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창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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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別曲
I
내가 사는 이 곳을 America라지만
United State of America가 제격이지
요약하면 U. S. A.
미국 차 타고 미국회사 다녔고 미국학교 졸업했고
미국 시민권 미국식 이름 가졌지만
그래도 U. S. A. 아니야
키도 그대로 피부색 그대로 뛰는 심장 박동 그대로
訓民正音 발음마저 온통 그대로
내게는 진달래 피고 뻐국새 우는 고향이 있어
사철 솟아 있는 뒷동산
집 앞 실개천 흐르고
알몸뚱이 뛰놀던 풀밭
발가벗고 멱 감던 방죽도 있다
비 그치면 두 다리 걷어붙이고
붕어 새우 송사리 건져 올리던 도랑과
대추나무거리는 온 데 간 데 없다만
썰매타기 자치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쥐불놀이
총알 사이 포탄 사이 목숨 부지한 6.25
밤 새워 목 터지게 울부짖은 4.19
땀 냄새 물씬한 아버지 어머니
지게에 등짐 지고 오가던 논둑길
거기가 내 고향이야
아- 그 땅에 선조들 나란히 누워 계시고
누님도 어느새 흙이 되어 계시는
봄빛 가득한
봉화산 제일봉 늘 푸른 저 소나무
태극기 날리는 조국의 하늘 아래
번쩍이는 군번 8 계단 목에 걸고
지키다가 두고 온 산하의 풀섶 어디쯤
나의 철모는 아직도 빛나고 있을까
아아- 3월과 8월이면 만세소리 가슴 헤우니
어쩔거나, 아리랑 목에 감기고
외로운 영혼의 飛翔 우러르는
나는 디아스포라
내가 이대로 엎어진다면
심장의 붉은 피 어디로 흘러갈까
아아아- 차라리 땅 끝을 돌며 피 흘리고 싶어라
돌아갈 본향 수만 리 하늘에
멈추지 않는 생애의 序詩를 쓰고 지라
II
무더운 여름 초저녁 뚝방 찾아 외치던 노방전도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고향 마을 *살그물 아이들 복음 들고 저녁 노을 달리고
달빛 별빛 골라 디디며 밤길에 세운
梨月敎會 종소리 구성지게 울리면
아- 나도 함께 따라 울어라
돗대도 없고 삿대도 없는 만경창파
자유 그것 아니면 주검을 달라
검은 하늘 밑 일제의 바람 속 눈물
멈추지 않는 종소리 여운 따라 젖어들 때
순사들 모조리 잡아 분통을 씻고 싶어
풀잎같은 어린 허리춤에 장롱 쇳대 칼 삼아 차고
고샅마다 고샅마다 지키던 내 유년이
얼음판에 곧추 선 취한 팽이로 돌 때
생솔 연기 사이 마주치는 눈물은
어머니의 눈물이었는지 내 눈물이었는지
광복의 감격이 섞어친 부정부패
못 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보면 더 못 산다
그 원한의 부정선거 자락에 물린
광화문이여 경무대여 종로여 을지로여
오후 2시, 총성을 울리던 4.19의 서울이여
쫒는 자와 쫒기는 자, 죽이는 자와 죽는 자
그 밤의 불꽃은 꺼질 줄 모르는데
총성도 없이 피 흘림도 없이 가슴 조이던
5.16의 숨 소리는
가로 누운 한강줄기 따라 말 없이 흐르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자유인은 아니었어, 문화인도 아니었어
눈물로 축축한 휴전선 피비린 산하여
세기의 밖에서 디아스포라 빈 손 저으며
깃발도 이름도 없는 만세를 부르노라
조국이여- 조국이여- 조국이여-
III
친구여
디아스포라의 이름으로 노래 부르자
라일락 오월 숲 몸을 가리고
우리의 이름을 되뇌어 보자
아- 너는 정의의 칼을 갈던
대한의 남아가 아니었더냐
원수들의 발톱을 꺾으러 나섰던
우리 아들이 아니었더냐
방언의 벽을 뚫고 흘리는 눈물
외로움을 헤매는 외길 삼만 리
가슴 속 허물도, 씻어내지 못한 죄행도
걸리적거리는 모서리 하나 없는 텅 빈 생애로
떠난 자리 부딪혀 깨져서 피 흘리는 순수
인생은 누구나 디아스포라, 가도 가도 멈추지 못하는 이방인
방황하며 눈물 젖은 눈동자에
조국은 어디나 있고 결국 조국은 아무데도 없다
가나안의 옛 서울 예루살렘은 어디 있는가
아- 아- 아- 이 땅에 나를 부르는 이 없지만
지워지지 않는 디아스포라 길에
내 머리 위로 그 위로 그 더 위로 끝없이 열리는
늘 푸른 하늘이 있어
아- 울렁이는 가슴
하늘 빛 받아 홀로 푸를리라
IV
주 여호와 나의 하나님 사랑 나그네로
디아스포라 우주에 사시는 그리스도여
내가 이 땅의 숨을 거두고 땅 아래 매장이 되거나
저 너른 태평양 물길 속으로 가라앉거나
하늘 향한 나무뿌리밑 수목장이 되거나
한 줌의 재로 남아 물결을 타고 어지러이 흩어진들
아아아- 조국을 못 잊는 나는 디아스포라
나의 생애에 영원한 그리움만 남아
본향 그리며 멀리 떠나는 하늘나그네
영원한 나는 디아스포라
* 살그물: 충북 진천에 있는 마을 이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동포)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로마서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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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주시에 대한 서정적 보고서
이형권_문학평론가, UCLA 방문교수, 충남대 교수
최선호의 “디아스포라 별곡”
한민족으로서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진지하다. “나”는 자기 자신을 비록 “미국 차 타고 미국회사 다녔고 미국학교 졸업했고/ 미국시민권 미국식 이름 가졌지만/ 그래도 U. S. A. 아니야”라고 규정한다. 이유는 “키”나 “피부색”과 같은 육체적인 조건뿐만 아니라 “심장박동”으로 상징된 정신적인 면이나 “훈민정음”으로 표상된 문화적인 면이 복합적으로 “나”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가슴에는 “6.25”나 “4.19”와 같은 역사나 “아버지와 어머니” “누님”과 같은 혈연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기에 비록 미국에 살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아리랑” 가락을 잊지 못하는 “디아스포라”라고 정의한다. 이 시의 “디아스포라” 의식은 자기정체성의 추구와 노스탤지어와 관련되는 전형적인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삶이 “이대로 엎어진다”는 가정을 하는 순간에도 “고향”을 지향하는 마음을 간직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생애가 다하는 날에도 “심장의 붉은 피”와 같은 열정으로 “고향”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지극한 그리움과 사랑을 “멈추지 않는 생애의 서시”처럼 영원히 간직하고 살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 시의 디아스포라 의식은 절실하고 절실한데, 이 절실한 마음이 곧장 시적인 감동으로 이어진다는 데에 이 시의 장점이 있다.(미주시정신 2012 여름호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