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강

2011.07.16 17:35

김수영 조회 수:48 추천:1

돌아오지 않는 강                                                金秀映     강물은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도 세월과 함께 흘러가 버린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강처럼 말없이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누구나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 보면 마음속에 잊히지 않는 그림 한 장쯤은 가지고 있다. 그 그림이 아름다운 그림이던 슬픈 그림이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옛 추억을 더듬께 된다. 나에겐 슬픈 그림이 지워지지 않고 내 마음의 벽에 향상 걸려 있다. 나는 이 그림이 세월의 강물과 함께 나에게서 떠내려가기를 바라지만 나이가 더해가도 '마지막 잎새'처럼 내 마음의 벽에 걸려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준비를 하던 중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의 그림이다. 폐 침윤 정도의 증상이 가벼웠는데도 회복이 늦어지고 있어서 원장 박사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 했다. 기관지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나를 기관지 촬영을 위해 부평에 있는 미 육군병원으로 보냈다..     그때만 해도 한국 요양원 의료계엔 기관지 촬영전문 병원이 없을 때였다. 요즈음처럼 자기장 이용, 초현대식 인체 단층 영상 촬영하는 MRI, CT 스캔, 초음파, 업그레이드된 X- 레이 등등 최첨단 기술이나 의료기기가 하나도 개발되지 않았던 반세기 전 일이었다.     기관지 촬영과정이 그토록 원시적인 방법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줄 알았다면 나는 한사코 거절하며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군의관은 나에게 기관지 촬영을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영어해득이 가능했던 게 불찰이었을까. 마음속으로 신뢰가 가지 않아 불안해 졌다..     나는 기관지 촬영하는 기계가 X-ray처럼 다 찍어 주는 자동인 줄 알았다.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앞서 가는 선진국이라 기관지 촬영 의료기계쯤은 젊음을 걸고 목숨을 걸고 파병 나온 군 병원에서는 응당 배치되고 사용되고 있는 줄 알았다. 나는 선뜻 내키지가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기관지 촬영에 응할 것인지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독촉하는 바람에 어떨떨 결에 그냥 응하겠다고 대답했다.     마취주사도 없이 정신이 말짱한 가운데 기관지 한쪽 기도 속에다 튜브를 꽂고 콧구멍을 통해 무슨 흰 가루약을 물에 타 섞은 것을 집어넣었다. 갑자기 숨 쉬는 기관지 기도가 막혀 숨이 멎어 죽는 줄 알았고 생으로 다량 투입하니 얼마나 아픈지 이것이야말로 완전히 생사람 잡는 고통이었다.     촬영이 다 끝나 이제는 살았다 싶었는데 환자를 거꾸로 천정에다 매어 달아 인위적으로 기관지에 들어간 흰 가루 용해액을 밖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당장 뱉어 내야 한다며 기침을 계속하여 액체를 다 토해내라고 했다. 있는 힘을 다 하자니 진땀이 나고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용을 써 뱉고 뱉어 보다가 그 액체가 다 빠져나오기 전에 나는 그만 기진해버렸다.     학교 다닐 때 남학생들이 벌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그 꼴이 되어 거꾸로 천정에다 메어 달려 있으니 피가 역류하여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오락가락 혼미해 졌다.     007 첩보영화를 보았을 때 간첩을 잡아 고문하는 장면이 생각나면서 갑자기 공포에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 머리 카락이 쭈빗 섰다.     나는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절망적인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나의 극한 상황 속에서 킬리만자로의 산정에서 눈 속에 얼어 죽어가는 표범이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를 엄습해 왔다.     사람 살려라’ 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자 천장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기관지에 들어간 이물질이 다 빠져나오질 않아 숨이 답답하고  기침이 나고 그 불쾌지수는 엄청났다.     병원에 되돌아왔을 때는 열이 섭씨 42도가 넘으면서 춥고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폐렴이었다. 완전 혼수상태에서 의식마저 혼미해졌다. 담이 얼마나 끓는지 기침하다가 담이 기관지 기도를 막아 숨이 막혀 죽을 뻔한 일이 되풀이 되었다.     사경에 놓여 있을 때 병원에서는 비상이 걸려 의사와 간호사가 총동원되어 <사람 살리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며 교대로 치료해 주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 결과 겨우 살아나 이렇게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을 먼 이국땅 미국에서 추억할 수 있다니 이것도 은혜가 아닐까. 내 체력도 문제가 없잖아, 있었지만 점진적 투약의 접근을 시도도 하지 않은 군 병원의 그 군의관, 지금쯤 경험도 많이 쌓아 노련한 의사가 되어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겠지 회상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어 현대의 의학기술이 제공하는 모든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맙고 축복인지 과거와 비교하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늘 기관지 촬영을 하려고 CT Scan을 찍으러 병원에 왔다. 혈관에다 무슨 주사약을 주사 놓고 굴속에 들어가듯이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누웠다. 기계속으로 들어가면서 엑스레이 기사가 지시하는 데로 숨쉬기를 조절하며 사진을 찍었다. 미국 와서 기관지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세기 전 원시적인 방법으로 사진 찍다가 죽도록 고생한 과거가 생각나면서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우리가 매일 공짜로 마시는 공기 고마운 줄 모르면서 마시고 산다. 나도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없었다면 현대 의술에 감사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 갈것이다. 나는 뼈저린 아픈 경험이 있어 그때를 생각하면 이 촬영기기를 발명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눈부시도록 괄목할 만하게 발전한 현대의술과 의료기기 발명을 생각하면 감사가 절로 난다.     나는 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자주 가는 공원에 들러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한가히 노니는 오리 떼를 바라보았다. 완쾌 후 집에 돌아와서 쉬고 있을 때의 추억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나를 좋아하던 한 고향 남자친구로부터 군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에 꼭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실은 이 남학생은 고등학교 다닐 때 폐결핵이 발병되어 휴학하고 집에서 요양하면서 지내던 중 교회 학생부에서 만나게 된 사이였다. 병으로 고생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한창 젊은 나이에 아깝다는 마음이 들면서 도울 길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었다.     넉넉한 집안의 장남으로 치료방법을 몰라 집에서만 요양하고 있었다. 큰 오빠께 말씀드려 마산 요양소에 입원을 알선해 주었고 원장과 큰오빠는 친구 사이였다.  2년 만에 완치되어 퇴원한 후 대학교에 복학하고 공부를 계속하던 중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남자 친구는 늘 고맙다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인천 요양소에서 죽다가 살아난 후 내가 이렇게 병으로 고생하게 된 원인은 그 남학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들면서 그 남학생을 의식적으로 멀리했다. 그 남자 친구로부터 병이 전염되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혼자 단정을 하고 그를 만나기조차 싫어 졌다.           그 남자친구는 군 입대날짜가 다가오자 다급해진 마음에 나를 사랑한다는 고백까지 하면서 꼭 한 번만 만나달라고 했다. 며칠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고 간곡한 부탁을 해왔다. 마지막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을 믿는다며 기다리겠다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애원이었다. 만날 날짜가 다가왔지만 내 마음은 부평 군 병원 불쾌한 촬영사건과 겹치며 나의 와병 원인은 전적으로 그 남자 친구 때문이라고 그를 계속 원망하면서 그를 향한 마음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당신을 돕다가 이 지경이 됐는데..., X-Ray를 들고 가야 하는 유학의 꿈이 좌절된 나의 현실, 요양원 생활, 당신 살리려다가 내가 이 꼬락서니가 된 것 당신 알기나 해'” 내 안에 있는 짐승의 소리였다.      피 끓는 한 젊은이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데이트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그의 기대는 부질없는 바람 한 줌이었다. 숱한 시간이 흘렀다. 그 후 고향 친구로 부터 그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가 군에 입대하여 군대생활을 하던 중 일선 지구 근무 중 지레를 잘못 밟아 지레가 폭발하는 바람에 장렬하게  산화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철없던 시절이었다. 한번 만나만 주었어도 좋을 뻔했는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싶다. 한 번 만나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이 지구상에서는 다시 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후회해 보아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세월이 되고 말았다.     영화 '돌아오지않는 강(River of  No Return)'처럼 강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내려가고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직도 그림 한 장이 내 마음의 벽에 풍경(風警)처럼 댕그렁 매달려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댕그렁 댕그렁 은은히 울려 퍼지면서 내 마음에 파문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