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고 싶다

2011.05.14 10:36

이영숙 조회 수:43

  많은 아이들이 그렇다고 한다.  어릴 때 그런대로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며 성적이 떨어져 부모들의 가슴을 졸이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내 아이는 그렇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끝까지 잘 할 줄 알았다.  슬프게도 내 아이마저도 그 확률에 들어가고 말았다.  중학교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하던 아이가 고등학교, 특히 11학년 들어서면서 엄청나게 나를 실망시켰다.  결국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딸을 받아주겠다는 학교가 남들은 그만해도 괜찮은 학교라고 축하해줬다.  아이는 그게 아니라며 차라리 커뮤니티 칼리지 가서 열심을 내겠다고 했다.  한 번의 기회를 더 가져보겠단다.  11학년 때보다 조금, 아주 조금 좋아진 것 같은데 딸은 생각하기를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나보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좀 하는 듯 보이더니“엄마, 내가 나름대로 공부를 했으니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 상관하지 않고 나 자신이 만족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아요.”한다.  공부하지 않고 나쁜 성적이 나오면 후회되고 마음이 아파서 혼자서 운다고 했다.  그러나 열심히 하고 난 다음에는 성적이 나쁘게 나와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 후회가 없다나?  평가에 마음을 쓰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도록 열심을 내었다면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겠지.  그 말을 들으며 나 역시 마음이 뿌듯했다.  남의 평가보다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딸이 기특했다.
  그렇다.  세상을 그렇게 살아야 함이 옳은 듯하다.  많은 사람들은 남의 평가에 마음을 쓰느라 자신을 속이는 일도 있음이니.  딸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든든하다.  사회생활을 하며 누구나 한번쯤 느끼는 일이지 않을까.  남들은 저렇게 속이고, 또 거기에 속아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만 정직하게 살아 불이익을 받으니 억울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이지는 않으리라.  앞에서 볼 때는 좀 열심히 하고, 보이지 않는 뒤에서는 적당히 속이며 약간의 거짓말을 하고 살면 편하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살다가 거짓을 고하는 사람보다 불이익을 받아야 함이 때로는 슬프고 아프고 억울하다.  
  어릴 때 읽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지금까지 내 삶에 커다란 감명을 주며 살아가는 지표가 되고 있다.  비록 노인이 가지고 돌아온 것은 큰 고기의 뼈에 불과하여 그것이 돈이 되지도 못하고 남들의 인정을 받을 만도 못하지만 노인은 만족할 수 있었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을 누구보다 본인은 알고 있으니까.  그 고기가 얼마나 크고 값진 것이었는지 노인은 알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노력했는지 자신이 안다.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음을 누가 알 것인가.  남들의 평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으로, 자신이 최선을 다 했다는 만족감을 가지고 기뻐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었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쉽게 그러고도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혜롭게 느껴지는 세상이 안타깝다.  묵묵히, 좀은 바보처럼 일하며 누구에게보다 자신에게 인정받는 것을 최고로 알고 사는 사람이 그립다.  적당히 거짓말해도 리더가 모르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거짓말로 보고하는 사람이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한 사람보다 잘 된 것이라 인정하는 리더.  살필 줄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가끔은 그들을 따라 나도 좀 적당히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  그렇지 못한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끼면서도 따라가지 못하는 우둔함.  때로는 혼란스럽다.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지.  
  그런 나에게 딸의 말이 용기를 주었다.  성적에 상관없이 내가 최선을 다했으니 아쉬움은 없다는 약간은 바보 같은 딸의 말에.  커닝을 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최선인줄 아는 이 세상에서 자기가 최선을 다했으니,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알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는 딸이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공부하지 않았는데 운이 좋아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은 편안하지 않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해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더라도 최선을 다했음을 알고 있으니 만족할 수 있다면 옳은 일이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 실제 성적이 어떠하든, 보고한 내용이 부실하다고 야단을 맞든 무슨 상관일까.  오직 신과 내가 알고 있다.  그것이 정말 최선이었는지.  할 수 있는 능력의 전부였는지.  내가 최선을 다했고, 정직하게 보고 하여 신 앞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것이 전부인 것을.  진정으로 열심을 내었다면 나중에라도 후회가 없을 게다.  가끔 한번쯤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중얼거릴 수 있는 그런 삶이고 싶다.
  “잘 했어.  누가 뭐라 해도 넌 정말 최선을 다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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