 이후에, 후안 디에고는 자신의 일과 재산을 모두 삼촌에게 주고, 그 성스러운 그림이 보관된 성당에 딸린 작은 방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발현 이야기를 동포들에게 전하면서 남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는 1548년 5월 30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겸손의 모범이 되는 후안 디에고는 성모님께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저는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작은 밧줄이고, 조그마한 사닥다리입니다. 가장 끄트머리이며, 풀잎입니다.'' 2002년 7월에 멕시코시티 ''과달루페의 동정녀 대성당''에서 후안 디에고는 시성되었습니다......"


 


뭐, 이상이 과달루페가 성지된 유래되겠다. 멕시코 도착 다음날 과달루페 바실리카(몬시뇰이 거주하는 성당, 주교좌 성당은 커테드럴)에 가서 벽 높은 곳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았다. 이게 디에고가 걸쳤던 틸마(도포같은 멕시코 외투)이다. 요 밑 비데오 앞 부분에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 타고 쳐다 보는 바로 그거다. 멀리서 보아도 아주 정교하게 잘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 물감의 성분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니... 하여간, 믿고 안 믿고는 각자 신앙심 문제다.


 



바로 이것이 성모님이 그려진 후안 디에고가 장미를 쌌던 틸마이다.


 


성모님이 발현한 테페약 언덕으로 올라 갔다 내려 왔다. 바로 이 언덕에 아즈텍 문명의 여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었단다. 앞서 얘기에 나오는 주마라가 주교가 파괴해 버렸고. 언덕 내리막에는 성모님과 성모님을 경배하는 인디오들의 동상이 있다. 그 동상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이었다. 그들의 여신을 모셨던 자리에서 나타난 성모님은 인디오들에게는 그들 원래의 여신을 대체한 신으로 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그리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토착 원주민들에게 과연 진정한 가톨릭 신앙을 심어 주려고 한 것이었던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영적 정복을 위한 의식 개조용 정도가 아니었나?하는.


 



테페약 언덕의 성모님 동상


 


대 성당에는 아침 8시 부터 1시간 간격으로 계속 미사가 바쳐진다. 바로 문 앞에서는 인디오들이 모여 북 치고 장구치며 토속춤을 추고 있고. 그 소음은 미사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이긴하지만 성당에 나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단다. 영세, 아이들 첫 영성체등의 행사(?)가 있을 때, 친척들을 모두 불러 뻑적지근 파티를 벌이는 것이 신자임을 알게하는 정도란다. 그러니, 사실 이들에게는 천주교가 일종의 민속 의식 정도로 자리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은 이런 의식과 제례의 산물 정도가 아닌가?하는. 앞뒤가 바뀐 거다.


 


과달루페 대 성당을 나서서는 3문화 광장이라는데를 갔다. 토착 인디오들이 건축한 피라미드, 스페인 정복자들이 건축한 성당, 그리고 현대 멕시코인들의 외무부 청사 등 3개의 문화가 같이 있다해서 3문화라고 불린단다. 여기서 부터 나를 계속 붙잡은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의 만행(?)과 불쌍한 인디오들에 관한 생각들이었다. 바로 이곳이 아즈텍의 마지막 황제 구아데목이 스페인의 헤르난도 코르테즈에게 패해 아즈텍이 멸망한 역사의 격전장이다. 1521년 5월이었다. 안내자에 의하면 그곳 기념비에 써있는 글귀는 뭐,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닌 새로운 멕시코의 시작이다.." 이렇단다. 식민 사관이 물씬 밴 어법이다. 스페인은 멕시코 정복 후에 인디오들과 본격적으로 피를 섞어 현재는 혼혈 매스티조들이 전체 인구의 90% 정도라니 사실 이들이 손 가락질 할 곳도 없는 셈이다. 자신들도 정복자들의 자손이니까. 아즈텍이 멸망할 즈음에는 천연두가 퍼져서 약 9천만이 죽었다고 한다. 화기를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1개 대대 병력도 안되는 코르테즈의 병사 500명에게 아즈텍 제국이 멸망해 버린 데에는 천연두가 업친데 덮친 격이다.


 


이 광장에는 성당이 하나 서 있다. 피라미드를 깨 부수고 나온 돌들을 모아 성당을 지었다는 얘기는 가톨릭 신자인 나를 부끄럽게 할 정도로 쇼크였다. 성지 순례는 주교좌 성당, 산토 도밍고 성당과 로사리오 채플 구경등으로 이어지고. 금 26.5 kg을 부어 도금하고 313년 동안 건축했다는 로사리오 채플은 바로크 화려함의 극치였지만, 줄곧 내 머리에는 침략의 선봉에 섰던 가톨릭의 어두움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인디오들의 피라미드를 깨부숴 나온 돌로 그 피라미드 위에 지은 성당. 일부러 구도를 그렇게 잡은 것도 아닌데(?) 사진이 으시시하다.


 



싼토 도밍고 성당 내 로사리오 채플. 금 26.5 kg으로 도금하고 장식하고 건축하는데 313년이 걸렸단다. 장식이 아주 현란하다.


 


---


 


컴퓨터, 인터넷, 핸드폰 등 첨단 문명 기기와 관련해서 대한민국은 아마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에서 하나 정도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길에서 담배 한 대 피다가는 아마 면전에 xx년 소리 날아 오는 시간은 채 세 모금도 피지 못해서일 것이다. 남자들은 여성의 성적인 욕구에 대해 겉으로는 똥 씹은 얼굴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백만에 달하는 매춘성 직업 여성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고, 거리에 성인 영화관 하나 없으면서 몰카나 음성적 포르노의 유통량은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곳이 한국이다. 그 와중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트렌스젠더 대중 스타가 메이저 연예 씬에 존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리수가 메이저 연예계에서 인기 스타가 된 것을 보면 울나라의 기묘한 가치관의 혼란상이 드러난다. 이런게 다 위선 아닌가.


 



햐 이쁘다. 연예계에서 잘 나가는 성전환 여자 하리수.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극과 극이 존재한다.


 


위선은 대단한 게 아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딴 짓하면 ''체면'' 이 곧 위선이요, 미국에서 울나라 교포들이 당하는 차별 행위에 분노하면서 자기가 고용한 동남아 노동자 두들겨 패는 게 위선이다. 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게, 남의 작품 표절하고 아무 때나 립싱크 하면서 예술가인 척 하는 게 위선이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종교적 광신도 위선이고, 자신의 종교의 역사적 과오는 외면하고 타 민족 종교의 비 인간성만을 강조하는 것도 위선이다. 그럼, 위선자 아닌 사람 있나? 할 분들 계실 거다. 글타. 나도 너도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눈꼽만치도 위선자가 아닌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거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위선자인지 아닌지는 알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거고 그 결과 위선을 발견하면 그걸 한번 디벼보는 정도의 자세는 가져야 한다는 거다. 한발 더나아가 반성하고 고칠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왜 위선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느냐구? 앞서 종교적 위선을 언급한 부분에서 눈치 챈 사람도 있겠다. 멕시코에 존재했던 아즈텍 문명의 종교 행위의 비 인간적 잔혹성을 강조하며, 그들의 문화 유적을 말살하고 원주민을 도살하며 전파한 유럽 문명과 기독교를 자랑하는 서구인들의 위선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뭐 수학, 건축등 아즈텍 문명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긴 말 않겠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도 볼 수 있지만 ''미개인''(절대 그렇지 않지만)들이 피라미드 위에서 아이들의 심장을 산채로 도려내고 그 피를 태양신에게 바친다. 인간 제물을 바치는 의식은 대규모로 거행됐다고 한다. 단 하루에 수천 명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희생자들의 목을 베거나 피부를 벗겨내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 심장을 도려내는 짓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의식은 태양과 근접한 장소에서 피가 계단 아래로 흐르도록 높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시행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렇게 잔혹한 짓을 했을까? 왕의 권력에 항거한 자들이라서 죽였을까? 종교 집단의 권익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절대로 재미삼아 그들을 죽인 것도 아니고, 사사로운 이익이나 (종교) 집단의 권위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즈텍 문명의 논리 안에서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마야-아즈텍의 태양력에 의하면 우주에는 인간이 창조되고 난 후 4번의 대주기(大週期)가 있었다. 제1의 태양으로부터 제4의 태양에 이르기까지 4개의 태양은 물, 바람, 불, 홍수로 각각 4- 5천년의 수명을 마치고 당시는 제5의 태양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야 비문에 기록된 태양력에 의하면 2012년 12월 23일에 지금의 태양은 종말을 고한다. 인신공양은 이 다섯 번째의 태양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려는 그들의 간절한 기원에서 비롯된 의식이었다....."


 


알겠는가? 여러분. 그들은 인류의 세상 연장을 위해 태양 에너지를 공급한 것이었다. 사람을 희생으로 바치는 피의 제전은 매우 우매하고 잔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떠한 문화이든 그것은 그들의 우주관과 세계관이라는 전체적 체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혹시라도 자기의 사사로운 세계를 연장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바치는 제물은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만인을 고루 비추는 태양이 아니라 사사로운 태양을 연장하기 위한 희생이라면, 그리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희생으로 삼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딱 그짝인 것이 중세 유럽의 마녀 사냥이었다.


 


단 하나뿐인 우리 주 하느님 야훼를 믿는 가톨릭은 일신교이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의 다신교와는 달리 천사 아니면 마귀이지 잡신들이 인정되지 않는다. 마녀 사냥이 시작되기 이전의 중세 초중기에는 (실재 존재했던 않했던) 마녀, 마법사, 요정 등 비기독교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들에 대해 그다지 엄격한 기독교적 잣대를 적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 이것이 교리 해석을 둘러싼 교파나 사제, 정부, 수도사 등 식자층이나 세력간의 다툼에서 ''마녀'' 즉 힘없는 여성을 타겟으로 하게 된 것은 16 세기 초인 1517 년 루터로부터 비롯된 종교개혁을 통한 개신교의 출현 등 교회의 본격적 분열상 및 르네상스와 합리주의, 과학 등 근대적 양상의 발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은 결국 전통적 가치관을 대표하는 가톨릭 교회의 세력을 항구적으로 약화시키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와는 달리 이들 반 가톨릭 세력의 힘은 더 이상 이단이라는 명목하에 쉽게 단죄해버릴 규모가 아니었고, 여기에 더해 계속된 전쟁과 기아, 전염병 등 각종 사회적 어려움에서 오는 초조함은 자연스럽게 약자를 향한 탄압으로 연결되게 된다. 이런 약자 중 가장 만만한 것은 여성인데, 그중 40 대 중반 이후로 여성으로서의 순결, 생식 능력, 젊음의 아름다움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되는 층, 특히 장애를 갖고 있거나 건강상의 문제로 외모가 흉측한 경우에는 더욱 좋은 타겟이 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식이나 가족이 없고 마을에서 간단한 무당 역할을 하던가 산파 등으로서 생활하는 과부가 주종이었는데, 존경받지 못하면서도 두려움과 거리감을 주는 이런 존재들은 쉽게 증오의 타겟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최고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마녀 사냥의 가장 흔한 타겟은 산파 일 등으로 근근히 먹고 사는 외로운 할머니들 이었다 . 그러나 초기에는 주로 이런 사람들만을 타겟으로 하던 것이, 마녀 사냥이 일반화되어 궤도에 오른 이후에는 남녀노소와 귀천을 막론하고 서로 의심하고 밀고하는 풍조가 만연되게 된다. 연적, 정적, 빚쟁이는 물론 불화가 있는 가족 내에서조차도 꼬투리를 잡아 마녀로 밀고하는 일이 이어졌고, 지역에 따라 마녀에 대한 이런 밀고는 법적인 의무이기도 했다. 일단 마녀로 잡혀들어가고 나면 무죄 방면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변호도 기대하기 힘들었고, 자백이 나올 때까지 무자비한 고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마녀로 인정되고 나면 그 재산이 모두 국가에 압수되었으므로 정부로서는 꽤 괜찮은 돈벌이 수단마저 되었다.


 


마녀 사냥이 지속되었던 기간 동안 이런 식으로 마녀가 되어 희생당한 사람의 수는 엄청나다. 기록에 남아있는 처형의 일례로 16 세기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3 개월간 5 백명, 독일의 트레이브즈에서는 7 천명을 화형시킴으로써 마을 두 곳이 전멸했다. 하루 사이에 1 백 33 명을 처형한 작센, 1 년 동안 2 백명을 처형한 상 아라만, 17 세기 라부르에서는 4 개월 동안 6 백명, 스트라스부르크에서는 5 천명, 뷔르츠부르크에거는 8 백명, 밤베르크에서는 1 천 5 백여명. 일부의 예일 뿐이지만 이 정도 수치만을 얼핏만 봐도 그 양상에서의 광기와 증오는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르네쌍스 시대에 마녀 사냥이라. 유럽인들의 머리 속은 참말 모르겠다.


 


이들 희생자의 대부분은 실제 마녀가 아님은 물론, 마녀로 의심받을 만한 행위 자체와도 별 관련이 없었다.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사안들, 예를 들면 너무 큰 소리로 웃는다던가, 전혀 웃지 않는다거나, 혼자서 중얼거리거나, 간질병이 있거나, 사시이거나, 외모가 흉하거나, 고양이를 키우거나, 피부병이 있거나, 몽유병이 있거나, 교회를 잘 나오지 않거나, 고해를 하지 않거나, 낮에 잠을 자는 등 조금만이라도 일상을 벗어난 모든 행동이 마녀의 증거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자, 이렇게 유치 찬란하게 약자를 잡아 죽였던 유럽인들이 인류 세계의 종말을 연장하기 위한 (자기들 생각에는) 희생 제물에 대해 뭐 할 말이 있느냔 말이다. 엊그제 바다님과 한잔하다가 그가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가톨릭의 어두운 부분을 어디서 얘기나 할 수 있는가?하며. 잘못을 과감히 인정하는 용기는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한발 더 나가 반성하고 고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제 멕시코를 본 나의 생각들은 대충 추려낸 것 같다. 아직 할 얘기는 한참 남았지만, 휴, 쬐금 힘들구먼. 고만 써야지. 편히들 주무시라.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
어제:
2
전체:
74,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