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일기/ 조민희


하지 무렵 짧은 고요 어둠에 잠겨 든다.

별꽃 뜬 어둑새벽 그믐달과 살을 섞고

쟁쟁한 징소리 내며 두 손 밀어 올린다.



노굿이 날개 접고 지어가는 고치 속에

갇혔다 튕겨진 몸, 바람에 여위어 가고

이제는 못 삭힌 열망 갈증으로 남는다.



눈물로 녹여낼까? 꺼내어 든 물음표

외발로 등 기대고 소통의 문을 연다.

화들짝 개나리 피어 또 한 생이 열리고.



번잡한 영등포역 문 헐거운 국밥집에서

인력시장 줄 선 사내 빈속을 달래 주는

그렇게 열반에 든다, 누추한 시대 성자처럼…



◆ 당선소감

도전의 활 시위 당길 수 있게 독려해 준 분들께 감사

늦게 김장을 담그던 날, 당선 통보를 받았다. 반가움보다는 떨림이 앞섰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웬 욕심으로 신춘문예에 도전했느냐는 질책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었나 보다.

65세에 조선대 평생교육원 문창과에 입학해 시 쓰기를 시작했고 4년 만에 당선의 기쁨을 안게 됐다. 50년 전 내 고교 시절 담임이셨던 조복남 선생님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친정 백부이신 조설현은 독립운동가 신석우가 1920년대 조선일보를 인수할 때 참여했던 분이어서 조선일보를 통한 등단이 내겐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나를 시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문병란 교수님, 젊은 분들 사이에 끼어 공부할 수 있게 허락하시고, 시 분석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신 전원범 교수님, 정원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말부림의 멋과 현대시조의 광맥을 찾아가는 민족시사관학교 윤금초 선생님과 문우와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사랑과 행복한 삶을 실천하는 복음교회 목사님과 교우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따뜻한 시와 시조로 보답하련다. 도전의 활시위를 당길 수 있게 독려해 준 박현덕 시인, 이보영 시인에게 감사하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1940년 전남 영광 출생

▲조선대 가정학과




◆ 심사평

서정의 화법으로 선보인 현대적 운율 돋보여

올해 시조 부문의 응모작들은 재기 넘치는 시도들이 저마다의 완성도를 겨루었다. 낱말의 시각적 배치로 확보하는 신선한 형식미, 고시조의 강박을 벗어나 다양화된 소재, 현시대와 소통할 만한 말랑하며 친밀한 서술로 돋보이는 수작들이 많았다.

그러나 응모작들 가운데 그럴듯한 시어들의 기계적 나열에만 그치는 것도, 초장 중장 종장의 글자 수를 교과서 같이 맞춰서 리듬감을 잃는 것도, 모두 운율의 묘미를 살리지 못한 작품도 눈에 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그 밤의 타클라마칸' '난(蘭)의 겨울' '무' '노래하는 돌'이다. 이들 모두 당선될 만한 역량을 지녔으나, 난해한 수사법이 몰입과 이해를 가로막고, 처연한 독백에 머물러 긍정의 혜안으로 전환되지 않은 미비함이 보인다. 또한 시조의 결정적 아름다움, 다시 말해 종장의 수려한 마무리를 놓치고 있다.

당선작은 조민희의 '콩나물 일기'이다. 삶의 소소한 편린에서 착안한 진정의 공감을 바탕으로, 시조의 형식 미학을 지키면서 틀에 구애되지 않는 현대적 운율을 구사한다. 그리고 세밀하게 흐르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형상화와 어우러져 여향을 남긴 결구까지 서술과 서정이 조합된 화법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현대 시조의 범주를 새롭게 확장시킬 솔깃한 기질의 발견이라 여긴다.

― 한분순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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