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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오래된 나무/이병률

2003.01.11 14:21

최석봉 조회 수:481 추천:33

크고 오래된 나무
-중국 산동성 어느 마을의 부부들은 잠을 잘 때,
서로 거꾸로 누워 발을 맞대고 잠을 잔다


1
그대를 비탈 한가운데 묻고
그 비탈 주변에서 눈물 흘리는 새들도 묻고
탕국에 밥을 말아먹는다
그대가 묻힌 곳으로부터 얼마쯤 떨어진 곳으로
옮겨 걸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한참 동안 소나무 숲을 걷는다
학교를 지나고 하늘로 분사되는 풍금소리도 보내고
마을로 돌아와 이삿짐을 싼다
한참만에 밤이 왔다는데 알 수가 없다
짐 싸야 할 것들이 무겁고 혐오스러워 알아볼 수 없다

발을 씻는다, 혼자 발을 씻은 지도 오래 되었다
나의 애인은 키가 컸다
그러고 보니 발을 다 묻지 않았다
누군가 애인의 부음을 듣고 찾아와 울었다 해도
묻히지 않은 발을 땅 속으로 밀어 넣지 않기를 바랄 뿐

수건으로 발을 닦는다
한 발은 애인의 것이고 한 발은 나의 것이다
발을 모은다
발을 모으고 통곡을 한다

2
발을 맞대고 보니
참 오랜 세월 나한테만 잘하면서
살았단 생각이 드는구려
발 닿지 않으면
멀어진 발을 찾으려 십 리 밖까지
나갔다 돌아와 잠든다는 인정이
얼굴 가려움만큼만 와 닿더니
이제 발이 없으면 서늘해 잠을 못 자겠구려
기댈 밤을 찾다 못 찾고
저 혼자 홧홧하게 부풀어오른 발을 생각하자니
자꾸 민망해지는 생이여.

여기 두 발을 놓고 가노니
오래오래 쓰다 돌려주구려


(문학과 경계 2002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