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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문학관 소나기 - 황순원 원작

2015.03.25 09:21

arcadia 조회 수:6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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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_high.gif   소나기 - 황순원 원작
honybee.gif  | 소나기 - 황순원 원작

소년은 징검다리에 앉아 물장난을 하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세수를 하다 말고 물속에서 조약돌을 집어 '이 바보' 하며
소년에게 돌팔매질을 한 후 가을 햇빛 아래 갈밭속으로 사라진다.

다음날 개울가로 나와 보았으나 소녀는 보이지 않는다.
그날부터 소년은 소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에 쌓인다.

어느 토요일, 소년과 소녀가 개울가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소녀가 비단조개를 소년에게 보이면서 말을 건넨다.

그들은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들판을 달려 산밑까지 간다.
가을꽃을 꺾으며 송아지를 타고 놀다가 소나기를 만난다.
수숫단 속에 들어가 비를 피한다.
내려오는 길에 물이 불은 도랑을 소년은 소녀를 업고 건넌다.

그 후 소년은 소녀를 오랫동안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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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_high.gif   소나기, 1978 - 이영수,조윤숙,김신재 -
honybee.gif  소나기 (1978년) - 이영수,조윤숙,김신재

EBS 한국영화걸작선에 다시 소개되면서 70년대 이 영화를 보았던 30대 관객은 물론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크게 어필하여 화제가 되었다. 감독의 증언에 따르면
EBS 방영 직후 촬영지를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만큼 이 영화에는
자연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단지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동심과 아름다운 첫사랑은 감독 자신의 설명대로 "자연 그자체" 로만
표현되고 있다. 논에 걸쳐져 있는 거미줄, 풀벌레, 작은 꽃, 내울의 반짝임 등을 근접촬영한
화면이 아름다운 금강 주변의 정경과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사이사이에 인터커트되는데
그 편집의 리듬감과 아름다운 색채는 당시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유려한 것이다.

《소나기》는 황순원 원작소설을 아름다운 영상미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주로 로케이션을 한 곳은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와 송호리 입니다. 이 동네에서는
금강을 양강이라 부르는데, 석이가 연이를 업고 건너던 개울이 바로 양강입니다.
촬영당시의 울창한 소나무과 숲이 현재도 잘 보존되어져 있습니다. 또 강선대에 올라서서
영화 속의 석이처럼 금강을 굽어 내려다보며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볼 수도 있습니다.

석이가 연이의 상처 난 무릎을 치료해 주는 스틸 사진 장면이 도드라집니다.
빛이 분위기 있게 들어오는 푸른 숲에는 석이가 보입니다.
나무위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다가옵니다.

타이틀의 글씨는 아주 굵은 고딕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단정하고도 깔끔한 구성입니다.
오른쪽의 배경에는 매우 감각적인 카피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조약돌을 주물러본 버릇이 있습니까?
당신도 비단조개를 줏어본 추억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최초연인은 누구입니까?”


영화의 뛰어난 영상미와 더불어서 포스터의 디자인도
이러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 줄거리 - 석이는 개울가에서 서울서 전학온 윤초시의 증손녀 연이를 만난다.
연이는 석이와 친해지려고 하나 석이는 피하기만 하는데 석이도 연이가 며칠동안
보이지 않자 허전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석이와 연이는 단풍구경을 갔다가 소나기를 만난다.
둘은 원두막에서 소나기를 피한 다음 무사히 돌아오나 몸이 약한 연이는 열병을 앓게 된다.
몸이 나은 연이는 개울가에 나와 석이를 만나자 읍내로 이사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날 석이는 덕쇠영감이네 호두를 따서 연이에게 주려고 개울가로 달려가나 연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당골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연이의 죽음을 알려주자 소리없이 울음을 삼킨다.

감독 : 고영남 / 각본 : 이진모 / 각색 : 윤삼육
출연 : 이영수 조윤숙 김신재 김지환 박원호 주영훈
제작 : 남아진흥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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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ybee.gif  황순원의 ‘소나기’

‘소나기’ 황순원의 경험담? -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 -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 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황순원 단편 『소나기』 中

짧은 시간 동안 갑자기 세차게 쏟아졌다가 그치는 비처럼,
어느 가을날 한줄기 소나기처럼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 소년과 소녀의
안타깝고도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소나기』는 황순원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이다.
오늘(3월 26일)은 소설가 황순원(黃順元,1915.3.26~2000.9.14)이 태어난 날이다.

그는 원래 시인에서 출발하여 소설로 정착하였으며, ‘시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형 문장을 사용하고 직접적 대화보다는 감각적 묘사와 서술적 진술, 옛날 이야기나
전설을 현재의 사건과 융합시키는 환상적인 수법을 통해 소설에 설화적 분위기를 부여했다.
『소나기』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 황순원이 가족들과 함께 피난처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황순원은 1915년 3월 26일,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태어났다.
만 4세 때 그의 부친은 3.1운동 때 평양 숭덕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한 일로 1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한다.
1921년 만 6세 때 가족 전체가 평양으로 이사하고, 만 8세 때 숭덕소학교에 입학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으며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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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년 뒤인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을 출간하였다.
일제의 간섭을 피해 1943년부터 고향 빙장리에 머물러 있던 황순원은 해방되고 9월에
평양으로 돌아가지만, 곧 공산 치하에서 지주 계급으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이듬해 가족들과 월남한다. 그해 9월에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취임한다. 그때까지 가끔
시도 쓰고, 주로 단편소설도 써왔는데, 처음으로 장편 구조를 가진 『별과 같이 살다』를 일부
발표했다. ‘곰녀’라는 한 여성의 육체적 신분적 수난을 중심으로 일제 말기에서 해방전후의
열악한 시대상황을 부각시키고 있는 이 작품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은 1952년의 일이다.

1948년에는 7편의 단편을 수록한 『목넘이마을의 개』를, 1951년에는 「별」 「그늘」 등이
수록된 소설집 『기러기』를, 1952년에는 11편의 단편을 담은 단편집 『곡예사』를 출간했다.
이듬해인 1953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학」과 「소나기」가 발표되었다. 이후 「학」은 이를
표제작으로 총 14편 단편소설을 수록한 단편집 『학』으로 출간된다. 1956년 말에 발표된 이 작품집 속에는 전쟁을 겪으면서 생명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 작가의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1953년 9월부터 『문예』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5회를 연재하고, 잡지는 폐간되지만 작가는
그 뒷부분을 따로 써두었다가 이듬해 겨울에 단행본으로 출간한 『카인의 후예』는 그를 단편 작가로 머물지 않게 한 작품이다. 평양에서 지주로 살던 작가 집안이 북한 공산주의 체제가
성립되면서 뿌리뽑힘을 겪어야 했던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고 알려졌다. 이 시기 북한 실상을 다루면서도 오작녀, 도섭 영감 등 토착적 삶을 배경으로 하여 급박하게 변화를 겪으며 살아
숨쉬는 인간상을 창조하여 존재 의미와 사랑의 가능성을 묻고 있는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57년부터 경희대학교에 부임하여 문학적 분위기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확보한 상태에서
더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다. 경희대학교에서는 특별한 보직 없는 평교사로 23년 6개월을
봉직하고 또 말년까지 계속 명예교수로 있었다. 이 시기에 단편집 『잃어버린 사람들』과
『너와 나만의 시간』, 『탈』,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 『움직이는 성』, 『신들의 주사위』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1985년에 고희 기념집으로 낸 『말과 삶과 자유』 는 수필류를 쓰지 않은 황순원 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산문집으로, 그의 인생관, 문학관,
미래관 등을 엿볼 수 있는 짧은 산문들로 채워져 있다. 예술원 원로회원을 역임했고, 아시아 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 문학상, 인촌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경희대학교 국문과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많은 문인들을 배출해냈으며, 2000년 9월 14일 86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소설가인 아들(황동규)과 딸(황시내)가 있다.

※ 황순원의 대표작 ※

소나기 : 황순원 단편집
황순원 저/강우현 그림 | 다림
만약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음직한 이성에 대한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처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동묘사를 통해 내면의 심리를 두드러지게 하는 수법으로 영상처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소나기』에서도 소녀와 소년의 심리가
행동묘사로 독특하게 처리돼 있다. 또한 물의 이미지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 변화가 소설의 구성을 단단하게 해주는 묘미가 있는
단편소설이다.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honybee.gif  황순원의 ‘소나기’

황순원의 소나기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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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曾孫女)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 다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 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개울 기슭에서 하 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년은 개울둑에 앉아 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요행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소녀가 길을 비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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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이 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 속을 빤히 들여다 본다.
얼굴이라도 비추어 보는 것이리라. 갑자기 물을 움켜 낸다. 고기 새끼라도 지나가는 듯.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단발 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잇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갈꽃뿐.

이제 저쯤 갈밭머리로 소녀가 나타나리라.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됐다.
그런데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발돋움을 했다. 그러고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됐다.

저 쪽 갈밭머리에 갈꽃이 한 옴큼 움직였다. 소녀가 갈꽃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천천한 걸음이었다. 유난히 맑은 가을 햇살이 소녀의 갈꽃머리에서 반짝거렸다.
소녀 아닌 갈꽃이 들길을 걸어가는것만 같았다.

소년은 이 갈꽃이 아주 뵈지 않게 되기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문득, 소녀가 던지 조약돌을
내려다보았다. 물기가 걷혀 있었다. 소년은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날부터 좀더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는 날이 계속될수록 소년의 가슴 한 구석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주머니 속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한 어떤 날, 소년은 전에 소녀가 앉아 물장난을 하던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 보았다.
물 속에 손을 잠갔다. 세수를 하였다.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검게 탄 얼굴이 그대로 비치었다. 싫었다.

소년은 두 손으로 물 속의 얼굴을 움키었다. 몇 번이고 움키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소녀가 이리로 건너오고 있지 않느냐.

'숨어서 내가 하는 일을 엿보고 있었구나.'
소년은 달리기를 시작했다. 디딤돌을 헛디뎠다. 한 발이 물속에 빠졌다. 더 달렸다.

몸을 가릴 데가 있어 줬으면 좋겠다. 이 쪽 길에는 갈밭도 없다.
메밀밭이다. 전에 없이 메밀꽃 냄새가 짜릿하게 코를 찌른다고 생각됐다.
미간이 아찔했다. 찝찔한 액체가 입술에 흘러들었다. 코 피였다.

소년은 한 손으로 코피를 훔쳐내면서 그냥 달렸다.
어디선가 '바보, 바보' 하는 소리가 자꾸만 뒤따라 오는 것 같았다.

황순원의 소나기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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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었다.

개울가에 이르니,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건너편 가에 앉아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모르는 체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소녀 앞에서 한 번 실수를 했을 뿐,
여태 큰길 가듯이 건너던 징검다리를 오늘은 조심스럽게 건넌다.

"얘."

못 들은 체했다. 둑 위로 올라섰다.

"얘, 이게 무슨 조개지?"

자기도 모르게 돌아섰다. 소녀의 맑고 검은 눈과 마주쳤다.
얼른 소녀의 손바닥으로 눈을 떨구었다.

"비단조개."

"이름도 참 곱다."

갈림길에 왔다. 여기서 소녀는 아래편으로 한 삼 마장쯤,
소년은 우대로 한 십 리 가까운 길을 가야 한다.
소녀가 걸음을 멈추며, "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일 있니?"
벌 끝을 가리켰다.

"없다."

"우리, 가보지 않으련? 시골 오니까 혼자서 심심해 못 견디겠다."

"저래 봬도 멀다."

"멀면 얼마나 멀기에? 서울 있을 땐 사뭇 먼 데까지 소풍 갔었다."

소녀의 눈이 금새 '바보,바보,'할 것만 같았다.
논 사잇길로 들어섰다. 벼 가을걷이하는 곁을 지났다.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소년이 새끼줄을 흔들었다. 참새가 몇 마리 날아간다.
'참,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텃논의 참새를 봐야 할걸.' 하는 생각이 든다.

"야, 재밌다!"

소녀가 허수아비 줄을 잡더니 흔들어 댄다. 허수아비가 자꾸 우쭐거리며 춤을 춘다.
소녀의 왼쪽 볼에 살포시 보조개가 패었다.

저만큼 허수아비가 또 서 있다. 소녀가 그리로 달려간다. 그 뒤를 소년도 달렸다.
오늘 같은 날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소녀의 곁을 스쳐 그냥 달린다. 메뚜기가 따끔따끔 얼굴에 와 부딪친다.
쪽빛으로 한껏 갠 가을 하늘이 소년의 눈앞에서 맴을 돈다. 어지럽다.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 저놈의 독수리가 맴 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다보니, 소녀는 지금 자기가 지나쳐 온 허수아비를 흔들고 있다.
좀 전 허수아비보다 더 우쭐거린다.

황순원의 소나기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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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이 끝난 곳에 도랑이 하나 있었다. 소녀가 먼저 뛰어 건넜다.

거기서부터 산 밑까지는 밭이었다.

수숫단을 세워 놓은 밭머리를 지났다.

“저게 뭐니?”

“원두막.”

“여기 참외, 맛있니?”

“그럼, 참외 맛도 좋지만 수박 맛은 더 좋다.”

“하나 먹어 봤으면.”

소년이 참외 그루에 심은 무우밭으로 들어가, 무우 두 밑을 뽑아 왔다.
아직 밑이 덜 들어 있었다. 잎을 비틀어 팽개친 후, 소녀에게 한개 건넨다.
그리고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듯이, 먼저 대강이를 한 입 베물어 낸 다음,
손톱으로 한 돌이 껍질을 벗겨 우쩍 깨문다.

소녀도 따라 했다. 그러나, 세 입도 못 먹고,

“아, 맵고 지려.”

하며 집어던지고 만다.

“참, 맛 없어 못 먹겠다.”

소년이 더 멀리 팽개쳐 버렸다.

산이 가까워졌다.

단풍이 눈에 따가웠다.

“야아!”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 그런데, 이 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그러나 소녀는

“하나도 버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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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께로 올라갔다.

맞은편 골짜기에 오순도순 초가집이 몇 모여 있었다.

누가 말할 것도 아닌데,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유달리 주위가 조용해진 것 같았다.
따가운 가을 햇살만이 말라가는 풀 냄새를 퍼뜨리고 있었다.

“저건 또 무슨 꽃이지?”

적잖이 비탈진 곳에 칡덩굴이 엉키어 꽃을 달고 있었다.

“꼭 등꽃 같네. 서울 우리 학교에 큰 등나무가 있었단다.
저 꽃을 보니까 등나무 밑에서 놀던 동무들 생각이 난다.”

소녀가 조용히 일어나 비탈진 곳으로 간다. 꽃송이가 많이 달린 줄기를 잡고 끊기 시작한다.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만다. 칡덩굴을 그러쥐었다.

소년이 놀라 달려갔다.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이끌어 올리며, 소년은 제가 꺾어다 줄 것을 잘못했다고 뉘우친다.
소녀의 오른쪽 무릎에 핏방울이 내맺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생채기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홱 일어나 저 쪽으로 달려간다.

좀 만에 숨이 차 돌아온 소년은

“이걸 바르면 낫는다.”

송진을 생채기에다 문질러 바르고는 그 달음으로 칡덩굴 있는 데로 내려가,
꽃 많이 달린 몇 줄기를 이빨로 끊어 가지고 올라온다. 그리고는,

“저기 송아지가 있다. 그리 가 보자.”

누렁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 주는 체 훌쩍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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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예서 뭣들 하느냐?”

농부 하나가 억새풀 사이로 올라왔다. 송아지 등에서 뛰어내렸다.
어린 송아지를 타서 허리가 상하면 어쩌느냐고 꾸지람을 들을 것만 같다.
그런데 나룻이 긴 농부는 소녀편을 한번 훑어보고는 그저 송아지 고삐를 풀어내면서,

“어서들 집으루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참 먹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뭇잎에서 빗방울 듣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뜩선뜩 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 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비 안개 속에 원두막이 보였다. 그리로 가 비를 그을 수밖에.

그러나 원두막은 기둥이 기울고 지붕도 갈래갈래 찢어져 있었다. 그런 대로
비가 덜 새는 곳을 가려 소녀를 들어서게 했다. 소녀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깨를 자꾸 떨었다.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의 어깨를 싸 주었다.
소녀는 비에 젖은 눈을 들어 한번 쳐다보았을 뿐, 소년이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그러면서 안고 온 꽃묶음 속에서 가지가 꺾이고 꽃이 일그러진 송이를 골라 발 밑에 버린다.

소녀가 들어선 곳도 비가 새기 시작했다. 더 거기서 비를 그을 수 없었다.
밖을 내다보던 소년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수수밭쪽으로 달려간다.
세워놓은 수숫단 속을 비집어 보더니, 옆의 수숫단을 날라다 덧세운다.
다시 속을 비집어 본다. 그리고는 소녀쪽을 향해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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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숫단 속은 비는 안 새었다. 그저 어둡고 좁은 게 안됐다.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녀가 다시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할수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는 꽃묶음이 우그러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소년의 몸기운으로 해서 떨리던 몸이 적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소란하던 수숫잎소리가 뚝 그쳤다. 밖이 멀개졌다. 수숫단 속을 벗어나왔다.
멀지 않은 앞쪽에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붓고 있었다. 도랑 있는 곳까지 와 보니,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뛰어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녀는, 어머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그러안았다.

개울가에 다다르기 전에 가을 하늘은 언제 그랬는가 싶게
구름 한 점 없이 쪽빛으로 개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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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은 소녀의 모습이 뵈지 않았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매일 같이 개울가로 달려와 봐도 뵈지 않았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살피기도 했다.
남몰래 오학년 여자반을 엿보기도 했다. 그러나 뵈지 않았다.

그 날도 소년은 주머니 속 흰 조약돌만 만지작거리며 개울가로 나왔다.
그랬더니 이쪽 개울둑에 소녀가 앉아있는 게 아닌가. 소년은 가슴부터 두근거렸다.

“그 동안 앓았다.”

알아보게 소녀의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다.

“그날 소나기 맞은 것 때메?”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인제 다 낫냐?”

“아직두..........”

“그럼 누워있어야지.”

“너무 갑갑해서 나왔다.......... 그날 참 재밌었어........
근데 그날 어디서 이런 물이 들었는지 잘 지지 않는다.”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본다.
거기에 검붉은 진흙물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소녀가 가만히 보조개를 떠올리며,

“이게 무슨 물 같니?”

소년은 스웨터 앞자락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내 생각해 냈다. 그날 도랑건널 때 내가 업힌 일 있지? 그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소년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저 오늘 아침에 우리집에서 대추를 땄다. 낼 제사 지낼려구.........”

대추 한 줌을 내어준다. 소년은 주춤한다.

“맛봐라.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심었다는데 아주 달다.”

소년은 두 손을 오그려 내밀며,

“참, 알두 굵다.”

“그리구 저, 우리 이번에 제사 지내구 나서 좀 있다 집을 내주게 됐다.”

소년은 소녀네가 이사해 오기 전에 벌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윤초시 손자가
서울서 사업에 실패해 가지고 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고향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게 된 모양이었다.

“왜 그런지 난 이사가는 게 싫어졌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전에 없이 소녀의 까만 눈에 쓸쓸한 빛이 떠돌았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었다.
그렇건만 소년은 지금 자기가 씹고 있는 대추알의 단맛을 모르고 있었다.

이날 밤, 소년은 몰래 덕쇠할아버지네 호두밭으로 갔다. 낮에 봐 두었던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봐 두었던 가지를 향해 작대기를 내리쳤다. 호두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별나게 크게 들렸다.
가슴이 선뜩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굵은 호두야 많이 떨어져라, 많이 떨어져라,
저도 모를 힘에 이끌려 마구 작대기를 내리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 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짚었다.
그늘의 고마움을 처음 느꼈다. 불룩한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호두송이를 맨손으로 깠다가는 옴이 오르기 쉽다는 말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근동에서 제일가는 이 덕쇠할아버지네 호두를 어서 소녀에게 맛보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그러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더러 병이 좀 낫거들랑 이사 가기 전에
한번 개울가로 나와달라는 말을 못해 둔 것이었다. 바보 같은 것, 바보 같은 것.

황순원의 소나기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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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고
닭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다.그 말에도 대꾸도 없이,
아버지는 안고 있는 닭의 무게를 겨냥해 보면서,

"이만하면 될까?"

어머니가 망태기를 내주며,

"벌써 며칠째 '걀걀'하고 알 날 자리를 보던데요. 크진 않아도 살은 쪘을 거여요."
소년이 이번에는 어머니한테 아버지가 어디 가시느냐고 물어 보았다.

"저, 서당골 윤 초시 댁에 가신다. 제삿상에라도 놓으시라고… …."

"그럼, 큰 놈으로 하나 가져가지. 저 얼룩수탉으로……."

이 말에, 아버지는 허허 웃고 나서,

"임마, 그래도 이게 실속이 있다."

소년은 공연히 열적어, 책보를 집어던지고는 외양간으로가, 쇠잔등을 한 번 철썩 갈겼다.
쇠파리라도 잡는 체.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 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 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 세상일도……."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윤 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 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曾孫)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 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어버리고……."

"어쩌면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 윤 초 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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