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구경 김영교

2009.10.31 16:21

김영교 조회 수:54

꽃구경 금년 봄 서울을 방문한 나에게 이것저것 챙겨준 큰 오라버니의 선물가방 속에는 이외수의 책과 건강식품, 그리고 장사익의 CD가 들어있었다. 김용택 시인이 쓴 시 ‘이게 아닌데’를 불러 시의 묘미를 극대화시킨 소리꾼, 장사익을 가깝게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빠져들고 만 지난 날이 떠올랐다. 그의 대표곡 ‘찔레꽃’은 국민가요처럼 모두가 즐겨 듣고 함께 흥얼거리지 않는가. 애잔함이 흐르는 노래들, 친숙해져있는 곡과 노래 말, 부담 없이 다가와 행복한 한 마당을 펼쳐주어 잠시나마 고달품을 잊게 해준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음악치료라고나 할까? 새로 가담한 장사익 시리즈에 오라버니 선물 CD 꽃구경, 그 안에 들어있는 노래 ‘꽃구경’에 가서 내 아린 가슴이 후벼 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따뜻한 봄 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 60년대 중반 미국에 유학 온 나는 그때 영주권이 없어 어머니의 임종을 못 봐드린 불효를 저지른 막내 딸이다. 그래서 가슴에 남아있는 회한이 남다르다. 남도산사 순례 동창모임이 있었던 지난 4월 섬진강에 흐드러지게 꽃비 내리던 벚꽃을 떠올리며 눈가가 젖어들었다. 어머니는 가고 없고 어느 듯 어머니 자리에 와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하는 꽃구경...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듯이 호소력이 대단했다. 인생의 후반전을 아름답게 꽃피우는 그의 창법, 뛰어난 독보적인 독창력으로 끼를 발산하는 대단한 소리꾼이라 듣는 사람은 공명하며 함께 범벅이 되기에 누구나 그를 명창이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는 곳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한 장사익 소리판 기록만 봐도 증명이 되고도 남는다. '꽃구경’이 꽃피는 봄 날 미주로 날아와 펼친 뉴욕 공연은 (2009년 4월 18일) 이민의 서러움을 달래는 위로 차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가슴 흐뭇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꽃구경에는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보지 않는 장사익의 관조적 태도가 깔려있다. 시공을 휘여 잡은 듯 교감과 대화로 이어가면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경지로 몰고간다. 이때 카리스마적인 에너지는 무의식적으로 청중을 매료 빨려 들게 만든다. 삶, 죽음, 이별, 사랑을 온 몸으로 절절하게 토해내는 그의 열창, 언어와 목소리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우리에게 이민의 외로움이나 서러움을 같이 흐느끼며 달래며 울려 힘 있게 일어서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이라 믿어졌다. 우리의 가슴을 흔드는 공감대가 이민 광야에 쓰러지는 들풀, 옆의 풀이 손잡고 일으키고 또 그 옆의 풀이 손잡고 일으켜 서로 의지하여 일으켜 세운다. 낙심되어 쓸어져도 일으켜 세우는 가슴, 그 경지에 끌어올려 감격의 힘을 발산하는 장사익의 노래를 나는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긴다. ‘바보천사’(김원석님의 시)를 비롯, 그동안 불렀던 국밥집에서, 아버지, 삼식이’ 등의 노래가 있는가 하면 ‘돌아가는 삼각지, 동백아가씨, 눈동자, 장돌뱅이, 봄날은 간다’ 등을 장사익 특유의 감성으로 재해석, 많은 이들이 장사익의 노래를 통해 위안을 받는다고 말한다. 민족서정이 절절한 가수의 신산한 삶이 녹아있는 그의 노래에서 우리들 삶의 희로애락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의 얼굴과 닮은꼴을 찾을 수 있는 폭넓은 공감대가 그 까닭이란 생각이 든다. 그 뿐인가, 장사익은 태풍이 지나간 자리, 그 허허 망망 바다에서도 겨자씨 한 톨 같은 희망을 건져 올려 ‘하늘가는 길’에서조차 낙관주의를 지향해주어 여간 고맙지 않다. 그의 소리가 새벽에 길어 올린 샘물처럼 청신하고 강한 생명력으로,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특혜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바로 나의 아픈 체험이 그의 노래에 걸러져 우주를 관통하는 차원 높은 정화과정에 절절히 공감하는 내면의 시전이 경작되기 때문이라 믿어졌다. 우리 이민의 외로움,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고, 우리들, 수고하고 힘들어하는 이민자에게 ‘힘 내’ 뜨거운 응원가처럼 들리는 장사익의 목소리, 오라버니에게 댕규 카드라도 쓸 참이다. 큰 오라버니 외에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시인, 화가, 무용평론가이기도 한 초개 김영태 화백이다. 7권의 내 작품집, 시집과 수필집 표지와 삽화를 우정으로 그려준 김영태 화백, 큰 오라버니의 친구이기도 한 그가 암으로 투병하다 73세로 세상을 떠난 것은 지금도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초개의 강화도 전등사 수목장에 장사익은 조가 <찔레꽃>을 헌화했다. 상상만 해도 초록 숲속 흰 두루마기의 장사익은 한 마리 학이 되어 김영태 화백을 하늘나라로 배웅해 드렸을 것이다. 전설 같은 실제 그림이었다. 오늘 병원에서 돌아와 쉴 때 머리를 짚어주는 어머니 손길이 그립다. 어머니 대신 장사익의 ‘꽃구경’이 찾아와 나를 글썽이게 한다. 그런 분위기를 마다않고 나는 나를 한참동안 방치해 두며 그 속으로 깊숙이 침잠한다. 가끔 이런 나를 나는 사랑한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따뜻한 봄 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 PS: CD를 챙겨주신 큰 오라버니 지금 중환자실에, 드릴것은 기도와 눈물 밖에 없는 막내 동새의 한계 절감 절절하게 쾌유를 기원하며...(2011년 2월12일) 이대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