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2007.11.18 08:21
싱그럽고 푸르던 산과 들판이 가을 바람을 접하면서부터는 붉게 단풍이 들고 황금색으로 익은 과즙에 단물이 고이고, 부드럽던 껍질들이 단단히 굳어 다음 세대를 이을 생명으로 갈무리된다.
어린 생명이 꽃으로 피어 아름다움을 사랑하듯 만숙의 미는 그윽하고 안온하며 평화스럽게 열매로 마무리되어 하늘과 땅과 인간들이 다같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천. 지. 인의 축제가 된다.
이때가 되면 장성한 자녀들에게 짝을 지어주는 혼례를 올리고, 옛 어른들의 산소를 찾아 시제를 드리며,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사실에 대하여 기쁨과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넘치는 계절이 된다. 이것이 우리 한민족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이었다.
우리가 이 땅에 와서 추수감사절을 맞아 터키를 구우며 호박 케익을 나누어 먹고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한 해의 성장을 고마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당연지사다.
추수 감사절의 연원은 1620년 반 영국교회파 그리스도교도(Pilgrim Fathers)들이 정든 고향땅을 떠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동부 플리머스항 케이프 카드(Cape Cod)에 도착한 후 땀 흘려 지은 첫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드린 기쁨으로부터 시작된다.
포도주를 실어 나르던 낡은 배에 아녀자로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102명의 청교도들이 순종함으로 누릴 행복과 안일함으로 얻는 평화를 버리고 정든 땅을 떠나 악천후와 싸우고 풍랑노도를 이겨내며 긴 항로 끝에 얻은 열매인 것이다.
이들에겐 옛것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더 크고 자유로운 것에 대한 동경과 선망의식이 있어 이들이 개척자의 혼으로, 청교도의 정신으로, 아브라함의 후예로 선택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추수 감사절은 이반의 바보의 나라에서와 같이 먹을 것을 제대로 못 먹고 입을 것을 제대로 못 입고 노예와 같이 땀 흘려 일하며 정성과 수고를 다한 사람들이 식탁의 상좌에 앉아서 먹고 난 이후, 허망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던 사람과, 자신을 분별 못하고 요행을 바라 육신을 놀리던 사람과, 과대망상증에 빠져 인생을 헛살아온 사람들이 뒷좌석에서 저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정신으로 맞이해야 하는 날이다.
손에 칼을 든 혁명가는 자신이 당대에 공을 이루고 영화를 누려야 직성이 풀리지만은, 손에 쟁기를 잡은 농부는 뜻을 자신이 못다 펴서 후손들에게 바톤을 넘기며 죽을 때에도 종자를 베고 죽는 개척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이러한 후예들이 신과 돈과 자유를 주창하면서 일구고 개척한 땅이 바로 이곳이다. 하나님은 이 넓고 비옥한 대륙에 수백의 인종을 집결시켜 서로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경쟁과 대화 그리고 협동을 통한 단결의 고귀함을 깨닫게 하여, 장차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새 인간상의 완성을 위한 시험대로 마련하신 것임에 틀림 없다.
우리의 피부색이 황인종 이라고 이들에게 위축될 필요가 없고 영어가 부족하다고 뒤로 물러설 이유가 없다.
천지음양 동서남북 중앙에 귀한 인간이 설 수 있는 축복이 우리들에게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추수 감사절은 이 한 해를 정성껏 산 우리의 삶을 감사해서 창조주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축제의 날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일찍이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신라의 가배가 있어 추수의 감사를 드린 예가 있고 신라의 가배가 변모되어 오늘날의 추석이 된 것이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이 한해를 되돌아 보면 어느 누구에게나 하나같이 감사할 조건이 있게 마련이다. 온 가족이 건강한 한 해를 지낸 사람, 새로운 사업을 얻었거나 번창시킨 사람, 아름다운 남녀가 만나 새 가정을 꾸민 사람, 귀한 자녀를 선물로 받은 사람 그 종류가 다양하고 복잡할 것이다.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할 조건이 더욱 많아지고 범사에 감사할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영원에 비하면 부싯 불빛과 같고 무한에 견주면 이른 아침 풀잎에 빛나는 이슬과 같은 인생이지만은 피카소의 말과 같이 ‘착하고 아름답게 살기에는 길다’는 나날의 삶이어야 할 것이다. 수고한자가 얻는 열매, 창조주에게 드리는 감사, 이는 사랑을 받는 자의 아름다운 화답이다.
우리 한인들은 자의건 타의건 이 땅에 와 살면서 자녀들을 이 땅에 심으면서 청교도들의 뜨거운 개척 정신과 숭고한 신앙심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신 앞에 바로서는 경천애인의 후예요 귀생지도(貴生之道)의 고귀한 실존들이다.
더구나 우리들에게는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서 피골이 상접하도록 노동을 하면서 우리들의 정착 터전을 마련한 코리안 청교도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뜨거운 땅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어린 생명이 꽃으로 피어 아름다움을 사랑하듯 만숙의 미는 그윽하고 안온하며 평화스럽게 열매로 마무리되어 하늘과 땅과 인간들이 다같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천. 지. 인의 축제가 된다.
이때가 되면 장성한 자녀들에게 짝을 지어주는 혼례를 올리고, 옛 어른들의 산소를 찾아 시제를 드리며,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사실에 대하여 기쁨과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넘치는 계절이 된다. 이것이 우리 한민족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이었다.
우리가 이 땅에 와서 추수감사절을 맞아 터키를 구우며 호박 케익을 나누어 먹고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한 해의 성장을 고마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당연지사다.
추수 감사절의 연원은 1620년 반 영국교회파 그리스도교도(Pilgrim Fathers)들이 정든 고향땅을 떠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동부 플리머스항 케이프 카드(Cape Cod)에 도착한 후 땀 흘려 지은 첫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드린 기쁨으로부터 시작된다.
포도주를 실어 나르던 낡은 배에 아녀자로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102명의 청교도들이 순종함으로 누릴 행복과 안일함으로 얻는 평화를 버리고 정든 땅을 떠나 악천후와 싸우고 풍랑노도를 이겨내며 긴 항로 끝에 얻은 열매인 것이다.
이들에겐 옛것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더 크고 자유로운 것에 대한 동경과 선망의식이 있어 이들이 개척자의 혼으로, 청교도의 정신으로, 아브라함의 후예로 선택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추수 감사절은 이반의 바보의 나라에서와 같이 먹을 것을 제대로 못 먹고 입을 것을 제대로 못 입고 노예와 같이 땀 흘려 일하며 정성과 수고를 다한 사람들이 식탁의 상좌에 앉아서 먹고 난 이후, 허망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던 사람과, 자신을 분별 못하고 요행을 바라 육신을 놀리던 사람과, 과대망상증에 빠져 인생을 헛살아온 사람들이 뒷좌석에서 저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정신으로 맞이해야 하는 날이다.
손에 칼을 든 혁명가는 자신이 당대에 공을 이루고 영화를 누려야 직성이 풀리지만은, 손에 쟁기를 잡은 농부는 뜻을 자신이 못다 펴서 후손들에게 바톤을 넘기며 죽을 때에도 종자를 베고 죽는 개척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이러한 후예들이 신과 돈과 자유를 주창하면서 일구고 개척한 땅이 바로 이곳이다. 하나님은 이 넓고 비옥한 대륙에 수백의 인종을 집결시켜 서로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경쟁과 대화 그리고 협동을 통한 단결의 고귀함을 깨닫게 하여, 장차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새 인간상의 완성을 위한 시험대로 마련하신 것임에 틀림 없다.
우리의 피부색이 황인종 이라고 이들에게 위축될 필요가 없고 영어가 부족하다고 뒤로 물러설 이유가 없다.
천지음양 동서남북 중앙에 귀한 인간이 설 수 있는 축복이 우리들에게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추수 감사절은 이 한 해를 정성껏 산 우리의 삶을 감사해서 창조주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축제의 날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일찍이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신라의 가배가 있어 추수의 감사를 드린 예가 있고 신라의 가배가 변모되어 오늘날의 추석이 된 것이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이 한해를 되돌아 보면 어느 누구에게나 하나같이 감사할 조건이 있게 마련이다. 온 가족이 건강한 한 해를 지낸 사람, 새로운 사업을 얻었거나 번창시킨 사람, 아름다운 남녀가 만나 새 가정을 꾸민 사람, 귀한 자녀를 선물로 받은 사람 그 종류가 다양하고 복잡할 것이다.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할 조건이 더욱 많아지고 범사에 감사할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영원에 비하면 부싯 불빛과 같고 무한에 견주면 이른 아침 풀잎에 빛나는 이슬과 같은 인생이지만은 피카소의 말과 같이 ‘착하고 아름답게 살기에는 길다’는 나날의 삶이어야 할 것이다. 수고한자가 얻는 열매, 창조주에게 드리는 감사, 이는 사랑을 받는 자의 아름다운 화답이다.
우리 한인들은 자의건 타의건 이 땅에 와 살면서 자녀들을 이 땅에 심으면서 청교도들의 뜨거운 개척 정신과 숭고한 신앙심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신 앞에 바로서는 경천애인의 후예요 귀생지도(貴生之道)의 고귀한 실존들이다.
더구나 우리들에게는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서 피골이 상접하도록 노동을 하면서 우리들의 정착 터전을 마련한 코리안 청교도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뜨거운 땅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