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낱알 넷

2010.11.09 02:26

이주희 조회 수:80


낱알 넷 / 이주희


    우리는 이삭으로

    초록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팔에 팔을 얹어 거센 바람을 막아내고

    서로를 부둥켜안아 흩어지지 않았다

    한 귀퉁이가 좀 더 햇살을 받고

    또 한 모서리가 더 춥게 지냈으면 좀 어떤 가

    기꺼이 기댄 어깨들이 불볕을 이겨 내고

    마주 안은 가슴들이 뿌리를 지켜낸 것을

    이제는 가을걷이

    황금빛으로 여문 낱알들은 빈 하늘에 채워주고

    뼈 없는 낟알은 나무 밑에 묻어두자

    늙는 병도 비슷비슷 앓아

    듬성듬성 허물어질 울타리와

    구름 꽃처럼 피어나는 검버섯과

    연륜처럼 늘어가는 주름살과

    된서리처럼 내린 흰 머리카락위에

    따듯한 지혜의 모자를 씌워

    하나 둘 비워가는 황혼의 길을 바라보자

    알갱이도 쭉정이도

    헛것처럼 왔다가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

    -(소리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