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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문학회 초청 문학캠프 특강의 소감 · 이용욱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전라일보 ·2015.05.07
 버클리문학회 초청 문학캠프 특강 소감 · 이용욱 <전주대 국어문학과 교수>
  버클리,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문학의 민낯

- 2015년 5월 7일자 전라일보 이용욱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연구 년을 맞아 일년 동안 낯선 미국땅으로 떠나기로
마음먹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다
더 나를 괴롭힌 것은 무기력이었다.

학문이 구조조정되고, 대학이 기업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문학을 강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려면 국어가 중요해서 선택했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사치인지를 깨닫게 되자
강의는 고역이 됐고 내 삶도 지루해졌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문학은 여전히 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버클리문학회라는 단체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 문학 특강을 요청한 것이다.
몇 번의 고사 끝에 결국 난 타호 호수에서 열리는 문학캠프에서 특강을 하기로 하였다.

대부분 6-70대인 회원들이니 대충 시간을 때우면 되겠지 하는 심산이었다.
초행길이라 회장님의 배려로 다른 회원님의 차를 얻어 타고 가면서 난 특강에 대한
염려보다는 에메랄드 물빛이라는 레이크 타호의 절경을 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 삼일 동안 난 타호 호수의 에메랄드 물빛보다
더 깊은 버클리문학회원들의 진지함과 열정에 매료되어 버렸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빡빡하게 진행된 문학캠프는 매번 주어진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내가 강단에 선 이래 이런저런 자리에서 많은 특강을 해 왔지만 이번 문학캠프처럼
흥분된 경험은 처음이었다. 회원들은 내 강의를 단순히 듣고 있지만 않았다. 수시로
질문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가끔은 내게 조언까지, 강의는 중간 중간 끊겼지만
내가 준비한 주제에 대한 회원들의 호기심은 20대 대학생들보다 훨씬 더 집요했다.
문학의 운명에 대해 그들의 낙관은 천진했지만, 그것은 디지털 매체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 아니라 그 차가운 속성마저도 품어내는 문학의 따뜻한 힘과 역할에
대한 온전한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디지털에서 문자의 죽음을 읽었고 결국 문자예술인 문학도 서서히 소멸될 것
이라 생각했었다. 문학의 운명에 대한 내 판단은 문자의 운명과 연동된 것이었는데
문자는 문학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결국 내 비관은
피상적인 현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문학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천착을 못해낸
학문적 미성숙의 결과였다.

타호에서 돌아오면서 난 생각했다.
낯선 이국땅에서 하루하루 경계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그들에게 문학은 대체 어떤 위안을 주었을까? 그게 무엇이길래
평생 문학에 대한 연모와 연정의 끈을 놓지 못했던 것일까.

초로의 신사에서부터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까지 소년처럼 소녀처럼 웃음짓게
만드는 문학의 힘. 난 과연 우리 학생들에게 제대로 문학을 강의하였던 것일까.
모두 내려놓고 다 비우고자 찾은 미국 땅에서 난 뜻하지 않게
문학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문학이 무엇인지, 문학을 문학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왜 문학을 해야 하는지. 이 물음들은 19살 처음 국어국문학과의 신입생이 됐을 때 교수님이 내게 던졌던 질문이었는데 막상 국문과 교수가 된 나는 대학 신입생들에게 이 질문을 하지 못하였다. 그 핑계를 문학을 수단화하는 학생들 탓으로 문학을 시장 논리로 재단하는
현실 탓으로 돌렸지만 사실은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못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답이 없는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그래서 내 문학 수업은 지루했고 고역이었던 것이다

버클리에서 보낸 일 년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었다.
잊고 있었던 질문을 다시 내게 하는 시간이었다. 강의실을 떠나
난 문학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않을 것 같은 먼 이국땅으로 갔다.
그곳에서 모국어로 시 한편, 수필 한편, 소설 한편 쓰는 것에 감동하고 즐거워하는,
같이 모여 문학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문학을 하는 분들을 만났다.
굴곡진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주름진 얼굴에, 고국을 떠날 때 그 모습 그대로
멈춰버린 것은 맑은 눈동자를 지닌, 책장을 넘기고 펜을 잡을 때마다
두려움과 행복 때문에 긴장한다는 부지런한 손가락을 가진 분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분들을 통해 가장 행복한 문학의 민낯을 보았다.
내 문학의 2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전라일보 이용욱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2015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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