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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햇무리
2008.01.17 18:23
햇무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이의
“따르릉! 따르릉!”
모닝 콜 소리에 일어나니 새벽 4시다. 졸린 눈을 비비며 태곤이를 깨워 서둘러 옷을 입고 로비로 나가니 모두들 연일 강행군에 지쳐 하품을 하고 있었다. 서둘러 버스에 탄 관광객들은 모자란 잠을 보충하려고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자다 깨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는 눈을 감아도 머리는 멍한 상태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랜드 캐년을 향해 한참을 달리자 어둠을 헤치고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무심히 커튼을 젖히던 난 우리나라에서 보던 여명과는 다른 장관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새벽하늘이 물들기 시작하는 동쪽 지평선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붉은 햇무리와 구름이 어우러진 광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 따라 천군만마가 지나는 듯 하더니 평화로운 전원이 펼쳐지기도 하며 천태만상을 그리고 있었다.
잠은 달아나고 활동사진보다 더 현란한 장면들은 달리는 버스에서는 헤아려 보기도 어려웠다. 깨어있는 사람은 운전자와 나 둘뿐, 아름다운 여명을 혼자 보는 것이 안타까웠다. 새벽은 어둠 가운데 밝음이 살아있어 어두움을 서서히 몰아내고 밝은 빛이 세상을 열어 가면 어느 듯 하느님을 우러러 기도를 하게 된다.
빛은 생명이요, 기쁨이요, 소망이고, 진리다. 모든 생명체는 빛에서 태어난다.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고, 희망이다. 나뭇잎이 돋아나고, 꽃봉오리가 터지며, 땅속 깊은 곳의 씨앗도 깨워 일으킨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현란한 햇무리 속에 붉은 빛의 원천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 순간 내 안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희망이 솟아오르는 감격의 전율이 전해 왔다. 그리고 신비스럽고 강력한 힘이 내 몸속으로 스며 들어오는 것 같았다. 눈이 부시도록 찌르는 듯한 햇살이 구름과 부딪치며 펼쳐지는 붉은 빛의 쇼는 마음속까지 환하게 비추어 가슴이 환하게 트이는 것 같았다.
우린 매일 뜨고 지는 해를 몇 번이나 보았을까. 매일 밖으로 나가지만 하늘 한 번 쳐다보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고 살라고 직립으로 만들었다는데 네발 달린 동물처럼 땅만 보고 산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해돋이를 보고자 우정 찾아가서 보기도 하지만 사막지대인 이곳에서의 새벽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햇살이 창을 두드리자 하나둘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감탄사를 연발하자 버스 안이 술렁이며 아침을 맞는 듯했다.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먹은 아침식사는 깔깔한 입맛이어서 수프로 대충 때우고 다시 출발하였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랜드 캐년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계곡을 내려다 본 순간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숨이 탁 막혀 ‘후’하고 긴 숨을 내쉬어야 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감성으로 전해 왔다. 오묘하고 웅장한 작품을 한정된 시야의 범위에서 볼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전망대가 절벽에서 말발굽형태로 21m가량 돌출되어 있다고 한다. 8cm 두께의 강화유리 아래로는 콜로라도 강이 흐르고, 이 신의 위대한 걸작품을 1,200m위 다리에서 내려다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멀티스크린으로 대신하고 아쉬움을 달래며 버스에 올랐다.
창밖에는 내리꽂히듯 따가운 햇살이 황량한 사막을 덮고 있었다. 사막의 햇살은 쏘는 듯이 눈이 부셨다. 햇살을 바라보던 난 문득 따가운 그 계곡에서 빛의 쇼를 연출한다면 얼마나 굉장할까? 라스베가스에서 봤던 전자 쇼의 현란한 아름다움이 신의 조각품에 미칠 아름다움을 떠올려 봤다. 또한 새벽에 햇무리가 빚어낼 불투명의 신성함, 그리고 태양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질 형상도.
현재 전망의 구조물이 설치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랜드 캐년을 관리하는 월터파이 부족이 자연훼손을 염려하였지만 부족의 어려운 생활 때문에 결국은 수용되었다고 한다. 파리의 철 구조물인 에펠탑도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점철된 탑은 아름답다. 만약 그랜드 캐년이 늘어 부족의 생활이 나아진다 하더라도, 자연이 준 선물을 자연 그대로 보존함이 인류가 지켜야할 본분이려니 싶다.
“휴게소에 왔으니 가죽피리를 부세요.”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어리둥절하더니 피식 웃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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