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우산 1.jpg


저 멀리서 노란 우산이 걸어 온다. 
내 동공이 활짝 열렸다. 
거의 45년만의 해후다. 
흐린 잿빛 풍경 속으로 걸어오는 노란 우산! 
색상 중에 가장 명도가 높은 노란 우산은 풀숲에서 환히 웃고 있는 봄날의 민들레를 닮았다.
환한 웃음은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덩달아 웃게 한다. 
노란 우산의 등장에, 생각은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새 먼 추억의 길로 들어섰다. 
1970년대 중반.
난 일본에서 처음으로 노란 우산을 보았다.
그것도 색깔이 너무나 예쁜 샛노란 우산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파란 비닐 우산 아니면 검은 우산을 주로 썼다. 
노란 우산은 내게 새로운 눈뜸이었다. 
나는 주저없이 노란 우산을 샀다. 
그때부터 나는 비만 오길 기다렸다.
그러다, 비가 오는 날이면 흰색과 남색이 어우러진 체크 무늬 레인코트를 입고 노란 우산을 펼쳐 길을 나섰다.
비오는 포도 위에 높은 스타카토로 따각거리는 내 하이힐 소리가 그렇게 경쾌할 수 없었다. 
만남이 약속된 연인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았다.
빗소리가 좋고, 모네 말년의 그림처럼 흐려진 빗속의 풍경이 좋고, 흐느적대며 내 몸을 감아오는 레코드 가게의 샹송이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도한 자세로 노란 우산과 함께 걷고 있는 내 젊음이 좋았다. 
젊음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과 패기였을까.
아니면, 노란 우산이 애드벌룬처럼 띄워 준 기분 때문이었을까. 
150센티 남짓한 키에 45kg의 작은 체구.
미인이 아니면 어떻고 팔등신 몸매가 아니면 어떤가. 
‘나는 나의 아름다움으로 살아간다!’
노트에 굵직하게 써 놓은 내 철학대로 살면 그만이었다.
젊음은 허세도 동반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포켓에 가득한 행복’이란 명화 제목도 있지만, ‘포켓’ 대신 ‘마음’이란 말로 바꾼다한들 내 기분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이다. 
세상 다 얻은 듯 행복하고 즐거웠다. 
노란 우산 하나가 준 행복치고는 과분할 정도로 큰 행복이었다. 
노란 우산!
그건 빛나는 청춘 시절 속에서도 가장 명도 높은 내 아름다운 추억의 상징물이다.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빛나던 청춘도 샛노란 우산도 다 사라졌지만 오늘 다시 만난 노란 우산은 내 젊은 날 아름다웠던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행복한 해후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명도 높은 노란 우산을 쓰고 다시 한 번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저만치 멀어져 간 젊음이 혹 노란 우산 속으로 뛰어들지 누가 아는가.  
 
P.S : 흔쾌히 모델이 되어주신 송코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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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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