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그 화려한 변신

2006.07.24 06:48

배윤숙 조회 수:216 추천:28

신문, 그 화려한 변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중)   배윤숙




보름에 한 번씩 신문뭉치를 끈으로 묶는다.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 통dl 있는 곳까지 들고 가기 편하게 묶는다. 그 뭉치 속에는 각종 광고 전단지도 끼어있고 과자 상자도 있다. 노트에 몇 자 적다가 북- 하고 뜯어낸 것도 있고 우유팩 씻어 말린 것은 잘 펴서 빠지지 않게 깊숙이 넣기도 한다. 장마철인 요즘에는 종이류를 버릴 때마다 날씨를 잘 살피곤 한다. 행여나 흠뻑 비에 적셔지기라도 하면 폐지는 그 용도를 넘어서서 일반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 오전에 폐지 수거도 할 겸 그 무게에 따라 종이로 교환해주려고 한솔제지 차가 아파트로 직접 찾아온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알뜰한 동네 아낙들은 저마다 폐지뭉치들을 들고 나와 폐지 무게만큼 재활용지로 만든 공책이나 복사용지로 교환해간다. 오전 9시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 가느라 그 차와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애석하게도 한솔제지 차와 인연이 없다. 사실은 보름치 분량의 폐지로는 겨우 재활용지로 만든 공책 한 권이 되지도 않겠지만 낯간지럽기도 하고, 짐스러워 귀찮기도 하여 동네 어느 아낙에게 줄까 하다가 그 것도 그렇고 하여 그냥 버린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는 꽤 모아지곤 하여 복사용지로 교환해서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것 마저도 옛이야기일 뿐이다.

우리 아파트 통로에 사는 10집 중 우리 집과 3층 두 집에서만 신문을 보고 있다. 바빠서 신문을 볼 틈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회사에 가면 인터넷으로 원하는 각종 뉴스나 얘깃거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편리함 때문인지 신문 보는 집들이 줄었다. 예전에는 신문 배달하는 사람이 한 가지만 취급했던 것 같은데 우리 집에 신문 배달하는 사람은 몇 가지 신문을 들고 다닌다.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니 신문사마다 독자확보 경쟁을 하다가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떻게 알았는지 신문본지 2년 정도가 되면 다른 신문사에서 지국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선물을 주면서 구애작전을 편다. 서울의 어느 신문사에서는 자전거까지 주는데 지방은 체중계나 전기냄비를 받았다며 차별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집스런 남편은 언제나 보고 싶은 신문에만 집착한다. 전라북도에서만 발행되는 신문도 꽤 여러 종류인데 중앙에서 발행되는 신문까지 합하면 앞집 유치원생한테는 어려운 숫자세기다. 열 손가락이 부족할 것이라는 얘기다.

가정에서 뿐만이 아니라 관공서나 회사마다 경영상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신문을 종류별로 많이 구독한다. 그러나 매일매일 쌓이는 신문을 어찌 처리하는지 궁금하다. 우리 집 역시 아침에 신문을 들여다보면 저녁때 잠간 뒤적거리다 그대로 폐지함에 던져진다. 그나마 한 번 더 들여다 볼 때면 신문 값을 제대로 했을 때다. 볼만한 기사거리가 있을 때면 한 번 더 들여다보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하찮은 나무토막도 다 쓰일 때가 있는 법이라며 물건 소중히 여기길 그저 하늘의 뜻처럼 생각하며 사시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생활철학이 생각나 가슴이 뜨끔하다. 그렇지만 실천할 수 없는 것은 물자가 그만큼 흔해진 현실에 길들여진 탓일 것이다. 신문이 귀하던 시절에는 신문 아니면 나라소식, 내 고장 소식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지금은 선물공세를 해도 신문을 볼까 말까 할 정도로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신문의 용도가 다양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벽지를 바를 때 생활이 어려운 집에서는 초배지가 아니라 아예 도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어릴 적 친구네 집에 놀러갔을 때 신문으로 도배를 한 방에서 친구랑 벽신문의 알지도 못할 내용들을 들여다보며 빙글빙글 돌다가 둘이 머리를 꽝하고 부딪치고 넘어졌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또, 지금은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어도 두루마리로 된 보드라운 휴지를 많이 쓰지만 내가 어린 시절 재래식 측간(화장실)에는 신문을 적당히 오려서 끈에 꿰어 구석에 매달아 놓았었다. 다 쓴 공책이나 잡지책보다 구겼을 때 신문이 더 부드럽기 때문이기도 했다. 밤에 전등불이 없는 측간에 갈 일이 있으면 촛불을 켜들고 갔다. 무서움을 많이 탔던 나는 바로 위 언니를 많이 졸랐다. 어쩌다 함께 가주기라도 하면 밖에서 귀신 울음소리를 내며 나를 겁주기도 했는데 측간 벽 나무 틈새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에 엉덩이가 어찌나 시렸던지. 달달 떨며 밖에 서있던 언니가 알려주는 대로 촛불에 신문을 둘둘 말아 불을 붙여 발판 아래로 던져놓는다. 신문이 타들어가면서 엉덩이가 따스해지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금세 불씨가 꺼지는 것이 아쉬워서 여러 장 한꺼번에 불을 붙여 아래에 던져놓았는데 갑자기 확- 하고 불이 붙는 바람에 깜짝 놀라 속옷을 미처 올리지도 못한 채 뛰어나온 적이 꼭 한 번 있었다. 허긴 나처럼 불장난 하다가 아예 초가 측간을 홀랑 태웠다는 이야기는 그 당시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옛이야기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여름방학숙제로 탈 만들기가 있었다. 신문을 물에 충분히 불려서 밀가루 풀과 주물러 치댄 다음 플라스틱 바가지에 적당한 두께로 펴 바른다. 눈과 입을 그럴 듯하게 구멍 내고, 주먹만 하게 코를 만들어 붙여 햇볕에 말린다. 잘 마른 탈에 물감 칠을 하고 다시 또 햇빛에 잘 말려 에나멜 칠을 해서 완성한다. 탈을 만들고 남은 것으로 조그만 과자그릇을 만들어보았다. 제법 괜찮게 만들어져서 아이들 과자그릇으로 쓰기도 했지만 더 예쁜 플라스틱 용품들이 나오면서 애쓰고 만든 과자그릇은 기어이 외면당하고 결국은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말았다. 또 아이들 서예시간이 있는 날이면 내 어린 시절의 서예시간을 생각하고 신문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끈으로 묶어 챙겨주곤 했었는데 요즘 초등학교 서예시간엔 곧 바로 화선지에 연습하는지 아니면 신문에다 연습하는지 모르겠다.

신문을 옷장 서랍 속에 깔아두면 방습, 방충효과가 커서 좋다는 얘기도 있어 일 년에 한두 번은 계절 옷 정리를 겸해서 신문을 새로 깔아주기도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제법 신문 쓰임새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나물 다듬고 파 다듬을 때도 주방 바닥에 펴놓고 쓰고, 화분갈이 할 때도 넓게 펼쳐놓고 쓴다.  신문 한 장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훌륭한 깔개가 되고, 풀밭에 펼쳐놓으면 식탁보로도 충분하다. 파리 등 벌레를 싫어하는 나는 신문은 길게 접어 파리채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파 등 야채를 신문에 싸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신선도가 더 오래간다고 하지만 그 방법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유리컵을 깨뜨렸을 경우에 물에 적셔서 뭉친 다음 조각들을 쓸어 모으면 깨끗이 처리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간혹 햇빛차단용 썬팅이 약하게 된 차들이 신문으로 햇빛을 가리고 다니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 그만큼 신문은 다양하게 쓰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문의 쓰임새가 더 좋은 것이 없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별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차에 텔레비전에서 본 어떤 장면이 내 무릎을 치게 했다. 옳거니! IMF 시절 충청도에 사시는 어떤 남자분이 폐지를 주워 생활하다가 그 폐지 가운데 신문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것이 한지로 만드는 지승공예를 능가할 만큼의 작품들이 만들어져 신문 폐지가 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의 숙련된 솜씨는 결국 공방도 차렸고 제자도 키우고, 학교에서는 자모들에게도 가르쳐 주는 장면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감동한 것이다.

신문을 넷으로 접은 상태에서 가로로 길게 접어 자른단다. 물 스프레이로 적당히 적신 다음 꼬아서 굵은 실처럼 만든다. 그 것을 만들고자 하는 것의 기본 틀을 짜서 실을 하나씩 연결해 나가면서 엮어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의심을 한 것은 아니지만 과연 신문지로 가능할까 싶어서 실제로 해보았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차츰 능숙하게 잘 꼬아지는 것이었다. 20년 전 시골에 살면서 자작으로 했었던 등공예 솜씨는 전주로 이사 와서 진가를 발휘했다. 친구가 없어 혼자 놀기의 진수를 터득하고 있는데 동네 아낙들한테 알려지면서 너도나도 배우고자 하여 항아리, 찻상, 바구니 만드는 법을 알려주게 되었다. 그러나 재료값이 만만치 않았던 탓에 호응도는 높았지만 그리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비싼 등공예 재료가 아닌 천덕꾸러기 신문폐지로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동그란 티슈 통도 만들고 말린꽃을 꽂아 놓을 수 있도록 팔 한 아름 안길 정도로 바닥이 깊고 큰 바구니를 만들어보고 싶다. 한 번 보면 다시는 들여다보거나, 소중하게 모아두는 일이 없는 천덕꾸러기라고만 생각했던 신문폐지들을 화려하게 변신시킨 그분께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2006.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