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길을 닦는 사람들

2010.09.07 02:40

이영숙 조회 수:42

  매일 아침 등산하는 그리피스팍을 오늘도 여전히 오르고 있었다.  ‘싸각, 싸각, 싸각......’  귀를 쫑긋이 기울였다.  무슨 소리일까?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다람쥐나 토끼가 아침식사 하는 소리인가?  혹시 뱀......?  여러 가지 생각으로 소리 나는 곳을 주의 하면서 조심스레 발길을 옮겨놓았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 보니 큰 챙이 있는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허리를 숙인 50대 조반의 히스페닉 아주머니였다.  떨어진 나뭇잎을 쓰느라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고 있었다.  “하이......” 내가 인사를 하자 말없이 돌아보며 허리도 펴지 않은 채 엷은 미소 한번 짖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뭇잎을 쓸고 있었다.  “댕큐”다시 인사하는 나를 그녀는 들은 척도 않고 계속 일만하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 없음이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해야 할 말을 한 것으로 다 된 것이니까.   그녀는 이곳에서 일 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움직이는 손놀림이 퍽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단순히 일하며 일당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하여 일을 하고 있지나 않을까.  그러나 지나가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그 길을 걷는 모두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고 상쾌함을 선물하고 있는지 자신도 아마 모를 것이다.  그 아주머니가 오늘 그렇게 감사하게 느껴진 것은 세상을 살다보면 내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내 앞길을 쓸고 있는 사람이 저렇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미친 것이다.     미국 이민초기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는지도 여기저기서 들어 익히 아는 터이다.  이민100주년 기념식이 얼마 전에 있었다.  그 오래전 일이야 신문지상등 매스컴을 통하여 듣기만 하였기에 그렇게 가슴 깊이 닿지를 않았다.  그러나 겨우 한 이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많은 이민자들이 격은 아픔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김치가 먹고 싶어서 수 시간을 차를 몰고 가야 했고,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  20년 전 타주에 살고 있던 친구는 임신 중에 입덧이 심한 가운데 한국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울기만 했단다.  남편이 하루 시간을 내어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3시간 이상을 운전하여 가서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먹었다는 눈물겨운 사연도 들었다.  엘에이에만 살았어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 곳은 그때만 하더라도 한인이 거의 없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어쩌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이 한국 음식을 가지고 오면 몇 되지도 않는 온 이웃들이 모여 그 음식을 먹으며 잔치를 벌였단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한국 음식에 대한 반가움을 함께 나누고 눈물과 웃음을 섞어 먹었다고 했다.  이민 초기의 고생한 이야기를 들을 때 늘 가슴 한 켠에 아련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였다.  그 분들의 고생이 있었기에 지금 뒤늦게 이민 온 우리들은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 미국에 올 때에 혹시 한국 음식이 풍족하지 않을까봐 이것저것 준비하여 왔었다.  ‘미국’이라는 곳에 찾아온 내가 한국에서 먹던 것을 마음껏 먹지 못할까 염려한 마음으로 나름대로 이것저것 준비하였다.  화물로 부친 보따리에 나와 딸이 유난히 좋아하는 식해를 해 먹기 위해 엿기름가루를 넣었다.  그것이 세관을 통과하면서 아마 엑스레이에 하얀 가루가 찍혔었나보았다.  어쩌면 그들은 그 하얀 가루가 마약이라도 되는가 하고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무엇인가 이상하게 생각하였었는지 내 보따리를 다 풀어 헤쳐 놓았다가 다시 쌓다.  그 과정에서 너무 대충, 아무렇게 싸놓아서 기분이 편안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 있는 한인마켓에 가면 얼마든지 많이 있는 엿기름가루인데.   ‘연탄집게 빼고는 다 있습니다.’라는 어느 백화점의 광고 문안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듣고 웃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친구가 전화하면서 남편이 미국에 올 때에 보내줄 터이니 한국 음식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하라고 이야기했다.  친구에게 그 광고 문안을 말하였더니 넘어 갈 듯이 웃는다.  친구의 말이“요즘은 한국에도 연탄집게는 없어.”   이제는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음식 때문에 고생한다는 말은 다 옛말이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있고,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다 이민초기의 고생을 많이 한 그 분들의 덕이 아니겠는가.  앞선 그 분들의 고생과 어려움이 있었기에 지금 뒤늦게 이민 온 우리는 이렇게 편안히 어려움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이민초기의 미국 사회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모자라 더 어려움을 당했을 게다.  한국인들이, 소수민족이 격어야 했던 그 어려움.  그러나 그 시기들이 지나가면서, 한인들의 기량을 미국 사회에 알리면서 지금은(아직 소수민족에 대한 많은 편견이 있다고는 하지만)많은 인정을 받고 사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서 많은 초등학교를 비롯한 중고등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학교, 수준이 높은 학교를 찾으라면 한인학생이 얼마나 많이 있는 학교인가를 찾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문론 이것이 미국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게다.  한국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켈리포니아를 중심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어디라도 한인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아마 곳곳이 다 그러지 않을까 하는 나의 생각이다.  그러니 이제는 한인의 위상도 높아져 미국에 사는 이들이 쉬 한인들을 무시하지 못할 위치에까지 와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도 앞선 분들이 닦아놓은 길을 편안히 가는, 늦게 이민 온 우리들이 감사해야할 부분이 아니가 한다.   사실 열거하자면, 과학, 문학, 음악 등 모든 학문 분야를 통 털어 고생한 우리 앞의 많은 사람들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내가 알지 못하게 내 앞길을 닦고 지나간 고마운 분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나의 앞길을 닦고 있는 분들.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분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내 뒤에 오는 누군가를 위하여 길을 닦아야 하지 않을까.  앞서서 나의 앞길을 닦은 분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편안히 잘 살고 있다.  나 또한 내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하여 길을 닦으며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내 앞길을 잘 닦아 놓아 내가 편안히 걸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길을 상쾌한 기분으로 걸을 수 있도록 해준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난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길을 닦는 일을 해야겠다.  그것이 어느 분야이든, 어떠한 모습이든.  그리고 그들이 나를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상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