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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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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언저리 어느 날, 친구 손에 이끌려 아주 작은 섬으로 소풍을 간 일이 있다.
그곳은 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섬, 도심의 뒷골목에 있는 찻집의 이름이 섬이었다.
그곳은 정현종(69, 1939.12.17~) 시인의 시 〈섬〉을 기리는 집이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조그만 액자로 걸려 있던 시구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처럼 외로운 심사를 위로 받았을까.
나 혼자만이 '섬'이 아니라 모두가 섬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고마운 시였다.
'사람이 /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 앉아 있거나 / 차를 마시거나 /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 (중략) /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 그건 잘 모르지만 //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시인의 다른 시처럼 나는 그 섬을 다녀온 후 언제나 '풍경으로 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 장석남·시인·한양여대)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 역시 그 섬에 가서 살고 싶다. 모두 다른 사람의 섬에 가 닿고 싶다.
사랑하고 싶고 온전히 알고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그 반대로 자신도 타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누구나 사람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
여기에서의 더불어 살기는 단순한 몸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 속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다른 맥락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 그 행복은 개인의 자아실현을 통해서 일어나며
그 자아실현은 사회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
자신도 행복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 기꺼이 자신의 도움을 받아줄 '타인'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시인 정현종은 현대인을 섬에 비유했다. 서로 단절되어 홀로 떠있는 고독한 섬.
자아보다는 외부, 정신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화된 물질이 중심이 된 섬.
그래서 외로움과 소외, 무력함이 온 몸을 휘감아 까칠한 삶이 되는.
그런 섬으로 표류하는 이가 어디 현대인 뿐이랴. 뿌리가 뽑혀 위협받는 이들의 섬은 더 황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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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적막’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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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적막 - 문태준 · 시인 · 애송시 100편 中 제34편
이 시처럼 정현종(69) 시인은 작품을 통해 삶의 생기를 발견해내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전후의 한국 시단에 팽배해 있던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경향을 내내 보여주었다.
그는 사물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고, 만물과의 우주적인 교감을 노래했다.
그는 탄력 있는 생각의 샘을 소유한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은유적, 율동적인데, "가벼움, 경묘(輕妙)함이 나의 시론의 하나"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가볍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 자유로운 정신은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일 터.
해서 정현종 시인은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시인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단 두 줄로 짧게 쓴 시 '섬'은 많은 독자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시이며,
그가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네루다와 로르카, 옥타비오 파스 등 외국 시인들의 시집과 시론서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어둠 속에서도 샛별처럼 빛나야 하는 것.
우리의 영혼은 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튀어오르는 공처럼 생동해야 하는 것.
시인은 한 대담에서 "이 세상이 내 앞에 처음으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라. 그렇게 살라"고 당부한다.
오늘은 그의 시 '꽃시간'을 함께 읽어보자. 당신에게도 오늘이 꽃시간이기를, 안팎이 둥근 꽃팔찌의 시간이기를.
"시간의 물결을 보아라./ 아침이다./ 내일 아침이다./ 오늘밤에/ 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 나의 물결은/ 푸르기도 하여, 오/ 그 파동으로/ 모든 날빛을 물들이니/ 마음이여/ 동트는 그곳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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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네’
갈수록, 일월(日月) 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Chac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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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2판, 1995,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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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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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너, 내 마음속의 시소 - 장석남 · 시인 · 한양여대 교수
즐거운 것은 대개 피어나거나 솟아나는 형태로 온다. 팬 보리밭의 종달새를 보라.
아지랑이를 보라. 봄에는 싹이 솟아나고 여름엔 숲이 솟는다. 가을엔 하늘이 드높아 짙푸르지 않던가.
꽃대도 솟고 웃음도 솟는다. 만국기 아래 운동회의 아이들이여! 그 통통 튀는 솟아오름이여!
그 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샘솟는' 것. 샘솟는 것엔 우선 견딜 수 없는 싱그러움이 있다.
울음마저도 샘솟는다고 하면 얼마나 후련한가. 그윽하고 차분한, 그럼에도 발 동동 구르고 싶은 기쁨과 인내가 거기엔 있다.
시인 정현종은 기쁨과 솟아오름의 시인이다.
그의 시는 '싹'이나 '샘물'이나 '날개'처럼, 또 '풍경'처럼 가볍게 떠오르는 것들을 찬양한다.
그래서 '마음이여 몸이여 무거운 건 얼마나 나쁜가'(〈바람이 시작하는 곳〉)라고 노래하기도 한다.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으리요. 제아무리 큰 설악산 울산바위 같은 것도 가볍게 날개를 달아 날려 보낼 정도의 쾌활함과 저력이 그의 50여년 가까운 시력 내내 일관되게 빛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삶이 마냥 솟아오르기만 하던가. 역설적이게도 솟아오르는 것은 무거움의 전제 없이는 가능하지 않는 것.
이 시는 그 양가적인 세계를 가장 간결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너'는 맘속에서 시소와 같다.
사랑도 살아 있는 것이므로 일정할 수 없으니 때로 무겁게 가라앉는 갈증이 된다.
갈증이 없다면 샘솟음도 없는 것. 샘솟음이 곧 고통이고 갈증이 기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시인은 일찍이 그 사랑을 '고통의 축제'라고 정의했었다.
참 물맛을 알기 위한 갈증의 축제, 그 마라톤이 곧 사랑인 셈이다.
갈증과 샘솟음의 양 극단을 오르내리는 시소놀이에서 높이 샘솟을 때
우리는 세상과 우주의 환희를 알며 다시 낮게 내려앉을 때 겸손과 견딤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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