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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문 <평론> 목회자 최선호 시인의 삶과 문학 - 조옥동 시인, 문학평론가
2016.12.09 17:29
목회자 최선호 시인의 삶과 문학
(『나의 엘로힘이여』시집을 중심으로)
조 옥 동 시인, 문학평론가
1. 몸과 영혼을 바쳐 부르는 외침은 엘로힘을 향한 사랑
시인은 언어의 조각가이다. 산문은 풍경화를 있는 그대로 그릴 수 있다면 그러나 시는 대상을 시인의 눈에서 마음의 눈, 내면으로 끌어들여 시인의 감성을 이입시키어 새로운 관점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얼마나 새롭고 다시 말하면 낯설고 신선해 보이는가에 따라 좋은 시가 된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시인의 사유의 깊이가 얼마나한 압축과 생략을 통하여 명증한 이미지네이선을 이루는가가 시인의 능력이다.
특히 최선호 시인의 자연을 소재로 한 시는 비유적 언어를 압축시킨 서정의 미로 흠씬 젖어있음이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시인은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자연만큼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시재가 없으며 시시로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에서 자연현상의 긴장감을 시속에 내재시킨다. 최선호 시인은 자아와 자연과의 동일화하려는 서정성에 특기할만하다.
목회자 최선호 시인의 작품을 관통하는 줄기찬 소리는 ‘사랑’이다. 시인은 엘로힘을 입 밖에 소리 내 부르지 못하고 그 목마름을 깊이 심령 속에 자신의 생명인양 품고 사는 외로운 목회자이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순례의 길을 닦은, 생명까지 온통 무너지는 경험 속에서,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세상에서 그는 엘로힘만을 바라보며 삶은 주어진 길을 마쳐야 하고 그리고 그 길은 엘로힘에게 가는 길임을 알고 걸어가는 순례자다. 그럼에도 이민목회자, 최선호 시인은 항상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목회자로 문단의 선배 문인으로 대학의 교수로 기독교관계 또는 일반 신문의 주필이나 논설위원으로 활약하며 잠시 쉴 여가가 없다. 그의 신앙과 인품 그리고 스스로 연구하고 성취한 문학과 철학은 마치 모든 방향으로 작용하는 자장磁場과 같아 영향력의 작용범위가 넓다. 허나 그의 자력은 아무 것이나 끌어 당기지는 않는다. 이러한 강점이 여러 분야에서 그를 원하고 있다. 그는 엘로힘의 사랑을 무한히 간구하며 또한 그 받은 사랑을 펼치며 계속 그리 살기를 원하는 순례자 시인이다.
나의 엘로힘이여
태양이 변함없는 얼굴로 떠오르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모래알같이 많은 별이 반짝이며 돋는 일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들리느냐
별을 건너 별, 은하를 지나 은하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그 밖에서
적막한 천지를 깨우며 울려오는 황금나팔 소리가
우리의 뼛속까지 사무치느냐
살아 있는 것아!
귀먹은 평생을 베고 누운 가시 찔린 한밤중
어둠 걷어내는 소리를 우리는 듣지 못한다
죽어도 다시 사는 이치를
이 세상 뿌리로는 그 근본을 모른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 노래나 불러도 되는 것이 아니다
무한의 죽음 이만치서 맞이한
우리 생애의 저녁 때
마지막 남는 것은 무엇이냐
나는 지금
그대 곁으로 가는 꿈을 꾸며
시름거리는 오늘을 눈물로 씻는다
별을 딛고 하늘을 건너서 오시는
나의 엘로힘 그 피 흐름이여
성서 번역본에 따라 ‘엘로힘’은 야훼, 여호와 또는 하나님, 하느님으로 표기하였다. 본래 어원이 복수이든 단수이든 초월적 존재,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즉 만물을 다스리는 우리를 두렵게 하시는 존재이다. 이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에 울고 몸부림치며 탄식하다 기도하다 뉘우치는 밤 홀로 고독의 강을 건너 사랑을 만나러 떠나고 또 떠난다. 가다가 별빛에게 사랑을 찾아가는 길을 묻는다. 시인이 추구하는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뼛속까지 사무치는 사랑 때문에 평생을 가시 찔린 베게 위에서 밤을 보낸다.
이 시인은 ‘시를 짓는 일은 로고스와 대화하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위한 삶을 이 고백만큼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느 시인은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을 때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다고 말한다. 시인은 언어로 허물을 벗으며 살다가 시라는 자신의 목소리 하나 퍼치고 싶다. 목회자 최선호 시인은 사랑의 본체시며 생명의 근본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생명까지도 다하여 '나의 엘로힘이여' 부르고 싶어, 그리할 수 있도록 순수한 사랑의 일념으로 평생 목회자의 길을 가며 시인으로 주변을 밝혀 왔다. 스스로 정한 길을 걷기위해 보통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부요와 편안함과는 동행할 수 없었다. 아니 동행하지 않았다. 시인이 되어 시를 쓰는 행위는 그에게는 "나의 엘로힘"을 부르짖는 또 다른 방법이다.
"별을 건너 별, 은하를 지나 은하/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그 밖에서/ 적막한 천지를 깨우며 울려오는 황금나팔 소리"가 뼛속까지 사무치게 들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인이기에 아니 들을 수 있기 위하여 그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 노래나 불러도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생애의 저녁이 올 때 마지막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오직 '나의 엘로힘' 곁으로 가는 꿈을 꾸고 있는 목회자 시인이다. '나의 엘로힘'이 아니면 죽어도 다시 사는 이치를 이 세상 뿌리로는 그 근본을 모른다고 역설하며 안타깝게 '살아 있는 것아!' 시름거리는 오늘을 눈물로 씻는다.
내 눈물로
한 마리 새를 기르고 싶습니다
적막한 우주에 나를 향한
오직 한 점 사랑을 물어 나르는 새를
기르고 싶습니다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노래하는 새를
그 맑은 바람 속에 비상하는
눈물의 목숨을 갖고 싶습니다
허무도 죽음도 모르는 새를
내 은하의 하늘에
영원히 날리고 싶습니다
-「새를 위한 서시」전문
허무도 죽음도 모르는 새를 기르고 싶다고 한다. 적막한 우주에 한 점 사랑을 물어 나르는 새를 기르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 작품에는 이중적 고백이 있다.
자신을 향해 사랑을 물어 나르는 새, 마음속엔 적막한 우주공간에 있을지라도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을 물어 나르는 새 한 마리만 있다면 하는 소망이 있는 반면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맑은 바람을 타고 은하의 하늘에 닿고 싶어 눈물로 노래하는 새, 곧 엘로힘과 공존하는 그 하늘에 엘로힘만을 찬양하는 그의 사랑을 전하는 새가 되고 싶은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시인은 어느 편의 새가 될지언정 목숨을 다하여 눈물 없이는 바람 속에서 영원히 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2. 엘로힘과 문학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소리
최선호 시인은 목회자가 되기 전 모국어를 전공한 교육자로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1990년대 초 박두진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인이 되었으며 2004년에 문학평론가가 되어 미주 한국문단에 바르고 귀한 지도자의 자리에 있다. 시인이며 평론가로서 해외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 모국어 한글 진흥과 신진 문인들을 지도 양성하는데 지속적으로 공헌하고 미주문단에서 미주시인상, 가산문학상, 기독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허나 최선호 시인은 문학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후진들과 공유하면서도 무엇보다 목회자의 모습이 훼손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시인은 "나는 시를 쓰는 일에 많은 갈등을 느낀다. 시가 나의 우상이 되지 말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성직의 길을 가는 나에게 내가 믿는 하나님 외엔 그 어떤 것도 내 안의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시인은 좋은 작품을 쓰는 시인되기가 목적이기 보다 "내가 만나는 영감을 통해서 기록으로 남길 뿐이라"며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는 목회자로 강단을 지키고 신학자이며 철학자로 크리스천헤럴드 주필과 월드미션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면서와『나의 엘로힘이여』와『 노래 중의 노래』두 시집을 발간했다.
그대 고독의 끝 날은
내 생애를 가르는
억 겹 목마름
아- 나는
바람 스치는 맨살로
그대를 품은 허수아비
심령을 쪼는 새떼들의 바람 속에
떨면서 자지러지면서
땅에 엎드려 울고 싶었던
외로운 가슴에 안긴
더 외로운 이여
겨울이 오면
그대 목마름 위에
하얀 눈으로 내려 쌓여 녹아 주마
-「 더 외로운 이여」 전문
"바람 스치는 맨살로/ 그대를 품은 허수아비" 그리고 새떼들이 바람결에 심령을 쪼는 듯 아픔에 "떨면서 자지러지면서/ 땅에 엎드려 울고 싶었던" 외로운 사람, 시인은 자신보다 더 외로운 이를 품은 허수아비라고 고백한다. 이런 허수아비 품에 안긴 이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 진정 외로움을 체험한 자만이 고독한 이를 이해하기에 자신을 버려 “하얀 눈으로 내려 쌓여 녹아 주겠다” 한다. 오늘날 인정이 메마른 세상에서 진정한 사랑은 자기희생이 있어야함을 일깨우고 있다. 실제로 위대한 예술은 사랑이나 고독 아픔이 만드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최선호 시인을 처음 시단에 추천한 박두진 선생님은 "시적 대상에 대해 끈질긴 집념으로 투시하고 얼핏 나이브해 보이면서도 매우 숙성한 사고력이 작품 속에 자리하고, 신앙인답게 삶의 현실을 보는 눈이 포근하다. 그는 관념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을 토대로 하여 삶의 현장을 직시하고 있다."고 1993년 가을호「문학과 意識」에 추천의 평을 올렸다.
인간이 악기라면 시는 이 악기가 가장 잘 조율되었을 때 낼 수 있는 최상의 소리이다. 시인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는 괴로운 시를 쓰면서 인생을 달관한 순수를 갈망하는 조금은 색다른 부류의 인간이다.
최선호 시인은 '바람이 모여/ 바위가 되든지/ 바위가 쌓여 바람으로 일더라도/ 별이 되는 길을 일러 주어라// 별이 하늘에서 내려와/ 꽃으로 피더라도/ 다시 별이 되라 일러라// 허다 못해 바람이나 바위에게 까지 별이 되라 이른다. 허나 보통 사람은 차라리 별똥별이 우주층을 관통하여 떨어진 자리를 발견하고 지구에 박힌 운석을 줍기 원할 것이다. 적막한 우주에 혼자서는 못 가는 길이 있어 죽음만이 길일지라도 별이 되기를 소원하는 이는 목회자이면서 시인이기에 항상 엘로힘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하고 싶은 목마름이 하늘에 있는 별로 존재하기를 고백하고 있다.
연한 잎으로 돋아나서 건초로 눕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을
허리 구부리고 나부끼었느냐
하늘 향해
막막한 우주를 우는
빛의 막대기
빛의 지팡이
가슴을 밝히는 촛불 같은 거
이제 남겨야 할 말은 무엇이며
흔들고 싶은 마지막 깃발은
어디 있느냐
가을볕바람에
돌이 킬 수 없는 너의 넋은
몇 만 가슴 다시 흐느껴야
이 땅에 가득할
새싹으로 태어나느냐
빈들에서
떼죽음 당하는 목숨들아
-「가을풀잎」전문
사람의 숨결은 사람마다 다르다. 인간의 호흡과 작은 동물인 새의 호흡이나 더구나 하루살이 미미한 생명체의 호흡이 다르다. 우리의 호흡과 연한 잎으로 돋아나서 건초로 눕기까지 빈들에서 드디어 떼죽음 당하는 작은 식물과는 얼마나 다른가를 말하여 무엇 하리. 허지만 이 시인은 풀잎의 하찮은 생명을 보며 세상에서 홀대받고 아프고 궁핍하여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하는 가엾은 군상을 연민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인은 가을 빈들에 널려 있는 마른 풀잎을 바라보며 인생의 허무한 호흡을 그려내고 있다. 호흡의 시작부터 끝 날까지 살아가는 인생이나 하잘 것 없이 말라 죽는 초목이나 많은 아픔을 허리 구부러질 때까지 나부끼다 마감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말이다. 그는 세상에서 빛의 막대기, 빛의 지팡이로 서서 슬픈 가슴을 밝히는 촛불 같은 존재를 생각한다. 이 시인의 가슴은 언제나 따뜻하고 영혼은 높은 곳에 닿아 밝고 맑다.
철철 우는
저 불바다를 어쩌랴
와서 살다 가는 빛
가지마다
은하 저편 수억 년을 건너 온
별빛들의 열림 그 아우성
누가 펼치는가
이 뜨거운 통곡을
-「단풍」전문
시인은 가을 단풍을 철철 우는 불바다로 본다. 나뭇가지마다 매달린 붉은 단풍잎들을 삶의 완숙으로 본다. 나뭇잎 하나하나는 은하 저편 수억 년을 거쳐 찾아 온 별빛들의 열림이라 보는 시인은 단풍 한 잎도 만들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임을 탄식한다. 그는 시작노트에서 “이토록 찬란한 감격은 하나님만이 펼치시는 큰 잔치이다. 단풍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향해 펼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손이다.” 고백한다. 감사의 감격이 뜨거워 그는 창조주의 손길을 잡고 있다.
햇볕 햇볕 햇볕/ 바람 바람 바람/ 그 사이에 내가 산다// 땀 뻘뻘 흘리다가/ 문풍지처럼 운다// 어둠 내리는 소리를/ 어둠 걷히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도 못하면서/ 귀 기울이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한다// 인생이 무엇이길래/ 먼 하늘에 매달려보는/ 하루가 있다// -「어떤 하루」전문
땀 뻘뻘 흘리며 하루하루를 긴장하여 문풍지처럼 울며 살다보면 햇볕 쨍쨍 쪼이는 대낮이 바람 부는 밤으로 어느새 바뀌었다. 또한 곤한 잠에서 깨어나면 마치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하는 동안 하루가 지나가고 만다. 그 하루들이 연장된 인생을 보내면서 들어야할 미세한 음성에 귀기우리지 못한 채 지난 아쉬움에 시인은 인생이 무엇이냐고, 제대로 사는 인생은 어떤 것이냐고 하늘을 향하여 외치고 있다.
벽 속에 갇혀서
눈물 젖은 악기를 두드리노라면
어느새 저녁이 무너져 내리고
결국
한 줌 흙이야 되겠지만
아직은 살아 있어서
나 혼자만이라도
울 수 있는 행복은
늘 벽 속에 갇혀 있고
-「일상」전문-이민일기
서늘한 들녘에/ 태양도 몸을 가리는/ 가을 끝자리// 낱낱의 이삭마저 쪼아 먹힌 노을 속/농부가 버리고 간 허수아비// 새떼를 쫓던 아우성의 평생은/ 달을 보며 별을 보며/ 땅을 치며 울고 싶었던// 목 울음// 새들아/ 여기는 내 땅이다/ 여기는 내 땅이다// -「절규」전문
이민 1세는 어디서나 외롭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다. 언어의 벽, 세대 간 소통의 벽, 인종의 벽, 직장의 문제 등, 마치 벽 속에 갇혀 있는 알몸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뚫고 나갈 통로는 보이지 않거나 희미하고 확실치 않다. 이민 1세는 상쾌한 음을 내지 못하는 눈물 젖은 악기와 같다. 밤마다 피곤한 몸은 아무리 두드려도 생기를 돋아주는 희망보다 아직 호흡할 수 있다는 생명력을 감사하기엔 답답할 뿐이다.
이민자는 노마드, 노스탤지어의 대명사로 변두리 외곽만을 걸어가는 인생이다. 허나 "가을 끝자리 낱낱의 이삭마저 쪼아 먹힌 노을 속 농부가 버려둔 허수아비"같이 새떼를 쫓던 절규 "여기는 내 땅이다/ 여기는 내 땅이다"라는 처절한 절규는 꿈에라도 주류의 대열에 서서 당당하게 역할을 하고 싶은 이민자들의 공통된 절규임을 우리는 이해하고 공감한다.
디아스포라는 떠나 온 외인으로 조국이란 이제는 그리움의 대상은 될지언정 이곳 발 붙여 살아야할 미주의 이 땅만이 오직 내 땅이라 외치기라도 해야 눌린 가슴이 좀 뚫릴 것 같다. 이 절규는 몰고 온 가족과 자라는 2세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앞날의 소망과 다짐을 그들에게 들려주고픈 눈물겨운 외침이다. 목회자인 시인은 자연을 통하여 신앙과 인생을 관조하고 언제 어디서나 엘로힘, 곧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공정하심을 발견하려는 그의 애씀이 처절함을 엿보게 된다.
3. 목회자와 시인 사이에서 성취한 최고의 선
최선호 목사는 메시야감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할 당시 2006년 『시편정해』를 발간하였다. 책이 800 페이지나 되는 방대함에 놀랍기보다는 원고 작성에 10년, 교정보는 데 2년을 쏟아 부은 노작으로 참고문헌 목록만 3페이지에 주석이 195개이다. 그는 "시에는 상징과 생략이 많으며 시편은 3000년 전 시라 당시 사회상이나 표현법이 오늘날과 차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한국 시는 남녀 간 수평적 관계의 감정을 많이 노래한 데 비해 시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수직적 관계가 주라 정서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기독교인들의 시편 이해를 돕기 위하여 책을 발간하는 목적과 동기를 소개했다.
역작인『시편정해』를 발간 전까지 그는 다른 저서「땅의 실수 하늘의 은혜」와 「나의 엘로힘이여」를 내 놓지 않은 사실만 보아도 얼마나 이 한권의 책을 위하여 애정을 갖고 심혈을 쏟았는가를 미루어 볼 수 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그는 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은 일만으로 충분히 실행했다고 인정할 만하다.
"유한한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서 나온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의 실재와 그의 섭리를 표현하기는 역부족하다. 그러므로 상징이거나 간접적이거나 비유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상징을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 즉 상징의 의미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곧 상징의 내용과 의미는 올바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고 역설한다. 그는 말씀을 읽을 때 문자에만 매어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함을 염려한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하려면 문자를 통해야 하는데 말씀으로 주시는 영적세계에 도달해야 하며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한 첫 몫은 문학을 통한 성경의 바른 이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 계신 하나님의 음성이 인간의 이성세계에 들어 오셔서 문자로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상징. 압축, 생략, 직유, 은유, 풍자, 풍유, 대유, 제유, 환유……등, 알레고리적 수사가 많기에 문학적 양식이 없이 성경을 보면 허황된 이야기의 나열로만 보이기 쉽고 영적 세계에의 도달이 어려워진다. 즉 성경의 바른 이해가 진리를 아는 첩경이라" 한다. 그는 이에 이르는 충심으로 시편 앞에 무릎을 꿇고 10년을 기우렸다. 사실 본론과 직접 관련이 적은『시편정해』발간의 배경과 사유를 이곳에 밝힘은 시인으로서 그리고 목회자 최선호를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고 볼 수 있게 함이다. 목회자 최선호만으로 아니면 시인 최선호만으로는 엘로힘을 향한 절절한 사랑의 외침이 절대자를 경외하고 있는 영혼의 통곡임을 기독교인은 물론 시인들에게 깊은 감동으로 전하지 못할 염려 때문이다.
“시는 감동 있는 영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영성을 가지려면 시심을 품어야 한다. 인간의 생애는 영감과 감동으로 짜여진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 살면서 영성 있는 감동을 만나는 생활은 바로 시를 가까이 하는 삶이다.”-「시편정해」의 여는 말에서
그는 목회자이면서 어찌하여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는가 하는 사유를 밝히고 있다. 성찰하고 감각하며 거기에 영성을 형성하는 목회자 시인은 이방인으로 주류를 찾아 본류를 동경하기보다 변두리를 돌보며 이민사회에서 한없이 절실한 안정과 사회적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신앙인의 표본이 되고 있다.
눈물에 적시고 또
피에 불려서야 써지는
그 생애는
선혈이 뚝뚝 떨어져
다시 꽃이 된다
아! 그 속에
피 묻은 그리스도가 웃고 있다
-「장미」의 일부
장미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가시를 품어 안고도 최상의 향기와 꽃으로 피어남에 있다. 누가 이 장미를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우는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네 이웃이 잘못을 계속할 때는 방치의 죄를 짓지 말고 네 이웃도 견책함이 이웃을 피붙이 같이 여기는 마음일 것이다. 눈물에 적시고 피에 불려서야 써지는 생애같이 선혈이 뚝뚝 떨어져 다시 꽃이 되는 줄을 알기에 바로 그 속에서 그리스도 엘로힘을 발견한다. 이민 목회자 최선호 시인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분 엘로힘을 목이 메어 부르고 있다.
<끝>
LA거주 1941년생 서울대 사범대학 졸업, 1976년 이주
워싱턴대 수학 대학재학시 서울대대학신문사 주최 문예공모 입상
제1회 재외동포문학상, 현대시조 작품상
경희대학교 및 한국평론가협회 해외문학상
현재 UCLA 의과대학 생리학 연구실 연구원
최선호 시인은
1939년 충북 진천 출생
목사 시인 문학평론가 크리스천헤럴드 고문
저서: <시편정해> 외 6권 PENMISSION 창립
월드미션대학교 미주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역임
수상: 기독언론인상 가산문학상 기독문학상 미주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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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살아오고 있지만, 요즈음 놀랍게도 감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중에 <목회자 최선호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글을 쓰신 조옥동 시인 때문입니다. 먼저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올림이 마땅한 예의인 줄 압니다. “축하합니다”는 이 글을 쓰신 분은 “밝은 미래 중앙신인문학상” 문학평론부문에 입상하여 영예로운 문학평론가가 되셨기 때문이고, “감사합니다”는 필자에 대한 글을 쓰신데 대한 기쁨에서 우러나온 인사입니다. 이는 조 시인과 필자 사이에 지워지지 않는 반짝반짝 빛나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의 생애 중 이런 일을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끔 문인들 중에는 제 작품에 대한 평을 하신 분이 더러 계시긴 하지만 이번에 쓰신 평론처럼 집약적인 글은 처음입니다. 일생을 살면서 이런 만남을 몇 번이나 가지게 될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쁨으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귀한 일입니다.
문학평론이라면 대개 문학작품에 대한 평이 일반적인데, 문학작품에 대한 평은 물론, 목회자로서의 단면까지를 언급하셨으니, 이야말로 목회자로서 문학에 귀기우리고 살아온 저에게 목회와 문학평론만이 아니라 인생 면모를 알뜰히 다룬 느낌이 들 정도로 저를 향한 세밀한 관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에게 있어 분에 넘치는 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붉어지는 얼굴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쓴 분의 가슴에 언제부터 이토록 저에 대한 관심과 이해와 감쌈이 작용해 있었는지-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고맙습니다.
평소에 부분적으로 느끼고 생각해 오던 조각들을 한데 모아 짜임새 있는 문장으로 줄줄이 엮으셨음에 더욱 감사한 생각이 솟구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임을 절실히 실감합니다. 이 바쁜 세상에 더구나 이민자로서의 초침 같이 숨 막히는 삶을 살면서 어느 누가 자비롭게 이런 사랑을 베풀어 준단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믿음의 힘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문학평론이지만 이는 문학의 힘만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함께 하셨음을 믿습니다. 따라서 조 시인의 일생동안 쓰시는 글 가운데는 분명 이토록 따뜻한 그리스도의 능력이 함께 감동해 주실 것입니다. 조 시인의 맑고 밝고 뜨거운 심령을 기울여 쓰신 이 글의 한 자 한 자를 마음에 새기며 시인이 기원해 주신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소망을 품고 살아가리라 마음다짐을 합니다. 아무쪼록 더욱 건강하셔서 우리 한국문단에 참으로 귀한 등대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