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우리 엄마 (I)
2007.08.31 05:35
요즘 신문을 보면 한국은 물론, 미국도 중국산 제품들 땜에 난리다. 먹거리뿐 아니라 일상 용품
들에, 가장 정직하게 만들어야 할 아이들 장난감, 갓난 장이 턱받이까지도 문제가 되어 리콜 된
다는 소식은 위기감 마저 느끼게 한다. 신문이나 TV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대니 나도 언제부터인
가 먹거리를 살 때는 꼭 중국산인가 확인하고 사는 버릇이 생겼다. 눈에 띄게 made in China라
고 써 있으면 에그머니 던져 버리면 되는데, 어떤 제품은 아무리 돌려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
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많다. 미국의 어떤 여성이 1년 동안 실험을 해 보았는
데 무엇보다 일상 용품 구입에서 중국산을 피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고 다. 어느새 온 세
계의 공장이 되어버린 중국 제품을 피해갈 수는 없고 사용하자니 불안하고.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며칠 전 한국 마켓에서 검정깨를 한 봉지 샀다. 봉지를 손에 들고 요리조리 아무리 살펴봐도 어
느 나라 제품이라는 표식이 없지만 ‘xx 장터’ 라는 구수한 시골 마을 이름에 마음이 끌려 한
국산이 틀림없다는 믿음으로 샀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중에그것을 씻으니 검은 물이 나왔
다. 예전에도 씻을 때 마다 검은 물이 나오더라 싶어서 (옛날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씻었
다.) 이번에도 두어 번 헹구고 말려고 했는데. 갑자기 중국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기사까
지 읽은 터라 무심히 넘어갈 수가 없어 또 씻어보았다. 그랬더니 씻을 때마다 똑 같은 농도의
검은 물이 나온다. 염색한 중국 깨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설마 ‘xx 장터’인데 싶기도 하고.
마음이 갈팡질팡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검정 깨를 씻으니까 자꾸만 검은 물이 나오는데
본래 검은 물이 나오는거냐고. 엄마는 그렇지 않은데--- 미심쩍어 하셨다.
" 엄마, 검은 깨니까 검은 물이 나오는 거 아니야?"
" 야~가. 뭐라카노. 그라몬 흰둥이가 목욕하몬 흰물 나오고 노란둥이 목욕하몬 노란물 나
오고 껌둥이가 목욕하몬 꺼~먼 물 나오나?"
내가 그만 뒤집어졌다.
울엄마는 이렇게 단칼에 상대방을 제압해버리는 영리한 할머니다. 올해 82세이신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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