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은 썩는다!
2009.07.06 13:55
고인 물은 썩는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은 썩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이 나라 국문학계는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것처럼 친일학파들이 세워 놓은 학술이론이라는 틀에 가두어 놓고 이 틀 안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새로운 학술이론은 마치 칼로 무를 자르듯 묵살하고 그 학자를 국문학계에서 매장시키며 학문 자유를 박탈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70여년을 지배해 오고 있어서 부패할 대로 부패되어 있다.
학문은 제한 없는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발전에 대한 싹이 무럭무럭 자라는 법이다.
그러나 이 나라 국문학계는 도무지 학문에 대한 자유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양심 있는 몇몇 학자들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모법(母法)인 <한글 맞춤법>도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것을 지적하고 개혁하자는 주장을 감히 펼치지 못하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국문학계에서 매장당하고 철 밥통을 빼앗길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어느 용감한 국문학자가 “외래어(?)는 국어 어휘가 아니라 외국어에서 빌려온 말이다.”라는 주장하였다하여 국문학계에서 매장당하고 교수직에서 밀려난 사례가 있다.
한글 연구회 미주지역 지회장인 김 덕길 박사가 이 상억 교수라는 사람과 만난 자리에서 느낀 바에 의하면 현재 <외래어 표기법>을 바꿔야 되는 줄은 잘 알고 있지만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잘못 됐다고 하면 국문학계에서 매장당하는 이 나라 학연, 혈연 지연 때문에 하지 못하는 듯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나라 국문학계는 마치 전제군주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무소불위 권력을 가지고 학문에 대한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대 변천에 따라 학문이 발전하기는커녕 70여년을 제자리걸음도 못하고 날로 퇴보를 거듭하며 나랏말을 이 꼴로 만들고 있다.
오로지 자기네들이 쥐고 있는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서 학문에 대한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문학계는 일본군국주의 시대에 머물고 있다.
<한글 맞춤법>에서 자모 수를 40개로 제한한 것은 세종대왕 한글 창제정신을 묵살하는 처사인 동시에 한글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과학성을 짓밟는 것인데도 자기네들 우상인 친일학파 이희승과 최현배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하여 70여년을 그대로 존속시키고 있다.
이 상규 전임 국립 국어원장은 “비록 40개 자모로 제한되어 있으나 학문적으로는 다른 자모를 사용해도 된다.” 말하고 있으나 제도적으로 묶여 있어 실상은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세상은 전산기(computer)롤 떠나서는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어는 거꾸로 치든 바르게 치든 모든 글자가 자유롭게 기록되는데 한글은 40개 자모이외 글자는 전산기(computer)에 기록되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전산기(computer)에서 새로운 글자에 대한 작업이 전혀 불가능하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한글에 대한 발전을 바랄 수 있겠는가?
또한 외래어(?)라는 학술 용어는 일본 국문학에서 사용하는 학술용어이며, 일본에서는 이것을 자기네 국어가 아니라 외국어라고 정의하고 있다.
북한 국문학계에서도 이것을 외국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유독 이 나라 국문학계에서만은 우리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결과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하는 한계가 애매모호하여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국문학계나 나랏말 정책을 맡고 있는 당국자들조차 외래어(?)와 외국어에 대한 한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외래어(?)는 개인이 지닌 지식수준과 환경에 따라 외래어(?)냐 외국어냐가 판명된다고 말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이나 일본에 오래 살아서 영어나 일본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영어나 일본어를 외국어로 느끼지 않고 외래어(?)로 느껴지는 한계가 넓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외국어로 느껴지는 한계가 넓다는 것이다.
외래어(?)라는 것은 우리말로 표현할 적절한 말이 없어서 외국어 말소리를 우리글자로 표기해서 빌려서 쓰는 말을 말한다.
따라서 외래어(?)는 그 나라 발음대로 표기해서 주는 것이 원칙이며 어려운 외국어 발음으로 사용하는 것 보다는 적절한 우리말로 풀이해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조치이다.
외국어 말소리를 우리글자로 바꾸기만 하면 모두 우리말이 된다고 하는 것은 국문학자들을 나태하고 무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며 우리말을 모두 엉터리 외국어 발음으로 된 어휘로 만들어 버리는 동시에 우리말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에 이 경숙 위원장이 발언한 소위 ‘오렌지’ 발언 파문 때 모든 신문 언론사와 온 나라 백성들은 “「오렌지」는 우리말이고 「오뤤지」는 외국어이다.”라면서 벌 떼처럼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이런 소동이 벌어진 원인은 바로 “외래어(?)는 우리말”이라고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오렌지」라는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orange라는 영어의 일본식 외래어 표기법으로 일제 잔재임을 알아야 한다.
일본에서는 orange를 [オレンジ(오렌지)]라고 표기하고 발음한다.
현행 <외래어(?)어 표기법> 제1장 5항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로 되어 있어서 일제 잔재라도 관용을 존중해서 그대로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서 [オレンジ(오렌지)]라는 일본식 외래어(?)인 [오렌지]가 오늘날까지 사용되어 왔으며 우리말로 둔갑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감귤”, “귤”, “탱자”같은 말은 어느 나라 말인가?
일본이나 북한처럼 “외래어(?)는 외국어이며 국어처럼 쓰도록 정해진 낱말”이라고 정의한다면 [오렌지]는 외국어임이 분명하게 한계가 정해지고, “감귤”, “귤”, “탱자”같은 말은 우리말이라는 한계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국어이다”와 “국어처럼”이라는 뜻의 차이는 다르다.
“국어처럼 쓰일 뿐 국어가 아닌 것”, 즉 외국어 말소리를 빌려 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바로 외래어(?) 특성이다.
이와 같은 올바른 논리를 주장하는 학자를 매장시키는 곳이 바로 현 국문학계이다.
그 결과 오늘날 이 나라 나랏말은 일본말인지 영어인지 알 수 없는 지경으로 난장판을 만든 것이 바로 썩을 대로 썩은 국문학계와 그들 주구(走狗)인 국립 국어원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더구나 소리 과학인 한글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이유는 이와 같이 국문학계가 썩었기 때문이다.
문화혁명을 일으켜 썩을 대로 썩은 국문학계를 개혁하고 백성들 혈세나 낭비하면서 무능할 대로 무능해진 국립 국어원을 폐쇄하고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기들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학문 자유를 보장해야 국문학계가 발전하고 한글 세계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생길 것이다.
한글 연구회
최 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