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식사 당번

2017.06.03 02:13

서경 조회 수:72

   
  메모리얼 연휴를 갔다 오자마자, 새벽부터 동동 걸음을 쳤다. 5월 26일 금요일, 장장 750마일 밤길 더듬어 갔던 길을, 29일 월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되짚어 오니 밤 열 두 시. 애나하임 집은 멀어 가지 못하고, LA 친구 제인 집에서 잤다.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다,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차를 맡기고 간 친구 루시아 집에 도착한 게 일곱 시 삼십 분.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화요일 합창단 연습이 있는 날인데다가 일 년에 한 두 번 돌아오는 내 밥 당번이다. 서른 명 남짓, 식사 분량을 맞추어야 한다.  캐더링 식당을 찾기로 했다. 
  그 사이, 먼 곳 여행하느라 고생했다며 루시아는 두부찌개까지 끓여 밥상을 차려준다. 저도 메모리얼 연휴 여행으로 데스 밸리까지 갔다가 나보다 더 늦게 집에 도착한 몸이다. 마음을 담아, 차려준 밥상.
  "밥아, 너 본 지 오래다!" 하는 이도령 타령이 튀어 나올 듯, 한식 밥상이 반가웠다. 맛나게 먹고, 샤워에 꽃단장까지 하고 나니 오전 아홉 시. 이제 출근해야 할 시간까지 딱 한 시간 남았다. 식사 메뉴를 두고 고심하다보니, 또 이 삼십분이 지나갔다. 
  그 순간, 궁하면 통한다고 멀지 않는 거리에 있는 '꼭지 캐더링'이 생각났다. 30여 년 전, 호기롭게 만들었던 클래식 음악 감상 클럽 '보헤미안' 시절, 만년 총무로 일하면서 거래하던 식당 중 하나다. 투고할 때마다, 정갈한 음식에 마음을 담아 챙겨주던 생각이 나서 얼른 전화를 걸었다. 
  세상에! 이십 여 년이 지난 듯한데, 아직도 같은 사장 그대로 계속 영업 중이다. 한달음에 달려 갔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터인데도 '보헤미안' 이름을 들먹이니 친정 엄마 같이 반겨준다. 
  어디, 한 두 번 주문해 봤나. 음식 메뉴를 보니 신이 절로 난다. 옛날, 그 시절의 열기가 아직도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나 보다. 메뉴를 짚어가며 일사천리로 주문을 했다. 이름도 미소짓게 하는 '살짝 잡곡밥'에 소고기 무우국, 고사리+무우+청경채 삼색 나물, 오징어 무침에 담백하고 맛있기로 유명한 배추 포기 김치. 
  넉넉한 인심을 믿고 2,30명이 먹을 수 있는 20인분을 주문했다. 합창 연습 참석 인원이 대개 25명 정도. 많아야 서른 명 남짓. 음식은 충분하지 싶다. 150불 선에 맞추어 주문했는데, 총가격이 129불 40전이다. 귀신이다, 귀신. 예산 경비 150불에서 남은 돈은 수박을 사기로 했다. 일사천리로 주문한 덕에, 출근 시간에 맞추어 다 끝냈다. 
  보통, 여섯 시에 일 끝나고 연습실에 도착하면 거의 저녁 일곱 시 삼십 분이다. 이 시간은 합창 연습 시작 시간이다. 그래서, 난 늘 브레이크 타임인 여덟 시 반에 늦게 온 친구랑 번개 식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식사 당번이 아닌가. 완벽하려면, 서브까지 책임져야만 한다. 아무리 바빠도 오늘만은 조금 일찍 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루시아한테 수박 구입을 부탁하고, 제인에게는 음식 운반 문제를 맡긴 뒤에 출근을 했다.
  혹시나 싶어, 중간 점검을 했더니, 모두가 완벽하게 처리됐다. 루시아는 몇 군데 마켓을 돌아 좋은 수박을 골랐단다. 게다가, 아예 수박을 예쁘게 썰어 통에 담아 온다고. 꾼이 꾼을 알아 본다. '척하면 삼척'이다.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적은 역할이라도 애정을 담아서 하는 거다. 애정으로 하면 마음이 앞서고 그 마음은 아이디어를 낳는다. 그리고 힘든 노동도 놀이로 환원시켜 준다. 역할 담당의 보람과 기쁨은, 그런 연후에 받는 특별 보너스다. 
  아침부터 기분 좋은 상태는 최고조에 올라, 일 하는 내내 내적 기쁨이 충만하다. 육체는 흐느적거려도 정신은 맑다던 이상이 오래간만에 떠올랐다. 3박 4일 강행군 하이킹 여행에, 장시간 차안에서 시달켜 오고 간밤엔  잠도 제대로 못잤건만, 에너지는 하늘을 찌른다. 돈 쓰고 시간 쓰는 일인데, 이 무슨 조화인고. 내가 다 신기하다. 그냥 즐겁고 기쁘다. 
  될 집은 된다더니, 오늘따라 한 시간 일찍 일이 끝났다. '빨리, 우리 단원들에게 맛난 음식을 먹여야지!' 방과 후,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새끼 기다리는 에미 심정이다. 역시, 우리네 정이란 음식을 통한 친교다. 
  난, 어느 모임이든 음식이 부실하면 흥미를 잃어 버린다.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먹으면서 나누는 담소와 한솥밥을 나누어 먹는 그 찰라의 즐거움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종종 모임에 나가 보면, "우리가 먹으러 왔나, 간단한 간식으로 하지!'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회장단을 보면, 일이 귀찮은 게 아니라 회원까지 귀찮은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왠지 홀대 받는 기분이다. 저녁 모임은 대개 일 끝나고 바로 오기에, 배가 허전한 시간이다.
  때문에, 내가 속한 모임에 누가 간식 담당하는 걸 귀찮아 하면 자청해서 그 일을 맡곤 한다. 지금은 내 연령도 있고, 일 끝나는 시간과 모임 시간에 차질이 있어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두 번 쯤이야 얼마든지 즐겁게 봉사할 수 있다. 화려한 밥상이 아니라도 마음이 담긴 따뜻한 밥상,애정어린 밥상을 받고 싶고 차려내고 싶다.
  언젠가 일 끝나고 어머니댁에 들리기로 했다. 한 시간 뒤 쯤 도착한다는 전화까지 드렸다. 일 끝난 뒤라, 배도 고팠다. 난 모처럼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을 받으리라 기대했다. 
  "배 고프제?"
어머니가 그렇게 물어 오실 땐,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지가 먼저 대답했다.주섬주섬, 어머니가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변고가 있나! 찬 밥 덩어리가 덜렁 밥상에 얹혔다. 난 비위가 '확' 상했다. 이렇게 성의 없는 밥상이라니! 내가 엄마한테 가장 사랑받는 둘째 딸이 맞나, 싶었다. 
  "엄마! 나 밥 안 먹을래요."
  "와?"
  "......"

   나이는 드셨어도 눈치 하나는 엄마도 백단이다.
  "아, 찬밥 덩어리 준다고 삐꼈나?"
  "아니요, 그냥 ... 지금 배  안 고파요."

  "안 고프기는. 밥 바로 데워 주꾸마. 난 니가 배 고플까 봐 빨리 줄라고 안 데웠지..."

   그제서야 난 어머니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의 부족이란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 시간 전에, 일 끝나고 엄마한테 바로 간다고 전화 걸지 않았던가. 새 밥을 앉힐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 일이 있고부터, 어머닌 그 어느 밥상에도 찬밥 덩어리를 내 놓는 법이 없었다. 
  혹,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지가 차려서 먹지!" 하고 책망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난, 어머니집에 가면 내가 이것저것 뒤적여 먹는 법이 없다. 엄마가 기력이 있고 움직일 수 있을 때는 차려 주시는 밥을 얻어 먹는 것도 '효도'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는 이 한마디는 어머니에게 있어 그 어떤 말보다 진한 최상의 사랑 고백이라는 걸 안다. 대신, 난 멋진 식당에서 별식 대접하는 것으로 종종 어머니의 수고를 상쇄하곤 했다. 
  얘기가 너무 멀리 왔지만, 난 밥상과 사랑을 동일 선상에 올려두고 있다. 전문 요리사가 차린 진수성찬보다 어머니의 소박한 밥상이 그리운 건 그 밥상에 담긴 사랑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간단한 간식보다는 간단한 '식사'를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사 준비가 번거롭고 귀찮다는 모임치고 티격태격하지 않는 모임을 못 봤다. 인원수가 느는 것도 못 봤다. 애정 있는 담당자가 지혜롭게 계획을 짜서 시스템화 시키면 불편할 게 하나도 없다.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 천만에! 사랑은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방법을 찾아 낸다. 그리고 액션을 취한다. 
  내 카카오 스토리에 올려둔 말도 "With Love"다. 딸에게 마지막 남기고 갈 말도 "With Love"다. 애정 없는 행위는 아니 함만 못하다. 
  오늘은 성의를 다 하려는 나의 철학과 식당 사장님의 정성어린 솜씨, 그리고 좋은 수박을 찾으려 여러 마켓을 전전했던 루시아와의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았다. 
  대성공이다. 음식이 맛있다고 야단이다. 흐뭇하다. 한 가지 걸린다면, 일회용 용기를 썼다는 점이다. 그것도 방법을 찾아 스테인 그릇으로 바꾸고 싶다. 사랑엔 불가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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