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2013.07.29 04:24

정국희 조회 수:0


헬멧


가게 문 열자마자
헬멧 쓰고 급히 들어온 여자
행동반경이 마을 어귀가 고작인
우리 동네 감초인 여자
가끔씩 성한 사람보다 더 성한 말을 해서
혀를 내둘리게 하는 실성한 여자가
어느 쓰레기통 뒤졌는지
깨진 헬멧 쓰고 들어 왔다
메주 뜬 냄새를 휘날리며
이쪽저쪽 바쁘게 훓고는
푸념인지 제 소린지
듣던 중 느닷없는 소릴 뱉고 나갔다
번득이는 삶의 욕망 다 빠져나간 눈매에
바람에 무두질된 머리카락
맨땅에 눞혀도 까탈 없이 잠들 것 같은
허우대만 멀쩡한 강정같이 속 빈 몸이
저리 부지런하고 빠름은
평생 그리 살아왔음이라
여자는 왜 나이 들면 정신을 놓는 걸까
어쩌자고 저리 쉽게 끈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걸까
입에 것도 빼내 넣어준 목숨 같은 자식에게
부르면 들리는 거리에서 종종걸음 치던 남편에게
사줘야 할 무엇이 생각난 건지
바람같이 들어와서 깜박 잊고 나가는
햇빛 반짝이는 저 헬멧에 대고
난, 차마
소금을 뿌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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