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사랑받아야 할 사람

2010.09.22 09:47

이영숙 조회 수:75

   한 육 년 시각장애인 센터에 가끔씩 들러 함께했다.  그러다 최근에 와서 일주일에 이삼일씩 다닌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들의 삶은 어떠할까.  가끔 궁금했지만 혹시 상처라도 줄까 염려되어 아무런 말을 못하고 지냈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피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요즘 자주 만나다보니 많이 친근하고 편안해져 어떤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알아갈수록 내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그들의 삶의 모습이다.   부부가 모두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갈 지 궁금했다.  밥은 해 먹을 수 있을까?  청소는?  빨래는?  외출은?  모든 게 궁금했다.  그래도 반찬을 잘 해서 먹는다는 아내 장애인의 말.  칼을 쓰다 가끔씩 베이기도 하지만 곧잘 된장찌개를 해서 먹는단다.  가스 불을 붙여놓고 살짝 불어보면 불의 세기가 얼마정도인지 알 수 있다고 그녀의 남편은 말했다.  길을 갈 때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가 가장 위험하다며, 꼭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건넌다고 했다.  한번은 누군가가 곁에 오는 것을 느끼고 그 사람이 건널 때 함께 가리라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기다려도 그 사람이 길을 건너지 않았다.  나중에 느낌이 이상해서 만져보았더니 전신주였단다.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의 곁에 머무는 줄로 알고 전신주를 사람으로 착각하고 그 사람이 건너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했다.     가끔씩 길에서 시각장애인을 만났지만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 지 알지 못해서 그냥 지나친 적이 많았음을 느끼고 퍽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만나도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할지 알 수 없어 마음에 있어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다.  편안하게 물어보면 그들은 무엇이 필요한지 말을 하는데도 말이다.   기워야 할 것이 있다며 옷을 들고 오는 그들의 옷을 기워주며 난 행복하다.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때 얼마나 기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행복이다.  밥상을 차려놓고 손으로 짚어가며 “이건 밥이에요.  국이 여기 있어요.  이건 찌개예요.  김치가 이것이구요, 이건 고기예요.”라고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주고 그들이 먹는 것을 지켜봐 줄 때 난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기쁘다는 것을 남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커서 병이나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도 있고,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세상에 온 사람도 있다.  나중에 시력을 잃은 사람과는 이야기가 쉽다.  10살에 시각을 잃었다는 40대의 여자 분은 핸드백을 선물 받아서 나에게 가져와 물었다.  “색깔은 뭐예요? 무늬는 어떻게 되어있나요?”  그녀의 손을 잡고 짚어주며 자세히 알려주었다.  “바탕은 노란색이에요.  이곳에 줄무늬가 있구요.  여기는 이런 모양의 무늬도 들어있어요.”라고.  화장을 하고 와서 화운데이션 색깔이 자기에게 어울리느냐고 묻는다.  또 다른 색깔은 손에 들고 어느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으냐고 물어온다.  20대에 시력을 잃은 어떤 이는 혼자서 다림질도 한단다.  흔하지 않게 홀로서기가 아주 잘 훈련된 사람이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한 번도 세상을 보지 못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바다가 푸르다고 배운 한 자매는 바닷물자체가 파란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바닷물을 퍼 보아도 맑은 물과 같다는 나의 설명을 듣고 너무 신기하다고 말 한다.  왜 파란 바다가 퍼 보면 파랗지 않느냐고 묻는다.  유리라는 것은 분명히 막혀있는데도 건너편이 다 보인다는 게 사실이냐고, 막혀있는데 어떻게 건너편이 보이냐고 놀라서 묻는 아가씨.  네온사인이 뭐냐고 묻는데 나의 지식을 총 동원해서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영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 보일 때는 가슴이 아팠다.   시각장애인 중에도 비장애인고등학교에 그들과 함께 다니며 공부를 월등히 잘 하는 아이도 있다.  모든 공부를 점자로 한다.  점자를 잘 읽는 사람은 비시각장애인이 책을 읽는 것보다 놀라울 정도로 빨리 읽기도 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이마에 혹을 달고 다니거나 상처를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여기저기 부딪힌 자리다.  손으로 더듬고 케인으로 더듬어 다니지만, 그래도 순간적으로 부딪힌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문은 활짝 열어놓거나 아니면 꼭 닫아두어야 한다.  반쯤 열어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위험하다.  더듬어보고 열린 줄 알고 들어가다 부딪히기 십상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 아이가 상처를 입어 가엾은 마음에 안쓰러워했더니 "괜찮아요.  상처를 입을 때마다 나는 배워요.  오늘도 하나 배웠어요.  이곳을 조심해야겠구나 하구요."라며 태연히 말을 했다.  가슴에 쩌릿한 전율을 느꼈다.      점자를 배웠다.  점자를 읽기도 하고 점자 타자도 친다.  시각장애인을 돌보기 위해서 점자를 배워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  그들이 느끼는 느낌을 나도 같이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은 어떤 것일까.     사랑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매사에 잘 나가고, 성공가도로만 달리는 사람과 실패의 늪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서로 공감할 수 없어서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같은 눈높이로 그들을 만나고 싶다.  함께 웃기 위해서, 같이 노래하기 위해서다.  오래오래 그들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  그들은 오랫동안 사랑받아야 할 [*장(長)애(愛)인(人)]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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