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뒤척이는 젊음과 사랑
2018.04.25 04:58
아직도 뒤척이는 젊음과 사랑
성민희 / 수필가
새벽부터 출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생각했다. 벌써 두 달째 작은 병실 창가에 누워 시간을 버리는 어머니. 아흔 두 살의 나이에서 두 달이란 얼마나 어마어마한 시간인가. 앞으로 얼마큼이나 더 버텨야하는지, 그 양을 줄여보고자 안간 힘으로 재활 훈련을 받는 모습이 떠오른다. 뼈가 앙상한 손등 어디에 그렇게 새파란 힘줄이 숨어있었을까. 연한 나뭇가지처럼 애처로운 몸 어느 구석에 저런 결기가 숨어있었을까. 어머니는 가쁜 숨을 푸푸 쉬며 매일 헬스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다.
오랜만의 햇살이 봄을 몰고 온 날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동생이 구입한 건물을 흐뭇한 마음으로 올려다보다가 미처 사람을 보지 못한 차에 들이 받힌 것이었다. 아이처럼 가벼운 노인이 쿵 소리가 나게 차에 부딪히고는 공중에 붕 떴다고 했다. 꿈인가 생시인가 멍하니 쳐다보는 동생들 앞에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엄마.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로 가더니 이내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임종을 뵈어야 하는가 싶은 긴박한 기우와는 달리 모든 검사 결과는 의외였다. 어느 한 곳의 뼈도 부러지지 않고 머리도 멀쩡했다.왼쪽 발목과 어깨, 엉덩이 부분이 심하게 타박상을 입어 거동이 어렵긴 하지만 천사들이 받아 안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기적이었다.
그 연세가 되도록 한 번도 자식의 신세를 지지 않던 분이 육신의 기를 온통 침대에 내려놓았다. 바쁜데 오지 말라며 손사래로 사양하던 가족의 방문을 침대에 누워서는 반갑게 맞으신다. 하루가 얼마나 적막한지 짐작이 간다. 매사에 무심한 나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음이 젖는데 어머니는 오죽하시랴 싶어 아침부터 서둘렀다.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빨간 간판의 건물이 보인다. GENESIS. 여느 때처럼 어머니는 베개에 등을 대고 앉아 계신다. 회전의자를 침대에 끌어당겼다. “요새는 와이리. 비가 자주 오노.” 창밖을 내다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 “하나님도 내 슬픈 마음을 아시는갑다. 자주 하늘을 울리시네.” 눈가가 발개진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전혀 내색을 하지 않던 어머니에게 이런 슬픔이 있었구나. 아흔 두 살의 나이에는 고통에도 외로움에도 익숙해져서 그 느낌의 강도가 우리하고는 다른 줄 알았는데. 혼자서 일어나고 먹고 자고 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는데.
어느 노인이 남겼다는 편지가 생각난다. ‘... 간호사들이여, 무엇을 보고 있는가... 멍한 눈에, 까다로운 늙은이라고 생각하나?,,, 이제는 눈을 뜨고 바라봐주시게. 무너져 내린 몸에서 우아함과 활기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 늙은 시체 안에는 여전히 젊은이가 살고 있어... 내가 겪었던 기쁨과 지나왔던 고통을 기억할 때면 다시 내 안에서 사랑으로 가득한 생명을 느끼네. 까다로운 늙은이가 아닌, '나'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 봐주게.’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생생한 젊음과 사랑이 아직도 어머니의 몸 안에서 기척을 하나보다. 나는 어머니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하늘을 본다. 하나님, 우리 엄마 마음 아시죠?
<전원 창립50주년 기념문집> 2018.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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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4.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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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4.25 11:36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搭)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 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님의 침묵>(1926)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구도적, 역설적, 명상적, 관념적, 신비적 성격의 시로 산문적 리듬과 경어체를 사용(유원하고 심오한 동경을 표현하기에 적절)하였고, 의문형 문장의 반복을 통해 주제를 심화하고 시상을 통일하였다.
이 시에서 '누구'는 님. 절대자로서 그에게 있어서는 "자연, 불타, 조국"일 수 있다. 따라서 주제는 "절대자에 대한 구도적 염원"이거나 "감각적 현상의 배후에 있는 절대자의 신비함과 그에 대한 신앙적 고백" "조국의 독립을 위한 저항의지"일 수 있다.
이 작품은 문장 구조가 같은 질문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질문은 한결같이 "A는 누구의 B입니까?"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은 자연 현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 속에는 '나'의 모습이라곤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나'는 오직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자일 뿐이다. 이 자연 현상이 '님'의 현신임은 말할 나위 없다. '나'는 자연 현상 속에 드러나 보이는 '님'의 모습을 통해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삼는다.
이렇게 의문형으로 끝나는 몇 개의 행이 계속되다가 마지막 한 행에서는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는 진술이다. 이것은 이 작품 전체에서 유일하게 의문형으로 끝맺지 않은 문장일 뿐만 아니라 이 시의 주제를 이해하는데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행은 님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의 고백이다. '나'는 그 '님'의 밤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를 태우는 등불이다. 여기서 '밤'은 '님'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의 어둠의 시간이며,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진 괴로운 시대에 해당한다. 이 어둠의 시대에 '나'는 자기 자신을 태워서 어둠과 싸우며 '님'이 사라진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히고자 한다. 그 불태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지속적인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의 기본 바탕은 불교의 윤회 사상과 연기설(緣起說), 그리고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 심오한 진리가 작품 속에 완전히 용해된 탓으로 조금도 설법(說法)의 냄새를 풍기지 않고, 도리어 감각적 실체로만 나타나 있어 만해의 뛰어난 시적 능력을 감지(感知)할 수 있다.
* 1행 → 신비로운 자연을 통해 임의 의지를 드러냄.
* 2행 → 깨달음의 순간에 임의 신비한 모습을 인식함.
* 3행 → 님의 향기를 느낌
* 4행 → 불도의 광대무변한 진리에 대한 감동과 인간의 한정된 세계 속으로 들어온 님의 모습.
* 5행 → 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온 천지에 충만함을 노래함.
* 6행 → 화자의 끝없는 구도정신과 신앙적 고백이 나타남.
-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 → 윤회사상.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는 불교적 변증법의
원리로, 소멸해 버린 어떤 것의 소생에 대한 신념(소멸→극복→생성)
- 타고 남은 재 → 비생명, 무(無), 소멸해 버린 것, 상실한 주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형이상학적 존재
- 기름 → 생명의 상태, 유(有), 가치있는 대상
-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님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잃지 않고 밤을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
- 밤 : 님이 없는 상황의 어두움, 주권상실의 현실, 절대자가 불신받는 현실
- 약한 등불 : 자신을 무화(無化)시켜서 남을 존재하게 하는 거룩한 존재, 경건하고 절대적
인 신앙의 등불, 조국의 재생을 기다리는 새벽을 위해서 타는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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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를 읽다가「마음과 눈동자」란 어록 한 편(離婁 上 7.15)에서 마음이 멈추고 더 나가지를 못 한다.
孟子曰, “存乎人者, 莫良於眸子. 眸子不能掩其惡.
胸中正, 則眸子瞭焉. 胸中不正, 則眸子眊焉.
聽其言也, 觀其眸子, 人焉廋哉?“
(“사람을 살피는 데는 눈동자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눈동자는 그 사람의 악을 감추지 못한다.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눈동자가 흐리다.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눈동자를 보는데 어떻게 속마음을 감출 길이 있겠는가?”)
그 뜻을 반추(反芻)하며 음미하는 사이 언뜻 예이츠(Yeats)의 애송시 한 수가 이어서 겹쳐진다.
술 노래
술은 입을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나니.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
알아두어야 할 진리는 오직 그것뿐
나는 잔 들어 입에 가져가며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짓네.
A Drinking Song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눈은 마음의 창이요 거울이다.
입으론 거짓을 말할 수 있으되 눈은 속마음을 감추지 못 하고 있는 대로 정직하게 내비추어 속이질 못 한다.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고’ 눈으로 쏘는 큐피드Cupid의 화살이다.
그렇다면 ‘잔 들고 그대를 바라보며 짓는 한숨’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녀의 눈동자를 통한
사랑의 확신에서 오는 안도의 한숨이며, 견딜 수 없던 존재의 가벼움을 눌러 앉히는
사랑의 아늑함의 한숨일 것이다.
‘늙어서 죽기 전, 알아두어야 할 진리’를 깨달아, 어찌 해야 맹자의 말씀대로 ‘바른 마음, 맑은 눈동자(胸中正, 眸子瞭)’로 세상을 살다가 눈 감고 마감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잔 들고 바라볼 눈동자는 없어도,
나 홀로 한숨짓는다.