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남/윤효숙
2010.05.03 08:28
행복한 만남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효숙
요즈음 농촌의 인구감소로 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있는 학교를 살린 성공 사례가 심심찮게 뉴스거리가 되곤 한다. 방과 후 학교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도시학생들이 오히려 농촌으로 전학을 온다는 이야기도 이젠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그러나 몇 년 전만 해도 드문 이야기였다.
Y교장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Y교장 또한 방과 후 활동을 무상으로 실시하여 김제 시내 학생들이 오히려 그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왔다는 것이 뉴스로 나오게 되었다. 교장으로 승진하여 처음으로 부임한 학교가 김제 근교의 한 농촌 초등학교였다. 그곳은 전교생이 16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운동회 날이었다. 비가 와서 운동회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강당에서 운동회가 치러졌다. 그런데 청백계주가 문제였다. 마지막 순서의 마라톤이 올림픽의 꽃이듯이 운동회의 꽃 역시 마지막순서에 있는 청백계주였다. 좁은 강당이니 청백계주를 생략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 때 Y교장의 기지로 강당에서 마사이족처럼 경보로 계주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걸어야만 한다. 달리는 학생은 실격이다. 생각해보라. 학생들의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겠는지. 그렇게 열심히 걸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일등으로 들어온 학생은 일등이 아니고 맨 나중에 들어온 학생 순서로 등수가 결정되었다. 평생에 한 번, 소외된 학생이 일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Y교장의 배려였다. 학습발표 때는 16명이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몇 벌의 옷을 마련하여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발표를 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제시 전체 교장선생님들이 감동했었다고 한다. 이 소식도 텔레비전 뉴스로 방송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림 같은 작은 학교에 어느 날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장진 감독이 이 학교에서 영화 ‘소나기’를 촬영하고 싶다는 거였다. Y교장은 흔쾌히 승낙하며 대신 그 학교 학생을 조연으로 출연시켜줄 것을 제의하였다. 촬영하는 날, 서울 강남에서 왔을 법한 커다란 승용차에 부모와 같이 온 주인공 배우들을 시골학생으로 분장시켜 촬영을 하였다. 그 학교 학생들은 특별히 분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녹아들어갔다. 촬영을 마치고 젊은 영화감독은 그 학교 아이들 때문에 영화가 더 돋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버스를 한 대 대절하여 그 학생들을 서울로 초대하기로 했다. 동문 출신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아 국회의사당과 청와대, 방송국, 63빌딩 등을 방문하고 이화여대에 있는 영화시사회에서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를 감상했다. 학부모와 운영위원, 학생 16명은 완전히 축제의 잔치가 되었다.
몇 년 뒤, Y교장은 전주시내 큰 학교로 영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입학식을 좀 더 뜻있게 할 수 없을까 고심하였다. 교장 연수 때 영국 여왕의 대관식을 본 것에서 착안하여 1학년 꼬마들의 입학식을 성대히 치르기에 이르렀다. 왕자, 공주와 같은 예쁜 왕관을 쓰고 강당의 의자에 앉아서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다 자기 차례가 되면 앞으로 나가 담임선생님이 퍼주시는 꿀을 받아먹는다. 그 의미는 학교공부가 꿀처럼 달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Y교장은 새벽기도와 유대인의 입학식에서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집중력이 바닥난 신입생들은 발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이 때 떠들어대는 6학년들을 정렬시키는 교무 선생님의 구령소리가 지루함을 더해주는 다른 입학식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1학년 신입생들은 처음으로 시작된 학교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왕자와 공주처럼 왕관을 씌워주고 거기다 달콤한 꿀까지 먹고 나니 학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이 심어졌다. 학교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싹 가셨다. 의기양양하게 정말 왕자, 공주가 된 기분일 것이다. 학부모들 또한 기분이 좋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시작한 이 입학식의 입소문은 방송국 기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금년도 입학식 날 이 학교에서 취재가 이루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졸업식은 또 어떤가? 강당 중앙에 레드카펫을 깔아놓고 대학생들과 같은 사각모를 쓴 졸업반 학생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단 위로 올라간다. 졸업장은 뒷면에 반 학생들의 이름과 담임선생님의 한 마디가 들어간 감사패가 대신한다. 졸업패를 든 학생이 중앙에서 고개를 들면 대형 스크린에 그 학생의 얼굴이 비쳐진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의 얼굴을 보려고 모두 집중한다. 이 날만은 졸업생이 단연 주인공이다. 입학식과 졸업식은 학교에서 CD로 제작하여 각 가정에 무상으로 전달되었다. CD를 볼 때마다 처음 등교한 입학식과 마지막 등교한 졸업식의 영상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1년에 한 번씩 있는 학습발표회 때는 소질이 있어 잘하는 학생들은 늘 출연하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들러리를 설 때가 많다. Y교장은 잘하든 못하든 전학생 출연을 전제로 발표회를 이끌었다. 또한 모든 순서의 세팅은 업체를 시키고 학생은 시키지 못하게 했다. 몸집이 커서 출연도 못하고 항상 의자를 가져다 놓는 등 잔심부름만 하던 어떤 학생은 이번 발표회 때엔 교장선생님 덕에 출연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심부름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출연을 하자, 학생의 할머니는 얼마나 CD를 많이 보았는지 CD가 늘어져서 한 장 더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람들은 만남의 중요성에 대해 늘 이야기한다.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 사업주와 사원, 대통령과 국민, 교장과 교사, 한 사람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좋은 직장 동료를 만난 사람, 좋은 친구를 만난 사람은 행복하다. 학생에게는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 한 분의 마음이 얼마나 열려있는지, 교육철학이 얼마나 투철한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될 것이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여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듬뿍 안겨줄 수 있는 교장 선생님을 만난 학생들은 진정 행복한 학생들일 것이다.
(20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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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 글은 필자와 같이 초등교사 합창단원으로 활동하였고, 모임을 통해 친분이 있는 Y교장 본인에게서 직접 들은 일과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토대로 썼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효숙
요즈음 농촌의 인구감소로 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있는 학교를 살린 성공 사례가 심심찮게 뉴스거리가 되곤 한다. 방과 후 학교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도시학생들이 오히려 농촌으로 전학을 온다는 이야기도 이젠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그러나 몇 년 전만 해도 드문 이야기였다.
Y교장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Y교장 또한 방과 후 활동을 무상으로 실시하여 김제 시내 학생들이 오히려 그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왔다는 것이 뉴스로 나오게 되었다. 교장으로 승진하여 처음으로 부임한 학교가 김제 근교의 한 농촌 초등학교였다. 그곳은 전교생이 16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운동회 날이었다. 비가 와서 운동회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강당에서 운동회가 치러졌다. 그런데 청백계주가 문제였다. 마지막 순서의 마라톤이 올림픽의 꽃이듯이 운동회의 꽃 역시 마지막순서에 있는 청백계주였다. 좁은 강당이니 청백계주를 생략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 때 Y교장의 기지로 강당에서 마사이족처럼 경보로 계주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걸어야만 한다. 달리는 학생은 실격이다. 생각해보라. 학생들의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겠는지. 그렇게 열심히 걸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일등으로 들어온 학생은 일등이 아니고 맨 나중에 들어온 학생 순서로 등수가 결정되었다. 평생에 한 번, 소외된 학생이 일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Y교장의 배려였다. 학습발표 때는 16명이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몇 벌의 옷을 마련하여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발표를 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제시 전체 교장선생님들이 감동했었다고 한다. 이 소식도 텔레비전 뉴스로 방송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림 같은 작은 학교에 어느 날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장진 감독이 이 학교에서 영화 ‘소나기’를 촬영하고 싶다는 거였다. Y교장은 흔쾌히 승낙하며 대신 그 학교 학생을 조연으로 출연시켜줄 것을 제의하였다. 촬영하는 날, 서울 강남에서 왔을 법한 커다란 승용차에 부모와 같이 온 주인공 배우들을 시골학생으로 분장시켜 촬영을 하였다. 그 학교 학생들은 특별히 분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녹아들어갔다. 촬영을 마치고 젊은 영화감독은 그 학교 아이들 때문에 영화가 더 돋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버스를 한 대 대절하여 그 학생들을 서울로 초대하기로 했다. 동문 출신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아 국회의사당과 청와대, 방송국, 63빌딩 등을 방문하고 이화여대에 있는 영화시사회에서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를 감상했다. 학부모와 운영위원, 학생 16명은 완전히 축제의 잔치가 되었다.
몇 년 뒤, Y교장은 전주시내 큰 학교로 영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입학식을 좀 더 뜻있게 할 수 없을까 고심하였다. 교장 연수 때 영국 여왕의 대관식을 본 것에서 착안하여 1학년 꼬마들의 입학식을 성대히 치르기에 이르렀다. 왕자, 공주와 같은 예쁜 왕관을 쓰고 강당의 의자에 앉아서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다 자기 차례가 되면 앞으로 나가 담임선생님이 퍼주시는 꿀을 받아먹는다. 그 의미는 학교공부가 꿀처럼 달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Y교장은 새벽기도와 유대인의 입학식에서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집중력이 바닥난 신입생들은 발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이 때 떠들어대는 6학년들을 정렬시키는 교무 선생님의 구령소리가 지루함을 더해주는 다른 입학식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1학년 신입생들은 처음으로 시작된 학교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왕자와 공주처럼 왕관을 씌워주고 거기다 달콤한 꿀까지 먹고 나니 학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이 심어졌다. 학교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싹 가셨다. 의기양양하게 정말 왕자, 공주가 된 기분일 것이다. 학부모들 또한 기분이 좋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시작한 이 입학식의 입소문은 방송국 기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금년도 입학식 날 이 학교에서 취재가 이루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졸업식은 또 어떤가? 강당 중앙에 레드카펫을 깔아놓고 대학생들과 같은 사각모를 쓴 졸업반 학생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단 위로 올라간다. 졸업장은 뒷면에 반 학생들의 이름과 담임선생님의 한 마디가 들어간 감사패가 대신한다. 졸업패를 든 학생이 중앙에서 고개를 들면 대형 스크린에 그 학생의 얼굴이 비쳐진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의 얼굴을 보려고 모두 집중한다. 이 날만은 졸업생이 단연 주인공이다. 입학식과 졸업식은 학교에서 CD로 제작하여 각 가정에 무상으로 전달되었다. CD를 볼 때마다 처음 등교한 입학식과 마지막 등교한 졸업식의 영상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1년에 한 번씩 있는 학습발표회 때는 소질이 있어 잘하는 학생들은 늘 출연하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들러리를 설 때가 많다. Y교장은 잘하든 못하든 전학생 출연을 전제로 발표회를 이끌었다. 또한 모든 순서의 세팅은 업체를 시키고 학생은 시키지 못하게 했다. 몸집이 커서 출연도 못하고 항상 의자를 가져다 놓는 등 잔심부름만 하던 어떤 학생은 이번 발표회 때엔 교장선생님 덕에 출연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심부름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출연을 하자, 학생의 할머니는 얼마나 CD를 많이 보았는지 CD가 늘어져서 한 장 더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람들은 만남의 중요성에 대해 늘 이야기한다.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 사업주와 사원, 대통령과 국민, 교장과 교사, 한 사람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좋은 직장 동료를 만난 사람, 좋은 친구를 만난 사람은 행복하다. 학생에게는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 한 분의 마음이 얼마나 열려있는지, 교육철학이 얼마나 투철한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될 것이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여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듬뿍 안겨줄 수 있는 교장 선생님을 만난 학생들은 진정 행복한 학생들일 것이다.
(20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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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 글은 필자와 같이 초등교사 합창단원으로 활동하였고, 모임을 통해 친분이 있는 Y교장 본인에게서 직접 들은 일과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토대로 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