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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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우물 안 개구리의 세상 구경 / 수필

2021.07.10 08:50

민유자 조회 수:6

우물 안 개구리의 세상 구경

 

 일생을 우물 안에서 나고 살아온 늙은 개구리가 처음으로 우물 밖을 구경했다면 어땠을까? “아하! 하늘이 이렇게 크고 넓은 줄 몰랐었네!” 첫 번째로 그렇게 말했을 게다.

 

 세상사 흐르는 강물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흘러 제자리를 떠나 가게 되어있으니 무심히 지나면 소소한 일상의 감동적인 순간들, 일생의 역사적인 순간들까지도 모두 구름처럼 흩어지게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때마침 발병이 나서 양쪽 발을 차례로 수술받으면서 오랜 침상 생활을 하고 1년 가까이 두문불출하게 되니 시간이 많아졌다. 옛 글들을 모두 꺼내어 다시 하나씩 찬찬히 읽어보니 얼마나 소중한지! 이렇게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망각 속에 묻혀 연기처럼 사라졌을 테고 그랬다면 얼마나 아까울지 모르는 보물 같았다.

 

 세월이 약이란 말은 참 많은 의미를 갖는다. 상당히 오랜 세월 글공부를 하지 않고 무심히 지내왔는데도 그동안 눈에 띄지 않게 성숙한 내면이 있었던지 옛 글들을 보니 표현이 서투르고 진부해서 많이 다듬었다. 솎아내고 자르고 새로운 생각을 끼워 넣어서 정리하고 새로 지은 시들을 합해 놓으니 시집 한 권 분량이 되었다. 이것들을 묶어놓고는 나 자신과 나름 꽤 많은 씨름을 했다. 과연 거금을 들여 이것을 세상 밖에 내놓을 것인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공연한 헛손질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 허튼짓이 되진 않을까?

 

 내 시집에 ‘꿀물 마신 콩나물’이란 시가 있다. ‘보행이 불안정하여 지팡이를 짚고 / 강의실에 오시는 노사 / 평생을 걸어 오른 / 산등성이 높다 // 백발이 무색한 초롱한 눈망울 / 인생을 조망하는 황혼녘 / 눈부신 노을은 취하도록 아름답다 // 쉴 틈을 주지 않고 / 옹기종기 모여드는 제자들 / 꿀사랑을 내린다 / 진액이 다 하도록 // 꿀물 마신 콩나물 / 쑥쑥 자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존경하는 스승으로부터 받는 매는 달고, 격려와 칭찬은 세상을 뒤엎을 만한 위력이 있다. 평생을 우물 안에서 나고 자란 개구리가 우물 속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튀어나갈 힘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결국 내 지난 삶의 꽃들은 한 권의 단정한 시집『왕도 안 부럽소』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어느 덧/ 사랑은 물결처럼 퍼져나가고/ 그리움은 안개처럼 밀 려오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형제들 중에 제일 못난이/ 미련한 짓 골라가며 하던 나/ 울보에다 / 오줌싸개에다/ 성적은 꼴찌였 던 나/ 곁길을 모르고 자라/ 외길로 살아온 칠십여 년/ /꿈결 같아라’라는 문구 말미에 서명을 했다. 미국에 와서 삶에 골몰하느라 연락을 두절하고 지내왔던 먼 친척들에게까지 “아 그 어리바리하던 계집애 유자가?”라고 놀란 얼굴 할 것을 상상하며 책을 발송했다. “유자가 미국 가더니 이런 삶을 살았구나!” 하면서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져서 숨을 고르느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한 친구는 “어제는 냉장고에 삶은 고구마가 뒹굴고 있어 물컵 과 함께 움켜쥐고 며칠 전 받은 친구의 시집을 안고 뒤뜰 벤치로 나갔다. 온몸은 햇볕에 스르르 녹고 진솔한 시는 얼마나 내 마음을 녹이는지. 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봄꽃들과 함께 나도 왕도 부럽지 않구료”라는 글을 보내왔다.

 

 평생 손바닥만 한 하늘만 보고 살아온 개구리가 우물 밖에 나 가서 넓은 하늘을 헤집고 다니는 중이다.

 

https://youtu.be/99HBk5oEkM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