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내기

2009.03.13 13:32

이영숙 조회 수:55

“잘라내기” 오늘 아침에 딸아이가 입고 나간, 이번에 남편이 한국에서 사 온 얇은 그린 색 블라우스가 아주 아름답게 느껴졌다. 약 2주전에 그 옷을 입기를 원하였었지만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 추울 것 같아서 감기라도 들까 염려되어 극구 반대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청바지 위에 걸쳐 입은 그린색깔이 화사하여 한창 물오르는 16살의 딸의 얼굴과도 너무 잘 어울려 아주 예쁘다고 칭찬까지 하니 딸이 기분이 한층 부풀어 나갔다. 이제 봄이다. 지난 가을 풍성한 열매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던 모든 것들이 겨우내 죽은 듯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이제 활짝 피어나 다시 열매 맺을 준비로 부산한 새로운 봄이 왔다. 움츠렸던 겨울은 서서히 우리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제 곧 나무들이 물이 올라 새순을 피울 것이며, 한국에서는 강가의 버들강아지들이 불려오는 바람에 한들거릴 것이다. 문득, 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오래 전 한국에서 언니네가 과수원을 하였었는데 봄이 올 무렵이면 그 과일나무들을 가지치기 하던 일이 생각이 난다. 봄을 맞이하기 전에 언제나 가장 먼저 가지치기를 하는데 지난 가을동안 잘 자라난 가지들을 이러 저리 돌아가며 쳐주었다. 곁에서 보고 어린 나는 정말 안타까워 그 아까운 가지를 왜 잘라야 하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나같이 무지한 사람이 보면 잘라내는 나무가 아깝기도 하고, 나무의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아프고 힘든 시간들이었을까. 언니의 말은 가지가 많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에,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에 도리어 방해가 된다고 하였다. 가지치기를 해줌으로 나무는 건강해지고 튼튼하게 잘 자라며 꽃도 많이 피어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니 불필요한 가지들은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이라 하였다. 나무는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 그저 참아야 하는 고통이라고 말하기에는 자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 튼튼한 나무를 만들고 열매를 더 잘 맺기 위함이라니 어찌 아픔이고 고통이라는 이유로 미룰 수 있을까? 더 풍성한, 더 튼튼한 나무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니 참고 또 참아야함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봄이 무르익어 아름다운 꽃들과 어울려 벌과 나비들의 향연이 끝나고 나면 그 결실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다. 과일이 얼마만큼 열리고 나면 어느 정도 자라서 너무 커지기 전에 ‘접과’ 라는 것을 하는데, 그 또한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이 생긴다. 소복이 열려있는 과일을 보면 너무나 탐스럽고 풍성한데, 그 과일을 6-7개, 혹은 그 이상의 과일들 중에서 아주 좋은 것 하나만 남기고 잘라내는 일을 한다. 좋은 과일이 몇 개가 있을 때는 임의로 하나를 남기고 나머지는 무조건 잘라버린다. 많은 사과가 열렸다고 기뻐하며 잘 키워보려고 애쓰며 노력하여 그것들을 모두 열심히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접과 가위라는 아주 날카롭고 예리한 가위로 돌아다니며 사정없이 잘라내기 시작한다. 그 아까운 과일들을. 좀 잘 다독거려 모두 살려주고 열심히 잘 자라게 도와주어 많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할 수는 없었을까?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그러나 언니는 엉성하게 10개의 과일이 열리기보다는 정말 충실한 하나의 과일을 원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모두 잘라내고 가장 충실한 하나만 남겨두어서 그것으로 상품이 될 만한 좋은 사과로 태어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가끔 ‘전지’도 해야 하고 ‘접과’도 해야 한다. 잘라내는 것은 아픔이고 고통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잘라내기'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나누어질 것이기에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이것을 자르고 나면 금방은 손해인 듯 하여 마음에 안쓰럽고, 또 가끔은 아픔이 견디기 힘들어서 선뜩 칼을 대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라야한다. 아픔을 이길 수 없다면 성공을 바랄 수 없을 것이면, 한 순간의 손해를 감수하지 못한다면 더 나은 이익을 결코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지치기를 할 때나 접과를 할 때는 시기가 아주 중요하다. 시기를 놓치고 나면 나중에 잘라내어도 좋고 튼튼한 나무나 과일을 만들지 못하며 도리어 큰 손실을 가져오기만 한다. 적당한 시기에 빨리 손을 써서 자를 것은 자르고 끊을 것은 끊어야 튼튼한 나무와 좋은 과일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좀 아프더라도, 때로는 힘들더라도, 가끔이 그것이 나에게 경제적, 정신적 손해를 불러 오더라도 잘라내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이 들 때에는 빨리 잘라서 정리 정돈해야 앞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시기라 생각하였을 때는 과감하게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삶의 지혜이고 남보다 앞서나가는 과정이니, 한 순간도 지체하지 말고 때를 놓치지 말고 과감히 행해야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나의 잘못된 습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일, 피해가야 할 장소, 고쳐야 할 생각들을 잘 정리해 잘라야 한다. ‘전지가위’를 든 손에 떨림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