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옥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0
전체:
1,839

이달의 작가

특별한 생일파티

2024.09.09 09:47

허경옥 조회 수:4

 

볼티모어에서 옷 수선 가게를 할 때 일이다.

부유한 지역에 가게가 있어 손님들 대부분이 상류층이었다. 의사나 변호사 혹은 기업가들이 대부분이었고, 방송국 앵커도 있었다. 아시안인 우리에게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며 은근히 무시하는 부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리들의 성실하고 근면한 부분과 높은 교육열을 칭찬하며 존중해 주었다.

 

  그중에 단골인 노부부가 있었다. 옷을 수선하기 위해 오는 아내와 같이 온 남편을 몇 번 만났는데, 정중한 그의 언행에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그런 노인이었다.  어느 날 그가 혼자 와서 아내의 70세 생일파티 초대장을 주었다. 장소는 그 근처에 있는 크지 않은 타이 식당이었는데 아내와 자주 가는 곳이라 했다. 우리가 초대된 것을 아내는 모르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그날 와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이 학교 친구들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미국인 생일 파티에 몇 번 가본 경험은 있지만, 우리가 직접 초대되어 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칠순 잔치를 어떻게 하나 하는 호기심에 가겠다 하였지만, 행여 너무 낯설고 화려한 파티이면 어쩌나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생일 파티는 이 층에 준비되어 있었다. 이층 입구에 서 있던 그녀가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며 반갑게 우리를 껴안았다. 우리 뒤를 이어 그녀가 매주 가는 꽃 가게 주인,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 세탁소 주인들이 올라왔다그날 우리는 그 노부부가 근처 시내에 있는 크고 멋진 백화점이나 큰 기업이 운영하는 상점들보다 동네 가게를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 동네 이민자들이 하는 작은 가게의 주 고객이었다. 그리고 그 남편은 아내가 매일 들르는 가게 주인들을 아내 생일에 초대하였다. 그는 우리가 아내의 삶 일부라고 했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하루하루가 그녀의 삶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일만 하면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어떤 존귀함까지 느껴져, 낯설어 움츠렸던 어깨가 저절로 펴지는 듯했다.

 

 이층 가운데는 식탁이 준비되어 있고 양옆의 벽 쪽에는 작은 원탁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 원탁 위에는 그녀가 살아왔던 세월 속에 추억할 만한 물건들이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십 대 시절 갔던 여름 캠프, 그때 입었던 티셔츠, 중학교 때 받은 상장, 고등학교 졸업 댄스파티 때의 사진, 필드하키 선수 시절의 사진과 라켓 등이었다. 그 물건들은 그녀의 칠십 평생 삶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 공간은 생일 파티를 위해 온 가족이 쏟은 세심한 정성과 사랑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남편은 식사 전에 우리에게 세 딸과 사위를 소개했다. 각 딸이 두 명의 아들을 낳아 여섯이나 되는 잘생긴 손자들도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한마디씩 축하 인사를 한 후 흩어져서 우리들 사이에 끼여 앉았다. 우리의 이름을 묻고 어떤 가게를 하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사는 삶에 대해서도 물으며 마치 우리가 파티의 주인인 것처럼 대해 주었다.  우리들 옆에 앉아서 식사하며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손자들을 보며, 이 노부부가 자기 손자들에게 살아있는 삶의 교훈을 주고 있음을 알았다.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자 남편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링컨 대통령 분장을 하고 나타났다. 링컨 대통령의 강령을 패러디해서 ‘오브 더 헬런, 바이 더 헬런, 풔 더 헬런'을 외친 다음에 그는 아내를 초등학교부터 짝사랑했던 이야기, 인기가 좋아 늘 다른 남학생에 둘러싸여 있어 자신은 데이트 한번 못했던 고등학교 시절, 드디어 대학 졸업 후 어떻게 첫 데이트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남자의 깊고 큰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칠십 평생을 살아온 그녀의 얼굴이 창밖의 해보다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이민자로 미국에 살면서 몇 번 겪었던 불쾌한 경험을 꺼내 길에다 털어 버렸다. 그리고 그날 받은 존귀한 경험을 가슴 구석구석에 채워 넣었다. 그것들을 근간으로 우리도 그들의 삶을 닮아 가기를 바랐다. 그날의 교훈으로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내면의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또 그것은 우리보다 약한 자 앞에서 교만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 카르페 디엠 (carpe diem) 허경옥 2024.09.09 11
7 새소리 허경옥 2024.09.09 7
6 설라무네 허경옥 2024.09.09 6
5 바닷가에 서면 허경옥 2024.09.09 6
» 특별한 생일파티 허경옥 2024.09.09 4
3 분수(噴水) 허경옥 2024.09.09 4
2 구겨진 아버지 허경옥 2024.09.09 5
1 운동화 [1] 허경옥 2024.09.0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