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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301시간 동안의 외출
2007.02.10 16:31
301시간 동안의 외출
-유럽 견문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반 최정순
간다간다 하던 그날이 왔다.
하늘만큼 부푼 가슴을 안고 나보다 더 큰 가방을 끌며 집을 나섰다. 대한(大寒)을 하루 넘긴 이른 아침인데 상기된 기분 때문인지 차가운 느낌보다는 오히려 시원했다. 가슴을 펴고 하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전주전동성당에 모인 서른 두 명의 일행은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커다란 가방을 챙겨 일찍 버스에 타고 있었다. 신부님 한 분과 의사와 한의사가 한 분씩 타고 있어 걱정 없다며 모두들 좋아했다.
버스 안에서는 고추장, 멸치, 김, 밴댕이 젓갈까지 가져왔다는 등 이야기꺼리가 푸짐했다. 운동화는 얼마주고 샀고, 유로화는 얼마를 환전했으며, 달러는 얼마를 가지고 가며,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외국여행은 처음이라는 등 참새들이 재잘거리듯 조잘대고 있었다. 앞쪽에서 와르르 웃으면 또 뒤쪽에서 와르르 웃는 등,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 같았다.
여행을 다녀봤지만 메모를 한 일은 없었다. 이번만은 꼼꼼히 메모를 해보리라 결심하고 메모장을 세 권이나 챙겼고, 볼펜도 다섯 자루나 준비했다. 디지털카메라로 1,000장정도 찍을 수 있는 칩도 준비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드디어 암스테르담 행 비행기에 올랐다. 재잘거리고 깔깔대더니 벌써 다들 깊은 잠에 빠져있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는 테러방지를 위하여 철저히 검사를 했었다. 우리 일행은 복잡한 관문을 뚫고 모두 무사히 통과했다. 여권을 잘 챙기라고 당부하는 가이드는, 지금부터 시계를 뒤로 8시간 늦추라고 했다. 시차는 8시간. 다시 아테네 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지역은
그리이스(아테네 - 에게해 - 에기나섬 -고린도 -히오스 -에페소 - 카파도키아),
터키(앙카라 - 이스탄불)
스페인(바르셀로나)
포르투갈(리스본 - 파티마 - 까보다로카)
프랑스(파리)
암스테르담 공항이었다.
이번 여행은 성지순례였다. 시차로 어질어질한 몸을 학대라도 하듯 강행군은 시작되었다. 메모를 해보려 했던 것이 첫날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어려운 지명과 이름, 가이드의 빠른 말투, 머리만 숙이면 멀미가 났고, 눈은 차창 밖 풍경을 봐야 하는데, 차라리 사진이나 많이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메모하는 일은 미련 없이 포기했다.
둘째 날 그리스 에기나 섬에서의 일이다. 실수로 디지털 카메라를 바닷물 속에 퐁당 빠뜨리고 말았다. 사진 찍는 일까지 놓쳐버렸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사진은 다른 사람들이 찍으면 얼른 가서 서주기만하면 되었다. 사진 찍노라 신경 쓰지 않아서 더 좋았다. 카메라를 떨어뜨려 고장 난 사람은 나 말고도 셋이나 더 있었다.
미끄러운 대리석에서 넘어진 사비나(세례명)는 왼쪽손목이 부러져 그리스 병원에서 깁스를 하고 왔다. 셋째 날 필로메나(세례명)는 허리가 아파 한의사한테 침도 맞았다. 체하고, 멀미나고, 몸살 끼가 있고, 룸메이트가 코를 곤다, 방이 춥다 덥다, 음식이 입에 맞다 안 맞다, 많은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다.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잇달았다. 12박 13일의 긴 여정을 많은 수가 움직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셋째 날이 지나고나니 몸과 마음이 풀려 여행에 맛들여져갔다. 언제 이곳에 또 오랴하는 생각에 가이드의 뒤를 열심히 따라다녔다.
신화속의 나라가 바로 그리스다. 성서 속에서만 접했던 에페소, 고린도, 가파도키아다. 많은 신전과 유적들, 오랜 세월동안 파괴되고, 지진으로 인해 땅에 묻혀졌다. 파르테논신전의 기둥만 서있는 모습은 마치 육탈이 잘된 유골을 보는 것 같았다. 산위에 자리한 집터일수록 고관들의 집터고, 상인이나 노비는 낮은 지대에서 살았단다. 폐허된 목욕탕을 보며 얼마나 쾌락과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터키로 갔다. 한국인이란 것을 알고 첫마디가
“대~한민국 짝짝짝!”
하며 반겨주었다. 아직도 2002년 서울월드컵을 못 잊는 모양이었다. 식당에서 그 도시의 시장을 만났는데
“I like Korea!”
라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가이드에게 ‘우스크다르’민요를 신청해 듣기도 했다. ‘우스크다르’ 마을 어느 처녀의 애절한 짝사랑을 노래한 연모가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는 한결 기분이 좋았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하여 기념으로 황영조 거리를 만들었단다. 익산 황등 돌을 옮겨다 비석까지 세워놓았다. 피카소와 천재건축가 가우디를 낳은 도시다.
‘체력은 국력 이다.’ 란 말이 실감났다. 황영조 선수가 자랑스러웠다.
포르투갈로 갔다. 유럽의 서쪽 끝에 위치한 땅 끝 마을 까보다로카 에서 대서양을 만났다. 대서양의 푸른 물결과 흰 파도를 보는 순간, 자연 앞에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넓은 아량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리라 다짐했다.
파티마로 갔다. 1917년 5월 13일 세 소녀에게 성모님이 나타난 자리라고 했다. 당시 10세였던 루시아 수녀는 3년 전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나는 고개를 숙여 소원을 빌었다.
두 번째로 파리에 온 나는 너무 감사했다. 세느강을 유람하면서 한강이 더 아름답다는 자부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에펠탑을 보는 순간, 철탑의 웅장함 앞에 고개가 숙여졌다. 엘리베이터로 오르면서 내가 마치 바벨탑을 쌓아 올린 바벨론 사람인 것 같았다. 인간의 본성은 오르면 오를수록 더 높이 오르고 싶은 욕망덩어리인가보다. 에펠에게 에디슨 같은 과학자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금도 눈앞에 떠오르는 곳이 있다. 그리스 에기나섬에서의 일이다. 크루즈를 타고 일행과 와인 잔을 기울이며 황홀한 석양을 만났을 땐 한참동안 몰아지경에 빠져들었다. 60평생 그토록 아름다운 석양을 만나본 적은 없었으니까. ‘산타루치아’, 스페인민요 ‘아이아이’를 부르면서 마음속에 쌓인 아집을, 교만을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닷물 속에 던져버렸다. 악몽 같았던 순간은 그리스에서 터키로 가는 야간 페리호를 9시간 탄 기억과, 높은 파도를 만나 몹시 뱃멀미를 한 기억이 생생하다.
숨 가쁘게 구경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오늘 저녁식사는 한식으로 나온다는 말에 손뼉을 치며 함성을 질렀다. 아무리 현지식이 유명하고 맛있다 해도 음식문화의 벽은 어쩔 수 없나보다. 밥은 밥인데 생 쌀밥에 향료는 왜 그리 강한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을 수가 없었다. 모처럼 밥 꼴을 본 우리들은 식충이가 되고 말았다. 김치와 된장국을 먹은 그날 저녁엔 비싼 물을 마셔댔다. 파리에서 달팽이 요리도 너무 짰다. 빵에다 고추장을 발라 먹기도 하고, 가지고 간 컵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며, 고국의 음식을 그리워했다.
인생을 알려면 여행을 많이 해보라고 했고, 그 사람을 알려면 여행을 같이 해보라고 했다. 여행이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긴 여행이든 짧은 여행이든 그 속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서려있다
벌써 12박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기쁨 반 아쉬움 반으로 짐을 꾸렸다. 드디어 KL 865편 좌석번호 39G에 몸을 실었다. 매너가 좋은 관광객이란 긍지를 가지고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메모하는 일을 포기한 것이다. 좋은 글을 쓰기위해서라도 메모습관을 가져야겠다.
방을 같이 쓸 수 없다며 불평하던 누시아와 비비안나는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맞댄 채 자고 있다. 멀미를 할 때 비닐봉지를 나눠주며 오물을 치워줬던 요셉도 머리를 깊숙이 묻고 단잠에 빠져있다. 와인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치던 회장님도 안도 속에 잠을 청하고 있다.
12박13일의 여정은 막을 내렸다. 가슴을 펴고 하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주님! 감사합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켜주tu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집에 도착하니 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2007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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