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성전

2010.06.11 02:43

구자애 조회 수:70

그믐밤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 한자락 뉠 곳 찾아 헤매었던 것 같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이 집요하게 나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숨을 몰아 쉬어야 할 것 같아 고개를 드는데
어딘가에서 아스라이 한 줄기 빛이 나를 자꾸만 끌어 당겼습니다
그 산중에 집이 있다는 것이
누군가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 기이해서
무서움도 외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막무가내로 어둠을 쳐내며 걸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에 홀린 듯 넋나간 발이 가다 멈춘 곳은
인간의 집이 아닌 아름드리 느티나무 앞이었습니다
나무도 오래살다 보니 환기통 하나 정도는 필요했던가 봅니다
엉치뼈 쯤에 큼지막한 구멍하나 만들어 성전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깨진 보시기에 오롯이 담겨진 촛불이
그 구멍속에서 나를 불러들였던 것이었습니다
한때는 나보다 더 캄캄했을 뿌리가
몸 한 쪽 귀퉁이 도려내고
그 빈자리로 빛을 들여
눈뜨고도 보지못하는 나를 길에 세우셨습니다
너무도 거룩한 기도를 보는 순간, 나는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순간을 통채로 갈아엎게 만든 다마스커스,
그 극진한 빛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우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소리내어 우는 일 밖엔 없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259 개나리꽃 길 정찬열 2007.03.26 50
3258 건망증도 병인가 정해정 2007.03.26 45
3257 섬섬옥수 정해정 2007.03.26 52
3256 황홀한 그 작은 공간 정해정 2007.03.26 37
3255 빈방-------------------------시집2 이월란 2008.08.02 48
3254 작은 거인을 만나는 기쁨/축시 김영교 2009.04.19 41
» 느티나무 성전 구자애 2010.06.11 70
3252 음성지문 (미주문학 여름호) 김영교 2007.03.26 47
3251 십자가 목걸이 오영근 2007.03.26 47
3250 어느 탈북자의 낮잠 오영근 2007.03.26 49
3249 아내에게 이승하 2007.04.07 54
3248 여백 채우기 박성춘 2009.04.29 43
3247 말의 잔치 박정순 2009.06.25 49
3246 가시 하나 되어 조만연.조옥동 2007.05.26 43
3245 배송이 2007.03.24 49
3244 그날. 그 무서움 정해정 2007.03.24 44
3243 국화에 어린 추억 정해정 2007.03.24 45
3242 탯줄 정해정 2007.03.24 46
3241 Song of Heaven 유봉희 2007.04.05 46
3240 동태 구자애 2007.04.05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