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다함께 홀로
2017.06.19 07:46
포레스트 러너의 창립 6주년 아침이다. 한 달 전부터 임원진에서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여러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늘 모임을 갖는 랄프 팍에서 야유회 소풍삼아 같이 밥 한끼 먹는 걸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저기서 음식 도네이션이 들어오고, 십시일반 현금 도네이션도 들어왔다. 너나없이 내가 속한 단체이길래 즐거운 기념일이 되길 바라 마음을 모았다.
음식도 푸짐하고 참석 인원도 여느 때보다 많았다. 모두 생일 밥상 받는 얼굴로 싱글벙글이다. 푸른 창공엔 흰구름도 두둥실 떠, 함께 우리의 창립을 축하해 준다. 음식을 차리는 사람, 고기를 굽는 사람, 자리 정리를 하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제각기 필요한 일을 찾아 솔선수범한다.
빙 둘러 선 가운데 이종민 코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하며 오늘이 있기 까지 노고를 아끼지 않은 분들을 칭찬해 준다. 우리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감사패나 메달이 없는소박한 기념일이다. 하지만, 따스한 마음이 오가는 자리요, 모임이다.
모든 게 충만하여 차고 넘치는 자축 파티다. "오늘만 같아라!" 하며 다들 즐거워 한다. 테이블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식사를 하는 중에도 고기를 굽는 팀들은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연신 고기를 구어 나른다. 몸이 빠른 젊은 회원들은 생글거리며 시니어 회원을 위해 떡이며 과일이며 커피를 계속 날라준다. 사랑 주고 사랑 받는 아름다운 모임이다.
새벽잠을 털고 일어나, 동터 오는 여명을 함께 보며 달리는 사람들. 건전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다. 코치들의 헌신적 돌봄과 회원 한 사람 한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 오늘을 만들어 왔다.
매주 모이는 사람은 오십 여 명. 명단에 올린 사람은 백 여 명이나, 이런 저런 이유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부상을 입거나 여행을 가거나... 혹은, 고된 노동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거나...
하지만, 날이 풀리고 몸도 마음도 풀리면 언제든지 다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달리미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은 그 묘미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인 사정으로 참석할 수 없을 때도 어디에 있건, 마음은 모임 장소를 향하고 있다.
나는 오렌지 카운티로 이사온 이후, 올 1월부터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회장 없이 총무 체제로 움직이는 이 단체가 상당히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삐그덕거림 없이 물 흐르듯 돌아가는 걸 보면 흐뭇하고 신기하다. 아직은 육화되지 않은 낯선 집이긴 하나,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 가는 중이다.
달리기는 '다함께 홀로' 뛰는 운동이다. 결국은, 자기 자신의 두 발로 뛰어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그 땀과 수고에 대한 보람은 고스란히 자기의 몫이기도 하다.
40여 년, 걷기 운동도 제대로 안해 본 내가 마라톤 클럽에 조인하여 13.1마일 하프 마라톤을 뛰어내는 게 기이하다. 뛰다가 힘들면, 욕심 부리지 않고 걸으면 된다. 자기를 담금질하는 건 좋으나, 자칫 부상을 당하기 때문이다. 시합은 다음에도 있다.
그러나, 너무 편안함에 머물면 게을러지고 기록은 더욱 낮아진다. 그러다가 슬금슬금 뒤쳐져 끝내는 주저앉는 경우도 있다. 자기 조절이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 어디 쉬운 일인가. 때문에, 서로 힘을 주고 받는 모임 속의 일원이 되는 게 중요하다.
달리기는 '다함께 홀로' 뛰는 운동이기에 외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오히려 편안함을 줄 때도 있다. 그 시간은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이용할 수도 있고 무념무상으로 자기를 온전히 비워낼 수도 있다.
길은 처처에 열려 있다. 곧은 길이 있으면 굽은 길이 있다. 탄탄대로 아스팔트 길이 있으면 훍길과 돌짝밭길도 있다. 우리는 이 길을 달리며 인생길도 한 번 떠올려 보는 것이다.
파트너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운동, 자연의 일부가 되어 길과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뛰는 즐거움. 그 즐거움이 가져다 주는 덤으로의 건강과 튼튼한 심장.
힘든 일을 왜 하느냐고 묻지 말라. 좋아서 한다. 즐거워서 한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새소리에 맞추어 리드미칼하게 뛰는 그 쾌감!
그리고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샘솟아 오르는 뿌듯함. '그래, 나는 잠자리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어난 1%의 자랑스런 러너야!' 스스로를 토닥이며 자긍심을 갖는 새벽. 속도는 빨라지고 심장은 기쁨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에너지 넘치는 탱글탱글한 날이다. 어쩌다, 늦게 일어나 빠지기라도 하면 숙제 못한 아이처럼 찝찝하다.
마라톤 시합 출발선에 선 3만 여명의 건각들 표정에 웃음 머금지 않은 얼굴이 없다. 제 돈 내고 고통스럽게 뛰는 데도 모두가 싱글벙글이다.
두 다리로 설 수 있고 달릴 수 있을 때, 난 마음껏 이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동녘에 솟는 햇빛을 등에 받으며 긴 그림자 앞세우고 뛰는 '직립의 행복'을 오래도록 갖고 싶다.
언젠가는 뛰고 싶어도 못 뛰는 그 날이 오리. 아니,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그 날이 오리.건강한 내 다리는 움찔거리고 길은 나를 부른다. 고통은 잠시나 긍지는 영원하다.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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