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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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다짐/ 수필

2024.05.03 16:00

yujaster 조회 수:27

다짐 / 민유자

 

  오늘은 토요일. 지역 신문의 호외에 12면에 걸친 인근 동네의 가든 투어 안내가 나왔다. 이것은 연례 행사로 올해는 46집을 기자가 미리 탐방하여 간략한 특징을 소개한 기사와 주소가 실렸다.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이웃 두곳을 선정하여 다녀왔다. 

길에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벌써 여러 사람이 꽃마당에서 사진도 찍고 밝은 표정으로 담소도 하면서 감상하고 있다. 중에 꽃무더기가 달린 넓은 모자를 쓰고 화보를 찍어도 좋을 만큼 멋진 차림을 하고 세련되고 예쁜 수공예 핸드백을 들고 꽃같은 백인 할머니가 있었다. 가냘프고 구부정한 몸매에 칠면조 턱살을 보니 상당한 고령의 파파 할머니로 보인다. 자꾸 눈길이 가고 단연 돋보였다! 

국대접 연보라색 장미가 탐스러이 마당 가운데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히야! 파피꽃을 여기서 보네!” 파피꽃이 옆길을 따라 활짝 웃으며 반긴다. 다양한 꽃들이 없이 많고 특이한 트로피칼 나무도 많고 다육이도 많지만 집은 정원 장식용 소품이 엄청 많다. 패티오의 양쪽 기둥에는 함석으로 만든 물뿌리개가  스무개도 넘게 엮어 매달려있다. 곳곳에 화분 대용으로 정원용 카트도 열개는 되는 같고, 코발트색 유리 꽃병도 수도 없이 많아 패티오 천정에 매달려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이 별별 빈티지 용품의 화분과 소도구들이 많다. 개러지 세일이나 여행중에 정원용품이 보이면 눈에 뜨이는 대로 사다가 모은 같다.

집은 이사 오면서 테니스장을 정원으로 바꾼 곳이라 . 마당을 몇군데로 나누어 이름의 팻말을 붙이고 분위기를 달리 구분해서 정겹게 가꾸어 놓았다.

 

  나중에 집은 저택은 아니나 옛날 집이라서 정원이 넓고 수령이 되어보이는 나무가 있어 운치가 좋다. 팔년 전에 이사 와서 수영장을 메꾸고 연못을 만들고 정원을 꾸몄다 한다. 매해 다년초 화초를 더해가면서 지금은 백가지가 넘는 다년초의 빼곡한 꽃들이 알록달록 제각각 예쁜 얼굴로 앞마당에서 손님들에게 봄인사를 하고 있다. 

뒷마당으로 들어서니 꽃나무 사이사이에 꽃상추와 케일 같은 야채들이 화초처럼 심겨져있고 허브 밭도 있다. 스텝스톤 사이사이에도 여러종류의 그라운드 커버가 앙증스레 심겨져있다. 수령이 되어보이는 우거진 나무 그늘 밑에 작은 분수가 있고, 연못을 깊게 놓았는지 팔뚝만 금붕어가 여러마리 유영하고 있다. 볕이 드는 곳에는 빈티지 왜곤과 발이 달린 유럽식 하얀 포슬린 욕조에서 딸기가 빨갛게 탐스러이 익고 있다. 너서리를 방불케하는 가지가지의 화초가 영양상태가 좋게 무성하고 바베큐 설비와 정원가구가 놓여있는 가제보에도 기둥마다 특이한 화초가 매달려있다. 썩은 통나무로 장식된 벽에도 나무 화분을 달아 좀처럼 없는 진기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집의 옆골목은 작업장을 만들어서 정원 관리에 필요한 설비대가 있다. 웬만한 전문가의 수준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정도라면 부부의 일상이 하루 종일 마당에서 정원을 가꾸면서 보내야 같았다. 하품이 절로 나도록 많은 종류의 화초를 기르고 곳곳에 빼곡히 장식을 하여 틈이 없다. 나야 잠시 와서 눈을 즐겁게 하고 가벼이 떠나지만, 한편으로는 솟는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많은 일거리를 어찌 감당하는지 오지랖의 걱정스런 마음까지 생겼다.

 

  나도 화초 기르는 것을 좋아하여 매일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때마다 시간 가는 모르고 흙을 주무른다. 화초는 햇볕과 , 영양이 적절히 충족되기만 하면 자라서 꽃도 피고 모양도 예뻐 분위기를 좋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여 힐링도 된다. 정원을 가꾸어 놓으면 집을 품위 있게 보이게도 한다. 실제로 집을 때에 값도 받을 있고 빨리 팔린다고 한다.   

하지만 화초는 생물이라 끊임 없이 자라고 변하는 속성이 있어서 아기 돌보듯 지속적인 사랑의 관리가 필요하다. 꽃이 예쁘나 결국 지기 마련이고 잎이 싱싱하나 일정 시일이 지나면 낙엽이 지게 되어있다. 성장하는 만큼 쓰레기도 많이 나온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아기도 반나절만 어른 손이 가면 금방 꾀죄죄하게 불쌍한 몰골이 되듯이 아무리 예쁜 정원도 자칫 관리를 소홀히 하면 그대로 엉망이 되어버리고 만다. 

식물도 각각 향기가 다르고 특성이 있다보니 고집도 있고 성질도 있고 아파하기도 한다. 꽃의 목을 마구 꺾고, 뿌리를 함부로 뽑고, 가지를 무참히 잘라도 말이 없다고 해서 내맘대로 있는 아니다. 생긴대로 품성을 맞추어주면서 다루어야 아름다운 정원을 유지할 있다. 

정원을 가꾸면서 배우는 것은 인내다. 성장이란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절차와 충족 요건이 있고 무엇보다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꽃도 철이 있고, 열매도 때가 있고, 씨도 무르익어야 알이 차고, 성장도 계절이 바뀌면서 달리 이루어진다. 

 

  갈수록 세월이 정신 없이 빠르게 흐른다. 주도 금방 달도 후딱이다.  기력은 날로 쇠하고, 아픈 곳도 자꾸 생기고, 의욕도 줄어들다보니 나이 핑계를 대면서 부끄러워 일에도 얼굴이 두꺼워진다. 포기하는 마음이 자라면서 배포가 점점 두둑해진다.

화창한 봄날에 가든 투어를 하면서 꽃같은 파파 할머니를 만나고 아름다운 정원을 보며 난 내 속의 또 다른 나에게 다짐을 해본다.

   “무너지지 말자! 힘들더라도 끝까지 힘써 아름답게 가꾸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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