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여행기(8)/박일천
2012.10.22 05:41
<중남미 여행기8>
안데스 산맥을 따라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박일천
잉카의 수도였던 페루의 꾸스꼬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도중에 빵 굽는 마을인 오로페사에 들렀다. 흙벽돌로 지은 동네는 그 옛날 우리네 시골 풍경처럼 정겨웠다. 흙으로 만든 화덕에 함석으로 굴뚝을 커다랗게 만든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잉걸불 위로 밀가루 반죽을 담은 널찍한 철판을 밀어 넣고 빵을 구웠다. 옛날식으로 빵을 구워 파는 빵 굽는 아저씨 얼굴이 마냥 선량해 보였다. 가이드가 티티카카 호수 사람들에게 선물로 준다고 빵을 샀다. 우리도 사서 먹어보니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이끌려 자꾸 손이 갔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 잉카문명을 찾아가는 게 페루여행이다. 안데스 산간지방은 해발 4,000m가 넘는 분지로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있어서 아늑한 평원 같았다. 높은 산꼭대기에는 하얗게 만년설이 쌓여 있었다. 남반구는 지금 1월이라 여름이건만 눈을 보다니, 이곳이 안데스 고산지대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눈 덮인 설산에서 동화 속의 설인이 나타나 사라진 잉카 이야기를 들려 줄 듯하였다. 피곤한 일행들은 버스에서 졸기도 하는데,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새로운 풍경에 매료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초록으로 물든 들판엔 양떼들이 구름처럼 몰려간다. 그 뒤를 양치기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전통 옷을 입고 따라간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학교에 있을 시간에 안데스의 아이들은 초원을 누빈다.
락치 잉카유적지로 들어섰다. 길가 노파는 라마를 끌어안고 대바늘로 세월을 풀어가며 느릿하게 무엇인가를 짜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흙벽돌로 쌓은 거대한 건축물이 그 옛날 부강했던 제국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부분 잉카의 유적지는 돌로 쌓았는데 이곳은 황토색 벽돌로 지은 것이 색달랐다. 골목길을 돌아가자 돌로 쌓은 커다란 둥근 석축이 군데군데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천장은 갈대를 엮어서 얹고 돌 벽 창문은 아주 작아 건물 속은 어둑했다. 이곳은 잉카시대 공용 창고로서 곡물과 생필품을 저장했다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커다란 곡식 창고를 수없이 지닐 정도로 강국이었던 잉카의 영화는 세월 속에 사라졌고. 버려진 돌무더기 사이로 이름 모를 보라색 야생화만이 애틋하게 피어 있었다.
점심을 먹은 식당 근처에 있는 개울처럼 흘러가는 라라야 노상온천에 발을 담그니 여행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버렸다. 온천에 발을 넣고 눈앞 산봉우리에 쌓인 하얀 만년설을 바라보니 무릉도원에 내가 앉아 있는 듯했다.
석양 무렵 끝없이 이어지는 안데스 산맥을 바라보며 내일 티티카카 호수를 가려고 숙소인 푸노로 향했다. 어느 순간 문득 산봉우리를 바라보니 주황과 노란빛을 띤 불꽃이 산굽이를 따라 물결을 이루며 타오르고 있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산불이 난 줄 알았다. 다시 살펴보니 찬란한 빛줄기가 산맥을 따라 불타는 듯 넘실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내 환호 소리에 사람들도 붉은빛으로 일렁이는 능선을 바라보았다. 모두 처음 보는 해넘이의 장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흔히 보는 낙조는 해가 지면서 선홍빛이 차츰 검붉게 변하다가 주위가 사위어 간다. 그런데 안데스의 저녁놀은 일몰 후에도 산줄기를 따라 휘황찬란한 빛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푸노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3,812m 위치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로 갔다. 티티카카는 남아메리카 최대의 담수호다. 우로스 섬으로 가는 뱃전 위에서 바라본 티티카카 호수는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호수 위에는 점점이 우로스 섬이 떠 있었다. 이 섬은 호수에서 많이 나는 토토로라는 갈대뿌리를 밑에 놓고 그 위에 갈대를 깔아 만든 인공 섬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섬 위에 사람들은 갈대로 집을 짓고 산다. 갈대의 줄기나 뿌리는 식량으로도 사용되며 생필품을 만들어 쓴다. 또한 갈대로 만든 배로 집 사이를 왕래하니 호수 위의 마을버스다.
맨 처음 도착한 우로스 섬 집에는 물닭이 갈잎 마당을 돌아다녔다. 갈대로 수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추운 호수바람에 그을리고 터서 검붉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갈대로 만든 작은 배를 샀다. 사람까지 정교하게 만든 그들의 솜씨가 일품이었다. 갈대배를 타고 이웃집에 도착하니 대가족인 듯 십여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반기며 노래를 불렀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동요 ‘반달’과 ‘산토끼’를 부르는 것이었다. 가슴이 뭉클하였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부르다니, 안내자는 한국 관광객을 위하여 자기들이 가르쳤다고 했다. 우리말로 노래하는 얘들이 고마워서 안아주었다. 떠나올 때 손을 흔들자 아이들은 사슴 같은 눈매로 웃으며 우리가 멀어지도록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로스 섬사람들은 호수에서 갈대를 벗 삼아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수 세대를 이어 빈곤하게 살면서도 사람들의 표정은 어찌 그리 밝은지 행복은 경제 순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검은 물닭이 푸드덕 날아오르는 호수를 바라보며, 이곳 사람들이 순수한 영혼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박일천
잉카의 수도였던 페루의 꾸스꼬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도중에 빵 굽는 마을인 오로페사에 들렀다. 흙벽돌로 지은 동네는 그 옛날 우리네 시골 풍경처럼 정겨웠다. 흙으로 만든 화덕에 함석으로 굴뚝을 커다랗게 만든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잉걸불 위로 밀가루 반죽을 담은 널찍한 철판을 밀어 넣고 빵을 구웠다. 옛날식으로 빵을 구워 파는 빵 굽는 아저씨 얼굴이 마냥 선량해 보였다. 가이드가 티티카카 호수 사람들에게 선물로 준다고 빵을 샀다. 우리도 사서 먹어보니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이끌려 자꾸 손이 갔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 잉카문명을 찾아가는 게 페루여행이다. 안데스 산간지방은 해발 4,000m가 넘는 분지로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있어서 아늑한 평원 같았다. 높은 산꼭대기에는 하얗게 만년설이 쌓여 있었다. 남반구는 지금 1월이라 여름이건만 눈을 보다니, 이곳이 안데스 고산지대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눈 덮인 설산에서 동화 속의 설인이 나타나 사라진 잉카 이야기를 들려 줄 듯하였다. 피곤한 일행들은 버스에서 졸기도 하는데,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새로운 풍경에 매료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초록으로 물든 들판엔 양떼들이 구름처럼 몰려간다. 그 뒤를 양치기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전통 옷을 입고 따라간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학교에 있을 시간에 안데스의 아이들은 초원을 누빈다.
락치 잉카유적지로 들어섰다. 길가 노파는 라마를 끌어안고 대바늘로 세월을 풀어가며 느릿하게 무엇인가를 짜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흙벽돌로 쌓은 거대한 건축물이 그 옛날 부강했던 제국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부분 잉카의 유적지는 돌로 쌓았는데 이곳은 황토색 벽돌로 지은 것이 색달랐다. 골목길을 돌아가자 돌로 쌓은 커다란 둥근 석축이 군데군데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천장은 갈대를 엮어서 얹고 돌 벽 창문은 아주 작아 건물 속은 어둑했다. 이곳은 잉카시대 공용 창고로서 곡물과 생필품을 저장했다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커다란 곡식 창고를 수없이 지닐 정도로 강국이었던 잉카의 영화는 세월 속에 사라졌고. 버려진 돌무더기 사이로 이름 모를 보라색 야생화만이 애틋하게 피어 있었다.
점심을 먹은 식당 근처에 있는 개울처럼 흘러가는 라라야 노상온천에 발을 담그니 여행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버렸다. 온천에 발을 넣고 눈앞 산봉우리에 쌓인 하얀 만년설을 바라보니 무릉도원에 내가 앉아 있는 듯했다.
석양 무렵 끝없이 이어지는 안데스 산맥을 바라보며 내일 티티카카 호수를 가려고 숙소인 푸노로 향했다. 어느 순간 문득 산봉우리를 바라보니 주황과 노란빛을 띤 불꽃이 산굽이를 따라 물결을 이루며 타오르고 있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산불이 난 줄 알았다. 다시 살펴보니 찬란한 빛줄기가 산맥을 따라 불타는 듯 넘실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내 환호 소리에 사람들도 붉은빛으로 일렁이는 능선을 바라보았다. 모두 처음 보는 해넘이의 장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흔히 보는 낙조는 해가 지면서 선홍빛이 차츰 검붉게 변하다가 주위가 사위어 간다. 그런데 안데스의 저녁놀은 일몰 후에도 산줄기를 따라 휘황찬란한 빛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푸노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3,812m 위치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로 갔다. 티티카카는 남아메리카 최대의 담수호다. 우로스 섬으로 가는 뱃전 위에서 바라본 티티카카 호수는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호수 위에는 점점이 우로스 섬이 떠 있었다. 이 섬은 호수에서 많이 나는 토토로라는 갈대뿌리를 밑에 놓고 그 위에 갈대를 깔아 만든 인공 섬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섬 위에 사람들은 갈대로 집을 짓고 산다. 갈대의 줄기나 뿌리는 식량으로도 사용되며 생필품을 만들어 쓴다. 또한 갈대로 만든 배로 집 사이를 왕래하니 호수 위의 마을버스다.
맨 처음 도착한 우로스 섬 집에는 물닭이 갈잎 마당을 돌아다녔다. 갈대로 수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추운 호수바람에 그을리고 터서 검붉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갈대로 만든 작은 배를 샀다. 사람까지 정교하게 만든 그들의 솜씨가 일품이었다. 갈대배를 타고 이웃집에 도착하니 대가족인 듯 십여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반기며 노래를 불렀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동요 ‘반달’과 ‘산토끼’를 부르는 것이었다. 가슴이 뭉클하였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부르다니, 안내자는 한국 관광객을 위하여 자기들이 가르쳤다고 했다. 우리말로 노래하는 얘들이 고마워서 안아주었다. 떠나올 때 손을 흔들자 아이들은 사슴 같은 눈매로 웃으며 우리가 멀어지도록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로스 섬사람들은 호수에서 갈대를 벗 삼아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수 세대를 이어 빈곤하게 살면서도 사람들의 표정은 어찌 그리 밝은지 행복은 경제 순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검은 물닭이 푸드덕 날아오르는 호수를 바라보며, 이곳 사람들이 순수한 영혼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