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순 이

2006.02.10 20:29

정해정 조회 수:172 추천:21

"엄... 엄마! 빨... 빨리. 나와봐 빨리."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엄마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얼른 현관으로 달려갔지요. 시몬의 손에는 뜻 밖에도 주먹만한, 때가 낀 잿빛 강아지가 초점 없는 눈으로 멀 건히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얼른 봐도 병색이 짙은 진돗개 새끼네요.
  "웬???"
  "엄... 엄마. 점... 점순이야. 점순이. 이 이마에 점 좀 봐."
  시몬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의 땀을 한 손으로 훔치며 말해요.
  "내가 공원으로 막 들어가는데 잔디밭에서 요놈이 쓰러져 있잖아. 이마에 점을 보고 내가 확인하려고 가만히 점순아- 하고 불렀어, 그랬더니 꼬리를 흔들잖아. 엄마."
  시몬은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숨차게 설명합니다.
  "얘가 토니네 점순이란 말야?" 얘네 집이 글렌데일 이라 했지? 도대체 여기는 웬일이래? 너 토니네 전화번호 아니?" 엄마도 급하게 말했습니다.
  "몰라. 근데 집은 알아. 학교 앞이니까."
   엄마는 자동차 열쇠를 챙기고 급히 프리웨이를 달리면서 말합니다.
  "이 작은 강아지가 어떻게 글렌데일 에서 산타모니카까지 왔을까? 강아지를 잃어버린 토니와 토니 아빠는 얼마나 애가 탈까. 너도 어쩌다 이민을 와서 이 고생이냐? 고향에서 사랑 받고 살지..."
  3학년인 시몬의 친구 토니의 얘기는 시몬에게 자주 들어서 엄마는 압니다.
  토니네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고 토니는 아빠랑 함께 살고 있는 것도, 아빠는 토니가 사달라는 것을 척척 사준다는 것도, 베버리쎈터에서 하얀색 강아지를 팔 백 불에 샀다는 것도, 이마에 점이 있어 이름이 점순이라고 웃기는 것도  강아지를 좋아하는 시몬이 부러워하는 것도 다 압니다.
  시몬의 무릎에 있는 점순이는 죽은 듯 숨도 쉬지 않은 것처럼 축 처져 있습니다.
  강아지를 들고 토니네 현관 앞에 섰지요. 집 잃은 아이를 찾아 데리고 온 것 같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조심히 노크를 했어요. 한참만에 문을 열어준 사람은 토니 아빠였습니다. 토니 아빠는 흠칫 놀라는 것 같더니 금방 표정을 바꾸고 우리를 안내를 해요.
  테이블 위에는 빈 술병에, 휴지조각에, 담배꽁초에 지저분한 것을 한 손으로 죽 밀어붙이더니 일회용 컵에다가 오렌지 쥬스  세 잔을 두 손에 모두고 나와요 "여자가 없는 집이라 꼴이 말이 아니네요. 토니 아빠는 사람 좋아 보이는 푸짐한 몸집에 약간 튀어나온 눈이 두껍게 쌍꺼풀이 진 대 머리였습니다. 귀옆으로 1:9로 가르마를 타고 몇 오라기 머리카락을 무스를 발라 이마를 가렸구요. 점순이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아하! 이거요? 백화점에 쇼핑 갔다가 토니가 하도 졸라서 술 한잔 먹은 셈치고 사줬지요."
  "그런데 어찌나 손이 많이 가는지 카펫에 똥오줌을 여기저기 싸니까 토니란 놈도 첨에는 장난감처럼 주무르다 싫어할 수 밖 에 요. 거기다가 엄살은 어찌나 많은지 한 대 때리면 곧 죽는시늉을 하며 오줌을 질질 싸며 구석에 박혀 있지 뭡니까? 손만 들어도 죽는시늉을 한다니 까요. 그래서 아예 베란다에 묶어놓아 버렸어요."
  베란다 쪽을 보니 시멘트가 뜨거운 햇볕에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혼자말로 중얼거립니다.
  '세상에!. 캘리포니아 불볕은 계란 후라이도 한다는데, 저 어린것이 살아  있는 것도 용하다.'
  엄마가 궁금했던 것을 물었습니다.
  "우리 집은 산타모니칸데 어떻게 거기까지...?"
  "아. 그거요? 허허. 누구를 줘도 하루만에 다시 돌아오고, 다시 오고 하니까 친구가 그러데요. 그럴 것 없이 아예 먼 곳 에 갔다 버리라구요. 자기가 명이 길면 시에서 가져가 새 주인을 찾을 것이고 명이 짧으면 할 수 없고..."
  그래서 마침 토니는 할머니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고, 오늘 새벽에  산타모니카에 볼일이 있어 간 김에 거기다 버리고 왔지요."
  "고놈. 나하고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는지... 어이. 재수 없어......허허허...
  엄마는 점순이를 다시 안고 서둘러 열쇠를 챙겼어요.

  점순 이가 우리 집 에서 한 식구로 지낸 것이 15년이 됐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모두 정성을 쏟았지요.
  일주일에 두 번 목욕을 시키고, 병원을 들락거렸으며 엄마는 진돗개를 찾아 인터넷을 들어가 보기도 했구요.
  진돗개라 밖에서 살 놈을 어렸을 때 병치레를 많이 해서 크게 자라지가 않아 그냥 집안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점순이는 자기가 개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사는 듯 사람 같은 개 였어요. 전화벨이 울리면 엄마를 쳐다봤고, 밤늦도록 책상 앞에서 일하는 엄마 무릎에 앉기를 좋아했어요. 몇 번의 지진이 났을 때도 미리 알고 식구들이 자는 이불을 잡아당겼지요.
점순이 는 시몬 이를 특별히 좋아해서 시몬이 귀가하는 시간을 귀신같이 알고 기다리는가 하면 수많은 자동차 알람도 시몬 것을 알아차리고 좋아라 두발로 서서 시몬의 얼굴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었답니다.

  점순 이도 평균 수명을 넘기고, 뒷다리가 아파 며칠을 끌고 다니는가 하면 이도 빠지고 콧등에 물기도 마르고 잠잘 때 드르렁 코골이도 합니다.
  점순 이를 안고 가면 수의사는 고만 포기하란 듯 ''너무 늙어서.."라고 해서 우리는 속 상해했어요.
  늦가을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날 밤. 시몬은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바람소린가 했더니 이어 "깨갱, 깽깽..." 점순이의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려 놀라 뛰어나가 보니 시커먼 그림자가 휙 지나가고 그 자리에는 히끄므래한 베개 같은 것이 널부러저 있었어요.
  도둑이 든 것이었지요. 점순이는 목숨을 걸고 짖었고, 도둑의 뒷다리를 물었는지 도둑의 발에 채어 입에 피묻은 헝겊조각을 문체 허망하게도 숨을 거두었습니다.
  강아지를 안고 우는 시몬을 달래느라 엄마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답니다.

  우리 곁을 떠난 점순이가 너무 섭섭해 슬피 울면서 뒤뜰 살구나무 아래 점순 이의 자리를 만들고 뉘였습니다.
  "점순아. 네가 오래 동안 우리식구에게 사랑을 주었듯이 이젠 이 살구나무에 사랑을 주렴. 더 예쁜 꽃. 더 달고 큰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려무나.
점순아 나쁜 친구도, 나쁜 주인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살거라.
점순아 우리 나중에 만나자. 잘 자!"
  지금은 의젓한 청년이 된 시몬이 노을을 등지고 서 있습니다.
  노을 탓인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어릴 적 점순 이를 안고 헐레벌떡 뛰어왔을 때처럼.
노을 속으로 갈매기 한 마리가 산타모니카 바다 쪽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점순 이 의 넋을 싣고 멀리멀리 날아가고 있듯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79 군고구마 장태숙 2006.02.11 104
1678 천상바라기 유성룡 2006.02.11 92
1677 향수 유은자 2006.02.11 251
1676 타는 2월, 애나하임 산 안경라 2006.02.11 88
1675 보름달 유은자 2006.02.11 75
1674 진눈개비 유은자 2006.02.11 139
1673 오늘 살기 정해정 2006.02.10 526
1672 우리는 돌이에요 정해정 2006.02.10 153
1671 재미있는 전쟁 정해정 2006.02.10 258
» 점 순 이 정해정 2006.02.10 172
1669 <영혼의 고향> -- 내가 동화를 선택한 이유 -- 정해정 2006.02.10 169
1668 파리 정해정 2006.02.10 692
1667 고맙다, 봄아 정해정 2006.02.10 116
1666 세월은 파도처럼 정해정 2009.07.26 130
1665 시지프스의 독백 손홍집 2006.04.07 71
1664 사랑이란 file 박상희 2006.04.25 35
1663 봄인데 오연희 2006.02.08 104
1662 어느 시인의 첫 시집 오연희 2006.02.08 70
1661 사랑을 했을까? 고대진 2006.02.08 53
1660 세월속에서 강성재 2006.02.10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