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미술관

2019.02.20 05:22

한성덕 조회 수:3

움직이는 미술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중고등학생 통틀어 봄가을의 두 차례 포스터 그리기대회에서 늘 대상을 차지했었다. 다른 학생들이 넘볼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던 것이다.

  하루는 중학교 미술 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그림에 소질이 있다며 미술대학을 권하셨다. 그 때부터 미술실의 ‘비너스’와 가까운 연인(?)이 되었다. 보고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하얀 모습의 미모에 빨려들었다. 데생(dessin)을 지도하시는 미술선생님으로부터 적잖은 칭찬도 들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비너스 상을 요리조리 처다 보며 바삐 손을 움직이는데, 나를 빤히 처다 보며 “돈 많니?”하면서, 자기와 친해지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속살거렸다. 그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보니 꿈이었다. 꿈은 실제가 되어 비너스는 결코 내 차지가 될 수 없다며 가난을 원망하고 재능을 접었다. 지금도 아쉬움이 스멀거리고 미련이 남는 인생여정(餘情)이다.

  그 영향 탓일까? 색깔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 중 자동차의 색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 오르면 제일 먼저 자동차행렬을 바라보며 ‘저 많은 차들이 다양한 색깔로 도로를 누비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거리는 한층 밝고 활기차 하나의 움직이는 미술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나이에 눌려서 그러려니 하고 살지만, 한 때는 차들의 색상을 체크하다가 끝없이 밀려드는 무채색에 질린 적도 있다.

 우리나라 국토교통부에서 내 놓은 통계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자동차 등록대수는 총 23,202,555대였다. 인구 2,2명당 자동차 한 대를 보유한 셈이 아닌가? 그야말로 ‘마이 카’ 시대라 할 수 있다.

  자동차의 시작은, 1769년 프랑스의 N. J. 퀴노가 포차를 견인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물론 15세기 중반에도 스프링이나 태엽, 또는 바람 등으로 움직이는 실험적 운반체 연구가 있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자동차로 보기는 어렵다.

 1801년에 만들어진 R. 트레비식의 증기 자동차는 매우 실용적인 것으로 대형바퀴를 달았다. 소음과 악취가 심하고 보일러의 폭발 위험이 있다는 난제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영국에서는 대중교통수단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유럽자동차 제작의 선구자는 독일의 G. 다임러와 K. 벤츠인데, 1880년대부터 따로 차를 만들었다. 1885, 다임러는 가볍고 강력한 가솔린 기관을 완성하면서 벤츠와 경쟁했으나, 결국은 1926년 두 회사가 합병돼 ‘다임러벤츠사’로 존속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로 꼽힌다.

  자동차역사를 잠깐 언급한 것이지, 속도에 따른 성능이나 내구성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수선할 뿐이다. 다만, 겉에서 보는 색상을 언급하고 싶다. 실은, 나름의 좋아하는 색상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색상 선호도가 늘 궁금했다. 그래서 자동차의 색상을 보면 알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색상 80%가 무채색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조사한 ‘엑솔타 코팅 시스템즈’ 보고서에 따르면, 무채색 중 가장 인기 있는 색상은 흰색이다. 북미지역에서는 4대중 1대 이상, 유럽은 3대중 1대 이상, 아시아로 건너오면 이보다 훨씬 높아서 무려 2대중 1대가 흰색이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흰색(32%), 회색(21%), 검은 색(16%), 은색(11%)순이다. 모두 무채색이다. 내 경우는 카니발 9인승을 구입하면서 하늘색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진한 빨간색으로 구입할 참이었으나 너무 튄다는 아내의 말을 따랐다.

 사람들은 왜 무채색 자동차를 좋아할까? 작은 흠집이 생겨도 눈에 잘 띄지 않고 관리가 편하다. 질리지 않으면서 튀지 않는다. 되팔아도 그런 이유들 때문에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고 믿는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의상과 비 내리는 날의 우산들, 그리고 갖가지 형태의 건물로 빼곡한 도심의 거리를 보라. 그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에 각양각색의 자동차들이 행렬을 이룬다면, 거리거리는 풍요와 품격이 넘실거리고 멋스러움이 한껏 솟아오를 것이다.    

  실제로, 신차 출시 때마다 형형색색의 자동차들이 쏟아진다. 사람들이 다양한 색상을 구입하면 거리는 ‘움직이는 미술관’이 되지 않겠는가? 그 같은 대한민국을 만들자며, 거리로 나가 나 혼자라도 피켓을 들고 소리쳐야 할까보다.

                                                 (2019.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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