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수필) 문인의 길 - 도창회

2011.11.16 10:33

지희선 조회 수:190 추천:14

문인은 단순한 문학(文字)의 기록자(記錄者)가 아니다. 문인은 최고의 진실(眞實)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문인은 단순히 역사의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다. 역사사실의 전사자(轉寫者)가 아니라, 문인은 역사의 정신(精神)을 기록하고 역사의 비판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문학은 인생을 적는 것이 아니고, 인생의 해석(解釋)을 적는 것이다. 인생해석을 ‘사상(思想)’이라고 부른다면 문학은 최고 사상의 기록이라고 에머슨(Emerson)은 말했다. 따라서 문인은 최고(最高)의 사상(思想)을 기록하는 사람인 것이다.

문학은 지식(知識)을 적는 일도 아니요, 지식을 가르치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문인은 지식을 제공하지도, 지식을 자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문학은 교훈을 적는 것도, 교훈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지식과 교훈은 문학을 하는데 필요한 일부분의 요건일 뿐이다. 고로 문인은 문인이기를 바라지, 학자이길 거부한다.

문인은 자연이나 인간 처사를 그대로 모방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인은 그들을 재창조(再創造)하는 사람이다. 문인은 작가(作家)다. 작품(作品)을 쓰는 사람이다. 작품이 무엇이던가? 창조가 아니던가? 문인에게 있어서 창조정신은 生命이다. 창작에 창조정신이 결합하면 그것(그 작품)은 보나마나다.

창작의 천재성(天才性)은 상상력(想像力)에 있고, 그 상상력이 문학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국의 천재시인 코올릿쥬는 “천재적(天才的) 작가는 독창적인 상상(想像)에 있어 보통 이상의 능력(能力)을 소유하는 자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문인은 영감(靈感)을 기다릴 줄 아는 자다. 아니 영감을 받아 마실 줄 아는 사람이다. 문인은 신의 계시를 받아 적는 자가 아니다. 문인은 신의 계시 문을 비판하는 자다. 영감은 늘상 사고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칸트는 “영감은 반드시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자에게만 온다.”라고 말했다.

문인은 인간의 존엄성(尊嚴性)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문학의 해학성이나 수사(修辭)의 교법(巧法)은 표현상의 방법일 뿐이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데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문인이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인간성을 존엄하게 만들겠는가?

문인은 사회의 방관자가 아니라, 감시자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과학자들을 지키는 감시자다. 문인은 모든 사회현상에 대한 최후의 심판자로 남아야 한다.

문인은 계절풍 따라 바람이 부는 대로 옮겨 다니는 철새무리가 아니다, 소중한 가치추구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문인은 진리(眞理)를 찾는 자다. 그렇다, 진리가 없으면 가치도 없고, 따라서 예술도 있을 수 없다. 미(美)라는 것도 알고 보면 진리의 정신(精神)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인은 한 그루의 거송(巨松)이라 해도 좋다. 그 위에 높이 올라앉은 백학(白鶴)이라 해도 좋으리라. 굽어보고 방만(放漫)하라.

문인이 가는 길은 험난하다. 험난한 길을 의연(毅然)히 걸어가야 한다. 아주 의연히 걸어가야 한다. 세상이 춥고, 뜻과 같지 아니해도, 문인은 어깨를 펴고 의연히 걸어가야 한다. 옆구리께 바람이 들어 헛헛해도 반듯하게 걸어가야 한다. 때아닌 돌개바람을 맞아도 당당한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떳떳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문인이다.”라고.

문인에게 자존심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옳지 않은 일에 절대로 자존심을 굽혀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문인은 사회를 지키는 감시자로서 최후의 심판자로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인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그 갸륵한 존엄성을 찾아주는 사람이고, 문인은 그 존엄성을 지키는 사람이다.

문인이 쓴 문학이 사회가, 아니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해도 갈 길은 가야 한다. 불만스럽고, 합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존심을 버리지 말고 의연하게 갈 길을 가야 한다. 삐뚤어진 정신 바탕을 소리 없는 문필로 바로잡는 사람이 우리 문인이 아니던가!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비록 행사할 권력 같은 것은 없어도 우리 문인에겐 천하를 휘두르도록 호령할 수 있는 붓 한 자루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똑바른 양심이 있지 아니한가! 바람 한 점에도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나뭇잎의 떨림에도 마음 아파하는 양심이라는 게 있지 아니한가.

문인(文人)들이여! 의연한 자세로 걸어가자. 목을 꼿꼿이 세워서 걸어가자. 우리는 자랑스러운 문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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