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를 즐기는 사람들

2020.11.27 11:59

이인철 조회 수:2

5. 시비를 즐기는 사람들

   이인철

 

 

    

  애주가들은 일주일 중에 금요일을 술 마시는 날이라고 한다.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술을 깨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금요일 저녁 해가 뉘엿뉘엿해 질 때쯤 건장한 40대 청년 한 명이 들어오자마자 일회용 라이터 한 개를 찾았다. 옷차림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작업복 차림이었다. "한 개에 5백 원입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부터 내더니 끝내 욕설을 퍼부었다. 도둑놈들이라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함부로 하십니까?" 조용히 나무라며 편의점 가격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에도 말이 끝나기 전에 시비조였다. 아예 훈계까지 곁들였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물건을 팔 때는 손님들에게 정중하게 값은 어떻게 정하고 어떻게 팔고 있다는 등 자초지종을 먼저 설명하라고 했다. 바쁜 시간에 일회용 라이터 한 개 때문에 고함이 난무하는 가운데 밖의 손님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고 쳐다보았다. 서둘러 내보내기 위해 내가 잘못했으니 빨리 다른 데로 가보시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또 젊은 놈을 무시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결국 계산대 앞바닥에 가래침을 뱉으며 이런 집구석에 다시는 안 온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가버렸다. 참으로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30여 분이나 혼자 소리를 지르고 나간 것이다. 이렇게 시비를 즐기는 사람들과의 마찰은 종종 일어난다.

 가끔 찾아오는 젊은이가 있다. 이 젊은이는 물건을 계산할 때마다 맛이 없으면 책임지라고 욱박지른다. 하도 귀찮아 제발 우리 집에 오지 말아 달라고 사정해도 잃어버릴만 하면 꼭 나타난다. 일주일에 두서너 번씩 찾아오는 50대 주부는 물건을 계산할 때마다 투정이다. 대형마트는 얼마 받는데 여기는 왜 비싸냐고 혼자 구시렁거린다. 그리고 며칠 후면 어김없이 또 찾아와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고객들이 바닥에 뱉은 가래침을 닦기 위해 서둘러 걸레질을 하자니 갑자기 울컥해졌다. 꼭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시비를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고약한 고객은 단연 종업원을 길들이는 사람들이다. 바쁜 와중에도 꼭 종업원에게 무엇을 데워오라, 찾아오라, 끓여오라는 등 마치 자기 부하직원 다루듯이 모두가 명령조다. 아마 이런 유의 고객들은 일터에서 상사에게 당한 그대로 종업원에게 화풀이하는 모양새다. 한 번이라도 싫은 기색을 할라치면 큰 소리부터 나올 것 같아 다른 고객들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60대 고객들이 있다. 이분들은 아예 휴게실에 앉자마자 고함부터 지른다. "여봐, 주인장."이 첫 신호다. 그다음부터는 술 종류부터 안주까지 줄줄이 외쳐댄다. 꼭 술에 취해 들어오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달려가야 한다.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큰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휴게실에서 술은 마실 수 없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이들 고집은 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상상도 못해 본 일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줄 어찌 알았겠는가? 한가한 시간 문밖에 나와 하늘을 쳐다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요즘은 거의 하루 일과처럼 자리 잡아간다. 예전엔 눈물이 흐를 때면 거울을 쳐다봤지만 요즘은 거울이 아니라 하늘로 바뀌었다. 거울을 보면 눈물이 흘러내리는 내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 눈물을 그쳤지만 요즘엔 눈물 흘리는 모습을 아예 보지 않으려고 하늘을 본다. 오늘은 하늘에서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웃으시면서 힘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울러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도 꼭 잊지 않으신다. 언제까지나 자상하신 아버지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힘을 낸다. 더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서다.  

                                            (2020.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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