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피쉬

2010.04.13 17:19

이월란 조회 수:1




바벨피쉬



이월란(10/04/11)
  


나는
당신의 뇌 속을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
허기져 목마른 양식은 귀청에 머무는 언어래요
당신이 말을 할 때마다 배가 불러오죠
파고를 따라 높아지고 팽팽해지는 나의 몸은
듣는 귀마다 혀를 배설해요
소란한 땅이 떠 있는 시선마다
홍수 후 마른땅을 디디고 온, 비둘기가 떨어뜨리는
감람 잎사귀 한 두 장, 때론 부음처럼
때론 청첩처럼 날아들죠
입술 너머로 건설한 현란한 유적들은
족보 속의 삽화같은 신바람을 뚫고
뱃속 가득 뾰족한 탑을 쌓아요
신령한 문들은 꼭꼭 여며지고
구름을 만졌나요, 하늘을 찌를테에요, 찌르고 말테에요
철봉을 휘는 원반형의 쇳덩이처럼
무거워만지는 언어들도 가볍게만 쌓아요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바벨피쉬의 물똥처럼
부서져내리는 전설을 다시 쌓아올리며
바빌로니아의 벽돌을 찍어내죠
아름다운 타락을 꿈꾸죠
신비한 비극을 건설하죠
눈부신 혼돈을 이룩하죠
문명의 발상지들은 늘 생각보다 시시하잖아요
역청으로 쌓아올린 질긴 관념의 역사를
선택받지 못한 사어들의 애곡처럼, 나는 울기도 해요
회임할 수 없는 고대의 치욕을 벗어버리고
자, 어떤 부위의 언어든 물보라치는 뱃전이에요
나의 바다가 당신의 뇌파로 출렁이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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