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 있다. 연로하신 친정엄마께 맛난 것도 만들어 드리고 시장도 함께 다니고 무엇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리라… 나름 작심을 하고 왔다. 그런데 첫날부터 삐거덕거린다. 반찬이라도 한두 가지 만들까 싶어 장을 봐 오고 냉장고라도 열라치면 '네가 뭘 알겠냐?'며 당신이 나선다. '이게 아닌데…' 싶어 항변해도 들은둥만둥이다. 잠시 다니러 온 딸은 그저 반갑고 귀한 손님일 뿐이다.
비척비척 걸음이 흔들리는 엄마와 느긋하게 쇼핑을 즐기는 것도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집을 나서면 당신이 알고 있는 노선을 소상히 그리고 누누이 일러준다. '엄마, 나 한국 사람이거든'해도 소용이 없다. 돌아올 때까지 온통 딸 걱정 뿐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사우나탕에 갔다. 주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린다. 자식 이야기, 먹는 이야기, 다이어트 이야기 그리고 남편 바람피운 이야기까지 여자들의 수다는 바톤터치로 이어져 끝이 없는 것 같다.
주제가 다양하지만, 시어머니 혹은 친정어머니와 얽힌 애틋한 사연들이 귀에 크게 들어온다.
'이 자식 저 자식 집에 옮겨 다니는 천덕꾸러기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40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셨다는 한 여인의 고백에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자신은 부모를 모셨지만, 자신의 노후는 자식들에게 의탁할 수 없는 요즘 세태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그녀, 왠지 슬프고 왠지 아름답다.
여인들의 이런저런 사연을 들으며 부모님을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여차하면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자식들은 그나마 효자라는 생각이 든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탓인지 나이 듦의 변화가 더 급격하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엄마, 왜 그래?'가 툭 튀어나오고 만다. 민망함과 섭섭함이 깃든 엄마의 표정에 코가 시큰해진다. 엄마 곁에서의 이 짧은 나날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임을 생각한다. 미국 돌아가면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가겠지만, 문득문득 이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2013.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