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 육개장
2010.10.29 13:18
보슬비 육개장
이월란(2010/10)
밖에는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나는 빠글빠글 육개장을 끓인다
살아 있는 소를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찢고 삶아서 잡아먹는다
그리곤, 살아 있던 고기인지 뭔지
가물가물 보이지 않도록
초봄 같은 고사리를 넣고, 버섯을 넣고
무를 넣고, 토란껍질을 넣고, 파를 넣고
그리곤, 핏물인지 눈물인지
아른아른 보이지 않도록
고춧가루를 풀고, 마늘을 빻아 넣고
그리곤, 먹는다
식인종처럼 맛있게 먹는다
인육을 다 뜯어 먹고 난
무덤의 맛이 이렇지 않을까
미개한 희열이 그냥 반가운 것은
고상해져버린 살생의 식탁 위에서
사막에 내리는 보슬비 받아먹듯
그제야 얼큰해지는 목숨으로
나는 아직 배고프도록 살아 있다는 것이다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7419 | 떡보의 '팥 시루떡' 행진 | 신영 | 2009.10.29 | 36 |
| 7418 | 마르티넬라의 종 | 이월란 | 2009.10.29 | 66 |
| 7417 | 피카소 시집 | 이월란 | 2009.10.29 | 44 |
| 7416 | 이브의 사과 | 이월란 | 2009.10.29 | 27 |
| 7415 | 손끝에 달리는 詩 | 이월란 | 2009.10.29 | 24 |
| 7414 | 빈 의자 1 / 김영교 | 김영교 | 2009.10.29 | 22 |
| 7413 | 옹이 | 한길수 | 2009.10.29 | 44 |
| 7412 | 맹물로 가는 차 | 이월란 | 2010.10.29 | 77 |
| » | 보슬비 육개장 | 이월란 | 2010.10.29 | 78 |
| 7410 | 맛간 詩 | 이월란 | 2010.10.29 | 79 |
| 7409 | 제3자의 착각(견공시리즈 83) | 이월란 | 2010.10.29 | 75 |
| 7408 | 잠자는 가을(견공시리즈 82) | 이월란 | 2010.10.29 | 73 |
| 7407 | 잊혀진 벗을 노래하다 | 장정자 | 2009.10.28 | 60 |
| 7406 | 아버지 영전에 바칩니다 / 석정희 | 석정희 | 2009.10.28 | 65 |
| 7405 | * 시절같은 눔 | 구자애 | 2010.06.17 | 72 |
| 7404 | 아침 커피를 마시며 | 박정순 | 2009.10.26 | 51 |
| 7403 | 사진 한 폭의 행복 / 김영교 | 김영교 | 2011.08.05 | 49 |
| 7402 | 수목장(樹木葬)------------유타,덴버 | 이월란 | 2009.10.24 | 42 |
| 7401 | 인생에는 포즈가 없다 | 이월란 | 2009.10.24 | 57 |
| 7400 | 눈물 축제 | 이월란 | 2009.10.24 | 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