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판타지

2011.05.17 07:42

김수영 조회 수:45

아리랑 판타지 –                                                                         金秀映      잘 자라고 있는 큰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잘못 뿌리를 건드려 죽일 수도 있고 잘 심었다고 해서 옮긴 곳에서 다시 살아나  잘 자란다는 보장이 없다. 옮긴 후 물을 적당이 잘 주어야 하고 비료도 주고 햇빛도 적당히 내려 쫴야 하고 땅속 깊이 뿌리가 내려 영양분을 흡수해서 뿌리가 잘 뻗어 자리 잡을 때까지 정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미국에 이민 온 지도 올해 30년이 되었다. 한국에서 모든 뿌리를 내려 살다가 이역만리 머나먼 이곳에 와서 다시 뿌리를 내리면서 잘 살아가기가 처음에는 적응이 잘되지 않아서 참 힘이 들었다.      언어, 문화, 자라온 환경이 달라 적응을 못해 역 이민가는 가정이 종종 있는 사실을 신문지상을 통해서 알았을 때 역이민 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옮겨 심은 나무처럼 처음이 중요하듯이 이민 생활도 첫발을 잘 디뎌야 하는데 이민을 먼저 와서 경험을 쌓은 지인들이나 친척들이나 친구가 있다면 좋은 경험담을 들려주고 충고와 도움을 주어 이민 생활을 무난히 해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친척과 친구들의 조언으로 처음엔 좋은 직장을 가져서 아무 걱정도 없이 이민생활을 재미있게 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중 적성이 맞지 않는다고 아무와도 의논도 없이 불쑥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고 투자했다가 재미를 못 보자 좋은 직장을 다시 구해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인종 전시장 같았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해 상관으로부터 칭찬도 듣고 동료와  잘 어울려 서로 협력하며 일을 잘 처리해 나갈 수가 있었다.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필리핀, 캄보디아 , 베트남, 아프리카, 인도 등 여러 민족이 어울려 모두 열심히 일해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직장 가는 것이 즐겁고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서로 협력하며 능률적으로 일할 수 가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일을 하다가 넘어져 허리를 다쳐 고통 중에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의사께서 무리한 일을 하면 안 되고 가벼운 일을 해야 한다는 의사진단서를 써 주어 나는 상관에게 진단서를 제출했더니 아주 가벼운 일만 하도록 상관이 배려를 해 주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필리핀 독신 동료가 있었는데 나 때문에 내가 할 일 까지 자기가 다 맡아서 해야 한다며 불평하기 시작하면서 나를 험담하기 시작했고 상관에게도 내가 꾀병한다며 고자질을 해 나를 골탕먹이고 있던 어느날  하루였다.  직장안에 있는 광고판에 나의 이목을 끄는 광고가  큼직하게 나붙어 있었다.     “다민족 문화 잔치(Ethnic Diversified Culture Festival)를 1982년 5월 4일 개최하니 자기 나라의 고유문화를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서로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상호협력과 상호공존의 번영을 누리어 직장 분위기를 화해와 평화를 도모하는데 목적이 있음”      문화잔치’라 나에겐 다소 생소하게 들려오는 말이지만 나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고 생활습관이 달라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생겨 분쟁이 일어날 때가  종종 있어서 직장당국에서는  중재자를 내세워 분쟁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일의 능률을 올리고 효과적으로 하루의 일과를 잘 처리하려먼 일터의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야 하므로 직장 당국에서 개발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나에겐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출구가 어쩌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이 기회에 코리아도 알릴 겸 절호의 기회란 생각이 들어서 한번 참여하고 싶은 생각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막상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았으나 무슨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나는 아리랑 민요와 함께 한국 춤을 보여줌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리랑 민요의 곡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된 바가 있다.  아리랑 민요는 우리나라 서민의 고유한 정서와 애환을 그린 민요로서 노랫가락이 구슬프고 구성지고  아름다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잔잔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쉬운 곡이라 내가 연습만 하면 얼마든지 대중 앞에서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래만 부르기에는 너무 밋밋해서 노래와 함께 한복을 입고 나와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추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한 번도 춤을 배운 적도 없고  대중앞에서 추워 본 적이 없는 내가 가능한  일일까 하고 걱정이 앞섰다.      춤이란 것이 잘 출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로 좋겠지만  못 추어도 흥이 돋구어지면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추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전문 춤꾼처럼 춤을 못 추어도 아리랑 노래에 장단 맞추어 자연스레 그냥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기로 마음먹고 직장 갔다 와서 노래연습에 몰두했다.      원래 음치여서 노래 듣는 것은 무척 좋아하지만 노래 부르는 것은 싫어했다. 그래서 어떤 모임 에 가서도 노래 부르라고 청이 들어오면 나는 당황하고 긴장이 되어 얼굴부터 빨개진다.      이런 내가 ‘문화잔치’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기적과도 같은 결단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직장 분위기가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듯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필리핀 독신 남성이 나에게 괜히 시비를 걸어 내가 자기를 ‘인종차별’ 한다고  직장당국에 고발을 해 놓고 나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인종차별 한 사실이 없으니 무죄로 밝혀 지겠지만 판결이 날 때까지 불려다녀야 하니 성가시기 때문이다. 이 ‘문화잔치’가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고 이해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면 내가 참여함으로 필리핀 남자와 다시 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번 잘 해보리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용기가  솟아났다.      나는 참여 신청을 해 놓고 공연날짜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노래자랑이라  긴장이 되어 잠이 잘 오지가 않았다. 춤도 혼자 아리랑을 불러가며 거울을 보면서 연습을 하는 데 잘 되지가 않았다. 관객이 한국사람들 같으면 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엉터리 춤이란 것을 알고 보면서 포복 졸도를 하겠지만 모두 외국사람들 앞에서 추는 한국 춤이라 잘 못 추어도 잘 추는 줄 알고 박수를 보낼 것이기에 별로 걱정은 안 되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값이면 잘 추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연습은 계속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가  않았다.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요는 온 힘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공연날짜 까지 매일 집에서 저녁에 연습했다.      드디어 공연날짜가 다가왔다. 직장에 있는 식당을 임시로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일과가  다 끝나고 저녁에 공연이 있었다. 나는 아무도 초청을 하지 않고 가족들만 오게 했다.      10여 개국이 넘는 다민족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나는 관심을 두고 관람을 할려고 하지만 내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눈을 뜨고 무대를 향해 관람하고 있지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가슴만 뛰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모두가 직장 동료이고 그들의 가족들도 썪여 있었다. 한국 사람이라고는 다행하게도 우리 가족 뿐이었다. 자녀들에게 내가 아리랑 민요와 한국 춤을 춘다고 하니    ‘어머님, 농담하시지 마세요. 누구를 웃기시려고 그 노래 솜씨와 춤 솜씨를 자랑하시려고 하십니까?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머님께서 하도 구경하러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만 진짜인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자식들마저 호응을 안해주고  농담으로 여기니 과히 내 노래솜씨와 춤솜씨가 어떠하다는 것짐작이 갔다.  믿건 말건 멍석은 깔렸으니 내 차례가 오면 한바탕 그동안 닦아온 기량을 마음껏 펼쳐야 한다.      드디어 내 공연 차례가 왔다. 두 근 반 서 근 반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무대 위로 가서 이름과  출생국을 밝히고 아리랑 민요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하고 곁들여 한국 춤도 춘다고 인사를 했다. 딸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미장원에서 머리도 추어올려 주어서 한복에 잘 어울리는 머리 모양으로 다듬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어깨춤울 덩실덩실 추기 시작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노래도 연습한 것 만큼 나오지도 않고 춤도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려 유연한 춤을 출 수가 없었다. 나 자신에 실망이 되었지만 끝까지 좋은 결과를 걷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앙코르를 부르며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외의 반응에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망신을 한 줄 알고 나 자신에 실망을 하고 있었는데……. 주저하고  있으니까 나중엔 기립 박수갈채가 쏟아지면서 앙코르를 계속 불렀다. 나는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면서 이번엔 정말 잘 불러보리라 생각하고 떨지 않고 침착하게 또 한 번 불렀더니 장내가 터지라 손뼉을 쳤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만 연발하면서 인사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로 다가와서 ‘정말 훌륭했어요.  노래도 춤도 아주 멋졌어요. 한복도 아름답고요. 한국에 그렇게 아름다운 민요가 있는 줄 몰랐어요,’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며칠 휴가를 내어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직장에 나갔을 때 분위기가 확 달라져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필리핀 남자가 찾아와서 깍듯이 악수를 청하면서 수고했다고 칭찬을 했다. 아리랑 민요가 곡조가 너무 아름다워 자기 조국이 생각났다며 아리랑 민요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나를 괴롭혀서 죄송하다며 ‘인종차별’ 고발해둔 건은 다 취소할 테니 앞으로 서로 친하게 지내자며 환하게 밝은 웃음을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긴장이 확 풀리고 직장 동료와 잘 어울리며 일할 수 있었고 다소나마 한국을 알릴 수 있어 서 여간 기쁘지가 않았다.     휴식 시간마다 휴게실에서는 한국의 아리랑 민요가 은은히 흘러나왔다. 배우겠다는 사람이 한 사람 두 사람 늘어나면서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날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 병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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