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지 않는 들꽃

2020.11.27 12:40

구연식 조회 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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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지 않는 들꽃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이 세상에 이름 없는 들꽃은 없다. 다만 이름을 몰랐을 때 둘러대는 표현이다. 요사이 유원지 어디를 가나 토종의 꽃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좀 더 화려하고 개화시기에 맞춰 유전인자를 배합시킨 변형된 들꽃들로 가득하다. 그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온 들꽃들이 가장 생명력이 강하고 주위 사람들과도 가장 친숙하여 우리의 산야를 지키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천덕꾸러기처럼 뒷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의 고향 뒷산에는 선영이 모셔져 있고 그 아래에는 가족묘도 조성되어 있다. 내가 묻힐 곳도 치표되어 있어 그곳을 갈 때마다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주위의 들꽃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새싹을 띄우고 계속 꽃을 피운다. 어느 때는 만물의 영장이 들꽃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죽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데 들꽃들은 그 자리에서 계속 피고 지고 생명이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산소 주위의 들꽃들을 밟지 않고 꺾지도 않으려고 벌초나 성묘할 때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다.



그 들꽃 중에서 들국화가 그리도 정이 간다. 가뭄이 계속되는 여름날에 와보면 뜨거운 가마솥 바닥에 누룽지가 되어 바위의 이끼처럼 죽어있는데, 새벽이슬 한 모금 적시더니 바르르 고개를 떨면서 일어서는 들국화가 그리도 신통하여 고생대의 화석식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의 산야에 들꽃들은 어느 생물학자가 유전인자들을 교잡 시켜 만든 결과가 아니고 오랜 세월동안 우리와 같이 울고 웃으며 적응력을 키워온 결과이다. 어느 들꽃들이 원산지에서 자연적 전파(傳播)는 씨앗이나 뿌리 등으로 옮겨지기 때문에 이어진 대륙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어진 대륙이라 하여도 옆으로 옆으로 해마다 조금씩 옮겨 갔을 테니 수억 년의 세월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들국화를 우리의 산야를 지켜온 조상들의 혼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느 유원지에 갔다. 코스모스는 가느다란 줄기로 적당한 키에 가을바람에 꽃잎이 나비처럼 하늘거리는 모습으로 꽃물결 치는 것이 코스모스의 지고지순한 자태이다. 그런데 어떻게 변종 시킨 코스모스를 심어 놓았는지 키는 땅딸막하여 발에 밟힐 정도로 모두 작고 꽃도 순수함보다는 화장을 짙게 하여 이상하게 한 피에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식물도감용 스마트폰 앱으로 촬영하여 확인해 봐도 인식을 못하고 있다. 옆의 들국화밭도 마찬가지다. 들국화는 이름도 꽃도 여러 가지인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바위틈에 가뭄을 견디며 모질게 살아가는 모습, 벼랑 끝에 작은 뿌리 하나로 대롱대롱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래도 안전한 솔푸덩 아래 작은 줄기보다 몇 배나 큰 얼굴을 받치고 피어있는 들국화는 보이지 않고 성장 호르몬 주사를 놓고 영양제를 먹인 꽃들로 가득하여 내 눈에는 화려함이 순수한 가냘픔만 못해 보인다.



그래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하는가 보다. 유원지에 관광용으로 새로 교잡된 들꽃들을 행여 순수한 우리의 토종꽃으로 신세대들이 잘못 인식해 버릴까 싶어 언제부터인가 잊힌 토종꽃들의 대변인이 되었다. 성형수술로 고쳐진 엄마의 얼굴과 사진에 각인되어 있는데, 늙어서 돌아가실 때 원래 모습으로 복원된 어머니의 모습에 당황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어느 파티장에서 미모의 여인이 나에게 미소를 주었다고 착각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운 아내를 잠깐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원지의 변종이 된 야생화에 현혹되어 뒷동산의 들국화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그렇다. 남들은 관계가 있을 때만 좋은 분위기로 이어지고 마는데, 그것이 단절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생면부지의 남남으로 돌아가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아내는 천년지기 배필로 들꽃처럼 서로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진실한 믿음과 미소를 줄 동반자이다.



하기야 나도 유원지의 개량종 들꽃들을 보는 순간, 산속 들꽃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냥 눈 호강에 젖은 경우도 허다했다. 들꽃들은 초라하지만 언제나 따스하고 순수한 눈빛으로 맞이해 준다. 지나가는 길손들을 반가이 맞이하는 오두막의 쉼터 역할을 한다. 들꽃들은 나그네에게 안락의자를 내어주고 석간수 한 종지를 권한다. 들꽃은 세상천지를 방황하다가 마지막으로 찾아와도 감싸주고 용서해주는 어머니의 치마폭 같은 꽃이다.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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