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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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6.11.07 13:35

두 시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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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시인의 모습



                                                                                               홍인숙(Grace)
    

  
어느 새 성큼 다가선 여름. 하얀 꽃잎들이 미풍에 흰눈처럼 날린 과일나무에는 꽃잎이 머물던 자리마다 풋풋한 열매들이 맺혀 있다. 거리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해맑은 미소로 스쳐 가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이렇게 계절은 누가 일깨워 주지 않아도 스스로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다 한순간 활짝 가슴을 펴고 나타나는 것이다. 때론 희망을, 때론 인내를, 때론 가슴 설레는 낭만을 우리에게 선사하며 사계절을 계절마다 다른 감동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도서관에 들러보니 평소에 좋아하던 시인의 신간 시집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빌려왔다. 나의 학창시절 캠퍼스를 누비는 젊은이들에게 설레는 꿈을 심어 주던 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단숨에 시집 한 권을 읽었다. 하지만 왠지 예전의 그 시인이 주던 깊은 감동은 없고 자꾸만 마음에 허전함이 쌓여왔다.
  
왜 일까. 어느덧 인생 70을 넘어선 그분의 시에는 이승을 하직하는 날에 대한 두려움과, 얼마 남지 않은 생에 대한 집착이 구절마다 짙은 서러움으로 맺혀 있었다. 그 옛날 그 분이 지녔던 멋진 낭만과 아름다운 시어들은 찾을 수 없고, 세상을 떠나는 날 구름처럼 몰아닥칠 두려움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진정한 예술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미로 이어질 때 비로소 위대한 빛을 발하고 그 가치를 갖는다고 믿어왔다. 그 시인이 긴 세월 아름다운 감성으로 수많은 인생의 노래를 써오는 동안 아직도 창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이 그 분의 시를 사랑하였던 나에게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다.

천상병 시인이 생각난다. 긴 세월을 동료 문인들에게서 얻어내는 몇 푼 술값으로 살면서도 만족하고 당당하게 살다간 시인.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도 천진하게 행복했노라 외치며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은 생을 소풍놀이 하듯 즐겁게 살았던 시인. 우리가 보기에는 걸인처럼 살았지만 아름다운 삶의 여운을 남기고 간 천상병 시인과, 한 시대를 당당한 모습으로 대학 강단에서  보냈고, 한국 시단을 화려하게 장식하고도 죽음 앞에 초조히 서있는 또 다른 시인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오늘, 눈부신 하늘 아래서도 난 서글프기만 하다.
  
다가올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택할 것인가. 태어나는 순간의 표정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우리가 선택할 마지막 기회인 것을. 육체가 죽음을 맞기에 앞서 정신이 먼저 죽음을 두려워하여 견딜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훌훌 육신을 벗고 영원한 나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새삼 큰 축복으로 여겨진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면 내 나이 어느덧 가을의 중턱에 서 있다. 하지만 쓸쓸해하지만은 않으리라. 가을이 주는 성숙한 모습으로 언젠가 돌아갈 본향을 위해 준비하리라. 내가 떠난 후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평안한 모습으로 남겨지리라. 내일이면 시들 이름 없는 풀꽃들이 저토록 곱게 미소짓고 있는 것처럼.


    
               (1999년 5월 크리스챤 타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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