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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한 친구로부터 자신이 잘 아는 분이 쓴 글인데 읽고 느낌을 좀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원고의 첫 장을 펼친 순간부터 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북한에 대한 너무도 진솔하고 생생하고 파격적인 스토리 앞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글이 인터넷을 통해 뜨거운 반향을 얻고 있다는 것과 책으로 출판되고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신은미씨의 북한 기행문이다.

그후 그녀의 근황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런데 네 번째 북한 여행을 다녀왔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정은 평양에 살고 있는 수양딸 김설경을 만난 일'이라는 구절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매스컴 앞에서 수양딸의 이름을 당당하게 밝힌 것을 보며 그녀의 깊은 사랑을 짐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는 유일한 북한여성 '설경'이 떠올랐다.

2006년 4월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를 방문했었다. 역사의 현장에 와 있다는 감격과 유적지 주위의 낡고 초라한 분위기 탓인지 가슴이 울렁이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곳을 나온 우리 일행은 안내하는 분을 따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남한사람이 주 고객이라는 북한식당 '모란각'으로 갔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스무 살 안팎의 북한 여성들이 나비처럼 날아와 반겼다. 그녀들은 앞쪽 무대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고 손님도 맞았다.

그중 내가 속한 테이블 서브를 담당한 여성이 '설경'이다. 눈부신 미모에 앳된 홍조 그리고 귀에 익은 낯선 억양이 얼마나 정겹던지 그녀가 조금 한가해 보이면 얼른 옆에 앉으라 해서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설경에 의하면 모란각에 3년 파견근무를 나왔으며 그곳에 나오기 위해서는 춤과 노래 미모 등 몇몇 조건이 갖춰져야 하고 그곳에서 번 돈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된다는 등등…. 조곤조곤 털어놓는 모습이 한치 망설임도 숨김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말… 엄마가 보고 싶다며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그날 밤 '모란각'이라는 제목으로 시 한 편을 썼다.

'충성심에 불타는 억센 여자와/ 선택받은 여인들의 은밀한 이름 '기쁨조'/ 오직 두 부류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땅, 평양/ 그곳에 모란봉이 있고/중국 상해 홍매이루 2층 '모란각'에는/ 행운을 잡은 우리 딸들의 웃음이 있다/ 눈 속에 핀 한 송이 꽃처럼 부신 그녀 민.설.경./ '엄마 보고 싶어요.' 응석 어린 목소리/ 눈물이 핑 돈다/ 북향 솔솔나는 '들쭉술'을 마시는 남쪽 사람들/ 기분은 뜨고/가슴은 아리다.'

그때도 인터넷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사회상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음에도 귀를 닫고 살았던 것 같다. '민설경'이라는 이름이 알려지면 그 아이에게 해가 될까 싶어 한동안 쉬쉬하며 지냈던 일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수양딸 '김설경'과의 만남이 하얀 눈세상의 맑은 풍경처럼 아름답게 그려진다.


미주 중앙일보 2013.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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