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배는 어디서 잠들까
2008.12.10 05:55
두 척 어선을 가진 적 있었다
창창한 바다로 나간 배 기다리며
만선 꿈으로 밤잠 설치던 날들
바다는 쉽게 답주지 않았지만
어둠 속 달려간 손놀림만큼
됫박 동냥 받아오던 어느 날
한밤중 걸려온 한 통 전화에 덜컥
수화기 속에 물이 넘쳐흘렀다
바다에 침몰했다, 바다에 침몰했다
고기 잡으러 떠난 배가 거짓말처럼
칠일 장례 삼세번이나 지났을 무렵
만선의 꿈도 인양선에 질질 끌려오고
퉁퉁 불린 몸으로 항구에 닿았다
어디선가 부검으로 뼈만 앙상했을 배
선원은 또 다른 어선 타고 떠났지만
나는 눈물 흘려 슬퍼해주지 못했다
바다는 돛대 흔드는 유령선 띄우고
내게 다가와 뭐라고 소곤거렸다
공동묘지 비석처럼 줄 서 있는
모리타니 항구에 삼백여 죽은 배
망치질 소리 휩싸이는 인도 알랭
지역 사람들은 배의 유령지라 부르고
값싼 노동자 줄줄이 죽어 나오는 무덤
뼈 발라내지 못한 널브러진 배의 시체
어둠속 무덤에서 일어서는 유령선
불빛 가린 한 척의 배가 또 다가온다
침몰해서 건진 배는 어디로 갔을까
스멀거리며 떠오르는 지우고 싶은 기억
처음 컴퓨터 시작했던 그 떨리던 흥분
무수한 배 띄워놓던 형형색색 인터넷
자살해도 모르는 척 유혹하는 바다
채팅 방 앉아 늙어가는 아이디 보며
가물거리며 침침해지는 웹페이지 주소
어디선가 유령선으로 떠도는 아바타
녹슬어가는 배들 엮인 모니터 선착장
배 몸 닦아내는 염장이 인터넷 바다
바다가 내게 해 주려던 말은 뭐였을까
계간 <시작>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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