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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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연극 관람평 해나와 공포의 가제보

전희진

 

한인이 희곡에 연출가와 출연한 배우의 대부분이 한인으로 구성된, 괜찮은 연극을 가보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엘에이에서 그것도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 관람은 나로선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인 이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극화하였다고 있다. 관람하는 내내 나의 부모님과의 지난날들을 보는 듯하였다.

해나라는 한국인 이세와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문화적 충격과 세대 간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Hanah and dread Gazebo 원제이며 박지혜 작가의 작품이다. 그녀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희곡을 강의하는 교수이며 희곡작가이다.

 

무대의 배경은 미국과 한국이다. 중의 대사는 대부분 영어로 진행이 되었는데 종종  자막이 제공되지 않은 한국어의 대화도 나왔다.

등장인물로 주인공인 해나, 그녀는 30세이며 의사가 되려고 신경과 보드 시험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는 50, 교수이며 가족 중심의 사고를 가진 인물이다.

어머니 또한 50세이며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살아가며, 티브이 한국 드라마가 유일한 삶의 낙이다. , 22 그녀의 남동생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하루하루를 목적 없이 살아간다.

 

1 막은 어둠 속에서 시작이 된다. , 도시의 밤거리가 들린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여자가 나타나고, 팔을 벌리더니 무대에서 사라진다. 무대는 다시 어둠에 휩싸인다.

블루 정장을 입은 주인공 해나가 서울에서 보내온 Fedex 상자를 펴본다. 속에는 할머니의 자살 편지와 작은 유리병이 들어 있다. 해나 유리병을 만진다. 안에는 작은 돌들이 들어 있다. This is the story of wish. (희망의 메시지)라고 말하고 병을 흔든다.

편지에 쓰여 있는 한글을 이해할 없는 그녀가 근처 한인이 운영하는 세탁소를 찾아가게 되고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알게 되는 할머니의 비극적인 소식. 해나의 할머니가 노인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사건이다. 자살 소식을 전하는 부분에서 세탁소 주인 아주머니의 한국식 영어 발음과 서투른 제스처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실수로 뛰어내린 곳은 군사분계선의 남쪽이 아닌 , 북한이었던 것이다. 사실들을 해나가 하나하나 추적해 나간다.

할머니의 시신을 수습하려면 북한 통치자인 김정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가 순순히 내줄리는 없고......

순간 커다란 김정일의 얼굴이 공포스럽게 또한 코믹하게 관객들에게 오버랩되어 온다.

해나의 부모는 그녀가 의사 시험 준비로 바쁜 것을 고려하여 그녀에게 사건을 (할머니의 투신자살 사건) 말하지 않은 것이다.

 

막이 바뀌어 그녀의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려 애를 쓴다. 그러나 애를 쓰면 쓸수록 언덕이 가팔라진다. 금속성의 자전거의 바퀴와 페달이 힘겹게 서로 반목하며 불일치하여 돌아가는 소리. 언덕이 가팔라질수록 그가 페달을 힘겹게 누르고......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다. 장면은 이민 세대가 이세들에게 추구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한인 가정의 철학과 생활 문화를 은유를 통하여 암시하는 장면이다. 부모 세대와 세대가 다른 자식들 간의 사고방식과 생활 문화 차이를 바퀴와 페달 간의 불협화음으로 표현하였다고 본다.

 

해나는 언젠가 있었던 아버지와의 통화 내용을 떠올린다. 너는 걱정할 없다. 의사 보드 시험이 주일 남았어. 지금 순간이 네게 제일 중요해. 아버지는 딸에게 시험이 주일밖에 남았음을 remind 준다.

아버지의 말씀은 당연하고 말이 되는 것이지만, “BULLSHIT!”이라고 마디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면서 해나가 하얀 의사복을 벗어 가지런히 접어놓으면서 말한다. 12년의 사립학교와 4년간의 대학생활, 4년간 의대 대학생활 4년의 레지던시와 1년의 신경과 휄로우쉽, 마지막 3개월간의 공부와 현재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우리 이민 일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그들이 미국에 이민 것은 오직 하나 자식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은 부모의 꿈에 닿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다. 그런데 욕망은 욕망을 불러오고 그러는 사이 그들의 자식들은 자기 자신을 서서히 잃어 간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찬찬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20 만에 그녀는 한국에 나가 할머니 때문에 한국에 미리 나온 부모님을 만난다. 남동생 전철에서 만난 노인에게서 나라의 전설을 듣게 된다. 이것은 원래의 단군신화에서 옆으로 비켜 나간, 퓨전 스토리이다. 곰이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해서 낳은 자식, 단군신화를 각색한 같다. 곰과 호랑이가 마늘 냄새 지독한 굴속에서 백일을 채우면 사람이 되는 이야기.

이를 전하는 동생의 rap싱어처럼 줄줄 쏟아내는 장면이 자칫 빠질수 있는 극중 분위기의 건조함을 막아 준다.

 

소극장에서 진행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앞에서 천둥소리, 덜컹덜컹 들려오는 전철의 소음, 한국에 아버지가 전하는 서울의 고층빌딩과 호화찬란한 서울 거리의 모습을 대형 스크린에 담아서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한 실체감을 주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연극의 제목,‘공포의 가제보에 대한 은유를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몰라 여러날 고민을 하였다.  LA times 의 비평에서는 공포의 가제보의 상징성을  컴퓨터 판타지  게임 '나는 네게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다'에서의 일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적고 있다. 

공포의 가제보 ‘(전망대)를 군사분계선 전망대 곧 남북 간  분단 현실의 풀 수 없는  과제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될 것 같다.

 연극 해나와 공포의 가제보 미국에서 한인이 희곡 작품에 한인이 제작 연출하고 대거 한인들이 배우로 출연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무엇보다도 분단 현실을 거론했다는 점이 참석한 관객들에게 (많은 미국인들이 참석)크게 어필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