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9 11:55
새 안경
신아문예대학 수요수필반 이진숙
5년 만에 새 녀석으로 바꿨지만 아직은 많이 어색하다. 왜 아니겠는가! 지난 5년 동안 나와 한시도 떨어진 때가 없었던 녀석을 대신하니 자연 어색할 수밖에, 마치 평생을 함께할 것처럼 붙어 살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권태기가 왔는지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때로는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새 녀석을 맞이해야겠다고 큰 결심을 했다. 그 녀석과 처음 만났던 곳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인지, 그 녀석에게 빨리 찾아오게 만들어 줘서 잘 했다고 칭찬을 하는 것인지, 녀석을 내려놓고 복잡한 기계 앞에 앉으란다. 이런 저런 것들을 보여 주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무래도 그 기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가까운 안과에 한 번 다녀오라며 안내를 해주었다. 별일 아니려니 생각하고 안과 의사선생님 앞에 다소곳이 앉아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눈 상태보다 시력이 잘 안 나오는데요?’했다. 안경처방전과 눈약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사고 다시 그곳으로 갔다. 이제는 녀석과 진짜 이별을 준비해야겠다.
그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도 세자빈을 고르듯 몇 차례나 간택한 뒤 나에게로 왔었다. 이번에는 마치 왕비마마를 새로 들이 듯 이것저것을 계속 고르고 또 골라서 드디어 나와 천생연분이 될 녀석을 선택했다. 약간 분홍빛이 도는 똥그란 모양이 세련되고 예뻐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멋지게 만들어질 새로운 녀석을 기대하며 집으로 왔다.
그간 나에게 5년 동안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봉사해 준 녀석의 고마움은 이미 저 먼 곳으로 가 버렸다. 연락해 준다는 약속만 받아 놓고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가신 도련님을 기다는 춘향의 마음처럼 기다리다 눈이 짓무를 지경이었다. 드디어 소식이 왔다. 한 걸음에 쫓아가고 싶었으나 행여 새로 만나는 녀석이 나의 행동을 가벼이 볼까봐 애타게 기다린 때가 있었느냐는 듯이 느긋하게 그곳으로 갔다.
동그랗고 예쁘장한 것이 약간 보랏빛을 보이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녀석을 받고 보니 영 어색한 것이 언제나 정이 들지 모르겠다. 전에 나와 함께 했던 녀석은 진한 보랏빛 테를 두르고 좀 더 강한 모습으로 왔었는데, 이번 녀석은 눈알만 살짝 보랏빛을 띠고 있어 가까이 하기가 어색했다. 그래도 이젠 새로운 녀석과 같이 지내야 되니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고 거울을 보았다. ‘아이고 맙소사! 저게 내 모습이람?’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거울 속에는 어떤 낯선 노인이 들어 있었다. 이마에는 일등병처럼 두 줄이 뚜렷하게 그어져 있고, 아래로 갈수록 여기저기 구불구불 깊게 파인 선들이 마구 그려져 있는데, 어떻게 저 노인이 나란 말인가? 인정하기 싫었다. 너무 솔직한 그 거울이 갑자기 미워졌다. 멀리 있는 다른 거울에서는 제법 그럴 듯한 멋진 노인이 보였다. ‘그렇지, 저게 바로 나야!’ 비로소 위로가 되고 새로 마련한 녀석이 마음으로 들어왔다. 이제부터 나랑 오래오래 다정하게 지내자며, 먼 곳을 보니 새로운 세상인 듯 밝고 선명하게 보였다. 이렇게 나는 새로운 안경과 한 몸이 되어 그곳을 나왔다.
(2019.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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