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산문) 분노 - 루이제 린저

2012.01.06 09:55

지희선 조회 수:147 추천:28

일본서 제일 큰 전기 회사인 아쯔시타 회사는 고용자들의 노동력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즉 이 회사는 공장 가에 방 하나를 마련해 놓았는데 그 입구에는 ‘마음대로 사용하십시오’라는 글이 씌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사용하라는 것일까요? 이 방 안에 비치된 각종 길이와 강도의 참대 막대기는 고용인들이 그들의 사장을 마구 때리는 데에 쓰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사장은 실물이 아니라 잘 부숴지지 않는 플라스틱 초상화입니다. 만약 고용인들이 일할 기분이 내키지 않거나 손놀리는 일이 따분해지거나 웃사람에게 꾸지람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오르면 작업 도중이라도 그 방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작업 능률에 성과가 좋다고 이 회사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기분이 좋고 산뜻해져서 돌아온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농담, 환각, 그렇지 않으면 뭔가 참마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참마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며 좀 간략한 것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진정제입니다. 당신은 괜히 성이 나서 접시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문을 우악스레 닫으며 발을 구른다든지 혹은 택시 운전사로서 다른 사람이 듣든 말든 저주 담긴 욕을 마구 퍼부은 적이 없습니까? 또는 사장이 부하에게 호통을 치자 그 부하가 곧 자기 밑의 부하에게 호통을 쳐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제일 말단 부하는 자기 밑의 사람이 없어 분풀이를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 아니면 저녁 때 가족에게 털어 놓는 것을 당신은 본 일이 없습니까? 또는 어떤 어머니가 자기 어린 아이를 마구 때리자 어린 아이는 자기의 인형, 나아가 의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까?

이 모든 것은 불쾌한 감정을 진정시키는 형식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좋지 못한 일을 한 자를 때릴 수도 없고 그 자의 마음을 상심시키는 것도 금지되었을 경우 그 분풀이를 아랫사람에게 계속한다면 최종적으로 분풀이를 당한 사람은 실제로는 맨 처음 이를 시작한 사람에게 당한 셈이 됩니다. 우리가 그러한 수단으로 자기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좋기도 합니다.

우리는 분노를 자기의 컴컴한 영혼 심층 속에 저장해 두는 대신 차라리 그 부정적인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 심층에서의 분노는 소화되지 않고 극복되지 않고 해소되지도 않으며, 행패를 부려 무의식적 세계로 빠져 결국은 노이로제 혹은 정신병으로 번지고 맙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 일본 회사의 정책은 옳고 당신이 성이 났을 때 ‘괴츠 폰 베르리힝겐’을 인용하면서 접시를 부수어 버리는 것도 정당합니다. 물론 당신 혼자서 그런 짓을 하고 또 그러고 난 후에 다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으며 특히 동료들에게 친절해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 자신과 당신에게 불쾌한 기분을 진정시키는 데 더 좋은 방법은 없겠는지 물어 보고 싶습니다.

자기 수도원의 문지기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프를 나누어 주었던 카프치너파의 수사 콘라드 폰 알료팅에 관해 저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거지가 뜨거운 수프를 그의 얼굴에 부어 버리자 그는 태연히 얼굴을 씻으면서 아주 사무적으로 “수프 맛이 없나 보지요”하고 말했습니다. 이는 정말로 훌륭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천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철석 같은 자아 극복’의 도움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원천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수프 맛이 없나 보지요”라는 말로 그는 사태에 관한 자기의 간단하고도 냉철한 이해심을 토로했습니다. 즉 수프는 맛이 없었군, 그래 거지가 성을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느냐.

이 수사는 다른 사람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해지는 모든 불법 극복의 비밀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왜 그래야 하나 하는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왜 사장은 성을 냈을까? 왜 여자 점원은 저렇게 불친절할까? 왜 내 아이는 저렇게 반항적일까? 왜 사춘기의 저 소년은 야비할까? 왜 내 남편은 저렇게 부당하게 이유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을까? 왜 저 이웃 여자는 저렇게 오만할까?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자문할 때에,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대방의 행동의 원인은 예외없이 인생 전체에 대한 불안한 상황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 원인은 우리를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한 가지를 겨누고 있다는 것을 확증하게 됩니다. 대개 사장은 보통 고용인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거의 우연한 대상물에 대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아마 그는 어릴 때 억압받았을 것이고 언제나 이래라 저래라 명령만 받았으며 반항해 보지도 못하고 분노와 증오를 가슴 속에서 삼키며 “보라지, 내가 어른이 되면 그때는 나도 명령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또는 저 오만한 이웃 여자 말입니다. 그녀는 아마 자기는 아무 힘도 없다는 감정을 상쇄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녀의 오만은, 자신이 부자가 아니고 멋쟁이도 아니며 사랑을 덜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녀는 이것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합니다. 이리하여 그녀는 남보다 월등히 낫게 꾸미고 오만한 태도를 취합니다.

또 사춘기의 소년을 봅시다. 그는 자신과 자기 주변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바라는 것과 실제로 그가 어른들에게서 물려받은 것과의 사이에 생기는 불균형을 보고 느낍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질서를 건설한 힘을 갖고 있지 않은 그가 어찌 야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는 많이들 허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여자 점원이 분주히 뛰어다니지 않는가고 그녀를 꾸짖는 대신 아래와 같이 묻지 않습니까? “일이 너무 많지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 일만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지요.”

이와 같은 말로 우리는 두 사람을 돕는 셈이 됩니다. 우선 여자 점원을 돕습니다. 그녀는 인간적으로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감정을 느끼게 되며 자기를 괴롭히는 모든 자들에 대한 얼어붙은 분노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 동시에 우리는 자기 자신의 쌓인 분노를 경화시키기 전에 순간적으로 해소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돕게 됩니다.

그러한 질문을 던질 때에는 물론 사무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기 전에 왜 그럴까 하는 자문과 다른 사람의 불친절이 유래하는 모티브를 감득하는 데에 있어서는 일생을 통한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만이 우리 영혼이 심층에까지 변화를 줄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언제나 손쉽게 모든 상황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순진한 방법으로 우리를 진정시킬 필요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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