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정국희 마네킹)

2015.11.17 15:44

정국희 조회 수:888



 

          

                                                                                                                                                                                          이 아침의 시 /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옷을 벗는다

보통은 이른 아침이나 초저녁이지만

어떤 날은 시도 때도 없다

팬티는 안 입고 있기가 일쑤다

손님이 지목하는 날이면

대낮에도 서슴없이 벗겨진다

주로 그냥 서 있는 채로지만

급할 땐 곧바로 맨 바닥에

눕혀지기도 한다

어느 날

벗은 채로 구석에 서 있다가

머뭇머뭇 다가온 남자 직원에게

희롱 당한 적도 있다


속이 비어 있어 상처받을 일 없으니

저렇게

몸을 내 맡기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 정국희(1955 -   ) ‘마네킹’ 전문.


 마네킹이 성 희롱에 몸을 내맡기면서도 상처받지 않는 것은 ”속이 비어“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한 연예인이 부당한 성접대에 시달려 자살을 해도, 급우가 왕따, 폭행에 집단강간을 당해도, 지하철 귀퉁이에서 성폭행이 일어나도, 못 본 척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마네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온갖 비리와 부조리, 인간성 상실과 소외를 겪고 있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을 ‘마네킹’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김동찬,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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