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영어 이름을 지어준 사연

2009.07.25 16:00

성민희 조회 수:50 추천:2

친구에게 영어 이름을 지어준 사연


여고 동기 7명이 매달 세 번째 토요일에 만난다. 만나서는 늦은 점심 먹고

커피샵에서 수다 떨다 헤어지는데, 이번 모임은 라구나 비치 호텔에서 우아한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근데 윤경이는 직장 관계로 참석이 어렵다 하고, 성귀도 한국에서 오는 손님

땜에 못 오겠단다. 두 명이 참석을 못한다니 한쪽으로 김이 빠져 바다로 가는 건 취소하고,

스파에 가서 벌거벗고 서로의 진실을 보이자는 내 의견에 낄낄거리며 모두들 동의해 주었

다. 그래서 내가 다시 전화질을 해대야 하는데. 마침 남편이랑 외출하는 길에 전화가 왔다.

"응, 성귀구나. 못 와도 괜찮아. 다음 달에 보면 되지 뭐. 정자 만났다고? 잘했다.”

성귀랑 정자는 한 동네 사는 덕에 항상 같이 오는데, 이번 모임에 참석을 못해 미안하다며

경우 바른 성귀가 정자집에 김밥을 사 들고 가서 놀다 왔단다. 전화를 끊고, 곧 정자한테로

전화를 걸았다.

"오늘 성귀가 놀러 왔담성? 걔는 못 오더라도 정자 너는 꼭 와야 한다.”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남편이 빙글빙글 웃음을 흘렸다.

"너그 친구들 이름이 다 와그렇노?"

정자라는 이름이 촌스럽단 소린가 싶어 대뜸 반박했다.

"와? 정자가 어때서. 그기 뭐가 촌시런 이름잉교?"

" 성기에, 정자에------ 난자는 없나? 거기에 난자만 있으면 끝내주는데. 성기가 정자하고

난자 데리고 스파 가면 참 환상적이겠다."

집에 오는 내내 둘이서 마주보며 웃느라고 운전이 비틀비틀.


토요일. 친구들이 스파에 모였을 때 내가 막 고자질을 했다. 음식을 앞에 두고도

먼지가 펄펄 날리도록 모두들 데굴데굴 굴렀다. 찔끔 난 눈물을 닦으며 정자가 말했다.

"50평생 살아도 내 이름 가지고 그렇게 연상하는 것 처음이다 아이가."

"그기 문제인기라. 니가 와 하필이면 성귀 옆에 살아가지고---"

회장 격인 명자가 웃느라고 벌개진 얼굴로 정색을 하며 나무랐다.

"성귀! '귀할 귀'인데 경상도 가시나들 발음이 마, 멀쩡한 아~ 이름을 성기로 바까삐린기라.

가시나 너그들 발음 좀 똑바로 몬하것나."

지엄한 꾸중. 그러나 어쩌랴. 50년 넘게 굳어버린 발음을.

"우짜몬 좋노. 너그 둘 이름만 부를라카몬 자꾸 난자가 생각날낀데."

"이 나이에 이름을 새로 지을 수도 없고--- 할 수 없다. 영어 이름 하나씩 만들자."

그래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귀한 이름을 덮어줄 세련된 영어 이름들이 하나씩 탄생했다.

성기(?)는 스텔라로, 정자는 죠이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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